(3) 정연주 전 KBS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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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보기=====/김제동의 똑똑똑

(3) 정연주 전 KBS 사장

등산하다가 허리를 좀 다쳤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을 화요일에 뵙기로 일찌감치 약속해 놨는데 통증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킬까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주말공연을 하고 나니 괜찮아졌다. 그런데 이번엔 공연 게스트로 와줬던 현정이 누나가 술 한 잔을 청했다. 약속 때문에 조금만 마시려고 했는데 샴페인에 소주까지 섞어 마셨다. 천하를 호령한 ‘미실’이 권하는데 어쩌겠나. 정 사장을 마지막으로 뵌 건 지난해 성공회대에서 열린 노무현재단 발족기념 음악회 때다. 그날 밤이 내가 <스타 골든벨>에서 잘린 날이기도 하다. 






정연주-허리 다쳤다며?
김제동-어떻게 아세요?
정- 나 기자출신이쟎아.
김-역시 취재력 대단해.
정-나도 허리수술 3번이나 했어. 못이 6개 박혀 있거든. 그저께는 잠을 잘 못자서 영 결리네.

김-요즘은 잠을 잘 주무셔도 담이 걸리는 시대쟎아요. (아이폰을 꺼내는 정사장에게 ) 어, 아이폰 쓰세요? 트위터는 안하시구요?
정-트위터 싫어. 인터넷도 힘들어 죽겠는데.
김-트위터도 매력 많아요.
정-그건 젊은 사람들에게 그럴테고, 난 그걸로 글 한번 쓰는 것도 힘들어서...

김-오기 전에 사장님 만난다고 띄웠어요. 궁금한거 질문 올려달라고 했더니 엄청 올라오네요. 
그런데요 질문 중 아직도 사장님이 현재 KBS에 사장으로 계신다고 착각하고 질문 올린 분이 많네요. 좋은 현상으로 봐야 하나? 

정-지난번에 재판에서 이겼쟎아. 김정헌 위원장은 복귀했고. 그래서 그런지 사장 자리 돌아갔는 줄 알고 요새 그런 질문 많이 받아요.
김-출근 안하십니까? 우하하.



정-해임취소 판결 받던 날이 내 임기 11일 전이야. 그래서 그 이후 액션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장하는 것은 법적으로 내가 그만둔 것이 잘못됐다고 판결났기 때문에 내가 그만둔 이후 KBS의 체제는 법적으로 볼 때 불법체제지. 언젠가 KBS 정상화시키고 합법적인 체제로 돌아가려면 내가 다시 가서 15개월 남은 임기를 마저해야지. 그래야 KBS 라는 조직과 시스템이 정상화되는 것이지.
언젠가는 다시 꼭 가서 15개월 임기를 채워야지. 그러면 김제동씨 스타골든벨에 다시 MC로 서길 바래(웃음). 그런데 난 임기중에 제작진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적 없어. 정말 피디들에게 많은 자율성을 줬지.

김-사장님 계시는 동안 오래했죠. 큰상도 주셔서 받았고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중간에 일어나서 꾸벅 인사)
정-얼마전에 큰 상 받았쟎아. 사실 피디라는 전문가 집단이 주는 그게 가장 큰 상이야.나눠먹는 것도 없고 정말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의미지.
김-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정-내가 하도 험하게 살아와서... 특히 그만둘 때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6개월은 만사 제치고 논다고 생각했지. 무진장 게을러지자고, 아무 강박관념 없이. 6개월은 완전 신나게 놀아보기로 작정했어.. 근데...
김- 잘 안되셨습니까?

정-쉬고 있는데 얼마 있다가 수사자료가 왔는데 이게 6000페이지짜리야. 그리고 재판시작을 하는데 놀 시간이 없더라구. 재판해야지, 수사기록 읽어야지. 워낙 내가 무시무시한 죄를 지었다고 엮어놔서.
김-수갑도 차셨죠?
정-아니. 수갑은 안찼어.
김-다행입니다.

79년도에 잡혀갈 땐 수갑을 수도 없이 찼지. 어쨌든 그래서 그만둔 뒤에 잘 못놀았어. 요새는 1주일에 한번씩 글쓰고 한겨레에 1달에 한번 글쓰고 대학모임이나 강연회에서 이야기해달래서 왔다갔다하고... 사장할 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아. (정연주)


김-6000페이지나 되는 책. 독서 제대로 하셨네요.
정-집사람이 들여다보면서 고시공부하냐더군. 그 사건이 워낙 터무니 없으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데 워낙 무시무시한 죄목을 걸어서. 그러니 법적으로 싸워 이겨야지 어떻게 해. 억울함, 분노 이런거... 말을 못하지. ( 이 대목에서 약간 말을 멈추며 감정 북받치는 듯....)
 

그런데 어디 내사건 뿐이야. 피디수첩, 미네르바. 무죄판결 나오는 거 갖고 판사들이 빨갱이다 어쩌구 하는데 검사의 공소제기 자체가 무리였지.
무죄판결이 중요한게 아니야. 공소자체가 엉터리인데.
미네르바, 쇠고기 수입 비판한것. 언론이 비판기능 빼면 뭐가 남나. 내 사건도 KBS와 국세청이 세금문제로 송사한 것인데 당시 법원이 조정해서 끝난문제야.KBS는 자체적으로 변호사 자문받았고 국세청도 대검에서 지휘받았지. 결론적으로 법원 조정받아서 매듭지었고.


김-그렇죠. 배임을 드러내놓고 법원하고 같이 했다는 이야긴데... 법원하고 같이 하는 배임은 없죠? (웃음). 법원도 같이 기소당했어야 하는거네요.
정-법원이 조정안을 내놓을 때 국세청도 오케이했어. 결국 검찰도 당시 그 조정을 오케이 했다는 거쟎아. 자신들의 주장대로라면 배임에 동의한 꼴이지. 비상식의 껍질을 벗기니 별 희한한게 다 보이더군.
김-웬만한 소설보다 더 재미있네요. 그거갖고 소설 한번 써보시죠.
정-복잡하고 재미없어.

김-건 그렇고 불편한 질문 먼저 털고 가죠. 사장님도 당시엔 낙하산이란 비판 있었쟎아요.

정-그렇게 볼 수 있지. 그런 질문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봐.

김-감사합니다. 요즘 이런 질문 안통하는데가 너무 많아요.
정-실제 많이 받았어요. 나도 그런질문.

노대통령하고 가치와 철학이 비슷한 사람이니까 코드인사일수 있지. 그런데 당시 내가 코드인사라 해서 조중동이 엄청 비판했어. 언론 이야기 하자면 조중동 언론으로서 일관성이 없쟎아. 지금 이뤄지는 인사는 코드인사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직계친족 족벌인사쟎아.
암만 그래도 자기 캠프에 직접 들어와 일하던 사람을 앉히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나를 비판했던 당시보다 훨씬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하쟎아. 언론이 아닌거지. 이념적으로 같은 진영이니까 봐준다는 것을 웅변하는 거지. (정연주)


굳이 내 변명을 하자면, 난 KBS가서 자율권 엄청 확대해줬어. 창의력 발현할 수 있게. 워낙 우수한 후배들이다보니 영향력 1위, 신뢰도 1위 평가를 받는 방송을 만들었는데 정말 보람이었지. 

탐사보도팀 만들어서 맨처음 했던 작업이 고위공직자 검증이었어. 당시 고위공직자가 누구야. 정부여당이 80%지. 한나라당은 구색 맞추느라 들어갔고. 권력자들이 탐사보도팀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지. 우리 탐사보다팀 잘했어. 상도 많이 받고. 지금 거의 유명무실해졌지만.

김-그런 생각이 드네요. 가치를 공유하면서 비판하고 긴장하는 관계. 끊임없이 비판하는 것이 언론본연의기능이라는 말씀이시쟎아요. 그리고 사장님은 그 언론본연의 기능을 사수하려고 했고. 명령을 하달해 수행하는 집단이 되면 안된다는 이야기시고.. 그런 점에서 지금의 KBS와 차이점을 찾아야 된다는 점을 말씀하시는 거죠.


사실 노대통령한테 고마운게 있어. 노대통령 취임한 지 얼마안돼서 청와대 행사에 참석했는데 나한테 “제가 앞으로 대통령하는 동안 2명한테는 전화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더라고. KBS사장이랑 검찰총장이라면서. 가장 정치적 독립이 필요한 기관이라면서. 실제 그 약속 지켜줬어. 대통령이 전화한다면 압박감 안 느낄 수 없지 않겠어? 그부분 고맙게 생각하지.
돌아가실 때 보니 참 아이러니더군. 임기 내내 독립을 위해 애썼던 두 기관인 언론, 검찰. 결국 그 두 기관에 의해 죽음의 길을 가신거쟎아. 검언복합체. 검찰은 피의사실 전부 흘리고 언론은 받아서 튀기고 중계방송하고. 검언복합체... 우리 사회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이지...한총리 사건도 마찬가지고...    (정연주)



김-사실 저같은 경우만해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돌아가는 일에 대해 잘 모릅니다. 또 은연중에 검찰, 언론 이러면 자연인으로서 느끼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요즘은 좀 더 심해진 것 같구요. 왜 이렇게 더 밀어붙이고,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정-흔히들 검찰은 권력의 개다 라고 표현하는데 그건 잘못된 표현입니다. 주종관계라는 의미인데 정확히는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동체죠. 정치권력과 동체. 검찰의 구성원 다수는 이 정권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집단입니다.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지켜야 할 이익과 가치가 같은거죠. 조중동 검찰 공무원 다 마찬가지죠. 군부독재, 영남패권 40년동안 이 기득권이 권력을 누려왔죠. 오래 권좌에 있을 줄 알았는데 10년을 빼앗긴 겁니다. 그 기간을 견디기 힘드는 거죠.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권력향유를 못해 불편했던 10년입니다.
노무현 정권은 이들 기득권과 이해관계가 배치됐지요. 그러니 자신의 출세와 영달,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방어본능으로 죽이겠다고 달려든것이지요. 그들은 너무나도 달콤했던 권력을 위해 그렇게 처절하고 치열하게 달라들어서 다시 빼앗았죠. 그리고 장기집권을 위해 다시 치열하게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김-(크게 웃음).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데요.. 제가 격하게 동의했다가는 일이 커질 것 같습니다. 전 제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알아서 판단해주시길 바랍니다. 세게 말해주셔도 괜찮구요. 어차피 사장님이 세게 하시는거지 저야 뭐. 우하하하.

그런데 저같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선 자꾸 불쾌합니다.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10년 어쩌구 하는데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 10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제가 뭐 그기간동안 아바타로 누워있었던 것도 아닌데... 열심히 살았던 대다수 국민들에게 자꾸 잃어버린 10년 이러니까 기분 나빠요.(김제동)

 
그런데 사장님. 기억나세요? 러브레터 400회 특집.
그땐 제가 안 유명해서 잘 모르실텐데, 그때 사장님 구경 끝까지 다하고 가셨죠? 혼자 살짝 오셔서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앞에서 대놓고 이런말하기는 좀 그런데 전 그 때 사장님 보고 참 희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웬만하면 사장님이라고 여러명 데리고 뻑적지근하게 와서 구경하고 폼나게 격려하고 갔을텐데..
그때 사장님께서 저희들 대기실에 오셔서는 문을 조용히 열어 얼굴만 살짝 내밀어 보시더라구요. 처음엔 누군데 혼자와서 저렇게 슬쩍 쳐다보고 가지? 나가라고 할까? 했는데 나중에 사장님이래서 좀 놀랐어요.

정-난 정말 권위주의 싫어. 처음 갔더니 사장 차가 에쿠스더라구. 그게 3500CC지. 유가도 오르는데 그래서 그렌저로 바꿨는데 반대하더라구. 자동차라는게 아무것도 아닌데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하잖어. 그게 다 권위주의 상징이야. 요란 떠는 거 싫어.
김-그렇게 보이세요. 그런데 한가지만 더 싫은소리 할께요.
정-괜찮아. 어디 한두번 들어본 것도 아닌데. 하하
김-아니, 너무 편하게 여러번 만났더니 제가 자꾸 실수하게 돼요. 계신 듯 안계신 듯 해서.작꾸 다리도 꼬고, 기대고, 너무 편해서 실수할까 걱정이네요. 그런데 제가 2006년 연예대상 받았는데 사장님때 받았어요.
정-그때 내가 했던 말 기억나요? 한번 물어보고 싶었는데
김-당연하죠. 저 그때 사장님 했던 말 다 기억나요.


시상자 발표하러 무대에 올라가는데 20분 전쯤에 봉투를 받았어요. 뜯어보고 싶었는데 참았지...시상식을 즐기고 싶어서. 그런데 무대 올라가기 직전에 계단 오르면서 뜯어봤어요. 이름이 김제동 이라고 써있더라구. 어떻게 재미있게 발표할까 생각하고 있었지. 이름 부르기 직전에 드럼을 막 치쟎아. 그래서 갑자기 생각나서 말했지. 나처럼 눈이 작은 김제동씨. (정연주)


김-당연히 기억나죠. 그런데 사장님 아세요? 금방 두팔로 드럼치는 흉내내면서 ...완전히 애같으세요. 하하. 뵐때마다 느끼는건데 인상이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아서. 힘든 일 많이 겪으셨을 텐데 언제나 편안하고 밝은 어린이같은 표정이에요. 저도 그럴 수 있을까요?
정-성격은 좀 낙천적인 편이에요. 자고 나면 감정정리가 빠르지. 성경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는 것. 난 우리나라 희망을 젊은 사람들에게서 봐요. 일부에서 20, 30대를 규정지으려고 하는데 그런 규정 지으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어요. 젊음의 특징은 무정형이고 그건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지요.
어제 대학에서 강연이 있어서 갔어요. 하면서 김제동씨 이야기 한참 하고 내일 만날거라 얘기했더니 학생중 하나가 그러더라고. 자기는 성공회대학 사회학과 10학번인데 김제동씨 왜 학교 안오냐고.


김-앗, 사장님 전 신문방송학과예요. 그리고 아직 수강신청도 다 안끝났는데...
그리고 그 부분 해명좀 해야겠습니다. 학교가는 것도 안가는 것도 희한하게 구설수에 오르는데.. 안가면 연예인이니 저럴 줄 알았다고, 또 학교 자주 가면 “요새 일 없느냐”고 물어봐요. 실제로 별로 일이 없긴 하지만. 적당히 잘 조절하는게 힘들어요. 하하.

정-2008년 촛불을 생각하면 저항도 생기발랄한 젊은이들의 잔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지. 여러가지 이유로, 특히 경직된 깃발이 나오면서 촛불이 사그러들었지만 어쨌든 요즘시대에 투쟁의식와 정교한 이론을 갖고 투쟁할 때는 아니쟎아요. 그저 신명나게, 젊은이들의 버전과 방식대로 해줬으면 해요.


요즘 강의 가면 그런 이야기 많이해요. 젊은이들의 방식대로 운동법을 만들어라. 예를 들어 나라 사랑하는 50가지 방법으로 애인 손 붙잡고 투표장 가기, 투표하고 오는 애인 뽀뽀 해주기 이런 식으로 말예요. (정연주)


김- 좋죠. 투표하는 행위가 중요한거죠. 누구를 뽑으라는게 아니라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적인 행위를 하라는 것. 정치보다 자아실현의 행위를 하라는 거죠.
그런데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없으세요? 해직기자 출신이신데 그 때 했던 구호들을 보니까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 이런 말이 있던데 요즘 들으면 조금 멀리 들리기도 해요. 그런 결기어림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하죠. 내가 그런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무릎 꿇는 척하고 한쪽 다리 살짝 들고 편하게 살면 어떨까... 이런 유혹이 많이 생길 것 같은데요.

정-요즘 세대가 취직, 등록금문제 등 어려운 점도 많지만 축복받은 세대이긴 하죠. 유신 때와는 다르고. 지금 거꾸로 간다고 해도 유신 때처럼 가는 것은 아니쟎아요.
김-그때로 가면 큰일이죠. 그렇게 갔으면 아마 사장님이랑 저랑 지하실에서 둘이 만나고 있겠죠. 우하하하하.
정-우리 때는 둘중의 하나를 선택받을 때가 많았어요. 중간이 없었지.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고.. 참 비극적이었어. 지금은 그 정도 처절한 것은 아니지. 개인단위에서 할 수 있는게 참 많쟎아. 트위터도 인터넷도.
김-지금 트위터에 글 올리면 몇십만명이 한꺼번에 봐요. 특히 저 안경벗고 찍은 사진 올리면 조회수 급격히 올라갑니다. 그럼 있다가 같이 안경벗고 사진찍어 올려볼까요? 그나저나 사장님에게 쏟아지는 질문이 정말 많네요.

정-지금은 건강한 시민으로서 참정권을 행사하고 참여하면 바꿀 수 있는 세상이죠. 선거에 참여해야 합니다. 기술도 뒷받침 됐고. 그런데 젊은이들이 현실적으로 영악하게 가는 모습을 볼 때는 안타까워요. 
얼마든지 자기 꿈을좇아서 가면 좋겠는데 단번에 평생 편해질 생각들을 많이 하죠. 고시에 지나치게 몰리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되면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집단이 되기 쉬워요. 


저도 요즘 젊은이들과 대하다보면 내가 기득권이 되어버렸다고 느낍니다. 내가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면서 기득권을 갖지 못한 다른 사람의 편에서 이야기할 자격이 되는가.. 하고 자괴심이 들때도 있어요.
해외갈 땐 비즈니스 타고, 아침엔 매니저가 승용차 갖고와서 대기하고 사고 싶은거 사고 넓은 집에 살면서 누리고 있는데 그저 허공에 대고 입바른 소리만 해대면서 내 양심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고민이 끊임없이 듭니다. 조언좀 해주십시오. (김제동)


 
정-그게 심하게 말하면 강남좌파지.. 하하

김-지금 저보고 좌파라고 하셨습니까? 

정-얼마나 큰 집에 살고 뭘 누리고 사느냐가 아니라 본인이 얼마나 진실되게 사느냐의 문제지. 난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잘못돼 있는 대표적인 것의 핵심이 물질적 축복주의라고 봐요.
강남 목사님들은 하나님 잘 믿어서 물질축복 받았다고 이야기해. 그런데 다른 목사님들은 부자가 하늘나라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시거든. 그만큼 어려운 사람 입장을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쉽지 않쟎아.
얼마를 가지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부, 명예, 영향력... 이런 것들을 얼마만큼 내 이웃을 위해 사용하느냐, 실제 베풀고 있느냐. 그게 중요한거지.

김-사실 기부할때마다.. 좀 아깝기는 합니다. 아니, 좀 행복하기도 하고. 우하하 그냥 웃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요즘 사회 환경을 보면 젊은 이들에게 채무감은 느껴요. 무상급식이든 등록금이든 결국 인간답게 살아가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어른들 책임인데 지금 나라가 나가는 방향이 삶의 질과 행복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느냐고 묻고 싶어요. 그런 쪽으로 간다면 젊은이에게 희망이 보이겠죠.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에게 미안해 해야 합니다. 4대강 사업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야.  전에 복지에 대해 판을 많이 깔아놨는데 후퇴하고 있쟎아. 예산이 없으니까. 복지라는게 망가지면 사회안전망도 무너지고 평등의 문제도 뒷걸음질치지.
이런 세월을 겪고 난 뒤 국민들이 교육과 경험을 많이 쌓아서 다음 선거 때는 내 삶과 관련해 어떤 선택을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지금의 시간이 역사의 축복이 되겠지. 역설적으로..  자연은 그대로 둬야하는데... (정연주)



김-제가 예전에 전파견문록이라는 프로그램 한 적이 있었어요. 어떤 아이가 나와서 단어 맞추기 퀴즈를 하는데 힌트를 주더라고요 “자연스러울 수 없는것” 그게 뭘까요? 정답이 자연이었습니다. 자연은 자연 그자체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울 수 없는 거죠. 갑자기 그 아이가 생각나서요.

정-아이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재담은 정말 놀라워요
김-제가 대안학교에 관심이 있어서 학교에 책도 보내주고 아이들 일기 등을 담은 문집을 받아보기도 하는데 정말 재미있고 기발한 표현이 많았습니다. 어떤 아이가 여름에 일기를 썼어요. 너무 덥다. 말라 죽을 뻔 했다. (폭소, 박장대소). 덥다는 표현을 이렇게 간결하고 솔직 담백하게 표현할 길이 또 있겠습니가.

정-사석에서 보는 게... 전에 노무현재단 출범하고 성공회대학에서 음악회 하던 날이었죠. 그때 제동씨 스타골든벨 하차통고 받은 날. 내가 그날 만나서 이야기했쟎아. 노대통령 노제하고 여기까지 오면 불이익 있을텐데 그랬더니 괜찮습니다.. 그랬쟎아. 그런데 바로 몇 시간 후 스타골든벨 잘렸어.

김-괜찮습니다. 전 오히려 진행자로서의 제 자질에 대해 반성해보는 계기로 삼자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말씀드렸지만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인간의 도리로서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다른 사람들이 꽃을 바치면 전 대신 제가 바칠 수 있는 마이크를 바친거죠. 우리 학교에 손님들이 오셨으면 학생으로 가서 의자를 깔 수도 있는 거고.
노 전대통령과 제 어머니의 인연은 여러차례 말했는데 우리 엄마한테 잘해준 최초의 국가공무원이죠. 유일하게. 만약 선거기간이었다면 좀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당선인 시절에 그 촌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다 들어주셨던 분이니까. 거기엔 어떤 정치적 이유도 있을 필요가 없어요. 자꾸 정치적으로 해석되니 너무 피곤하고 힘든거죠. (김제동)


김-꼭 여쭤보고 싶은 거는 만약에. 임기가 보장돼 있는 사장제 인데. 다음에 이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이 성향 다른 정권에서 이 일을 한다면 성향에 관계없이 보장되어야 하나요?

정=-그건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지. 독립성 요구되는 기구면 기구일수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또 어떤 정권에서든 대통령 아웃 하는 거는 찬성하지 않아. 국민이 뽑았으니까 임기는 보장하고 심판은 다음번 선거에 하면 되는 거거든.
직선제 이전 체육관 행사하고는 다르지. 직접 선거해서 뽑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되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많지만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임기는 보장해야 해.

김제동 씨. 우여곡절 겪고 있는 편인데. 올해 내가 65세야. 평생을 살아온 내 궤적을보면 내가 동아일보에서 계속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감옥가고 미국가고 한겨레 특파원, KBS 일련의 과정 지내놓고 봤더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경험은 다 소중하고 하나 버릴게 없더라고.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 구절이 좋아. 허투루 버릴게 하나도 없다는거지. 그 선택이 고난을 주고 빵살이도 하게했지만 그런 선택에 대해 후회도 않고 그 뒤에 되어가는 것을 보면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만약에 적당히 타협해서 남아 있으면 평범한 기자로 끝났을 거야. 김제동씨도 지금이 하늘의 축복, 역사의 축복일 수 있을 것 같은데. 토크쇼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만드는 거지.

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실제로도 다 매진이잖아. 축복이라니까. 
김-어떤 분은 탄압마케팅이 성공했다고 하는 분도 있어요. 저 때문에 재보선졌다고 하는 분도 있고. 전 그날 등산갔는데 완전히 나비효과도 아니고 참, 나...
정-아냐, 나비효과야. 심야 토크쇼 하는 미국 사람들. 데이빗 레터맨. 다 스탠딩 코미디에서 실력닦은 사람이지. 빌코스비도 마찬가지고. 거기서 청중들과 마주하면서 닦아놓은 실력이 나타나서 계속 가는 건데 지금 토크 콘서트 하면서 앞으로 엄청난 자양분 될거야. 
김-정말 많이 배워요. 관객들에게. 이야기로만 두시간 반 하는건데 다행히 많이 웃어주시고. 요즘 들어서 진짜 사람들에게 고맙구나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어요.
정-축복이지, 역사의 복.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영역을 만든 것이고. 이젠 트위터로 개인혁명이 가능해졌잖아요. 나라 앞날에 대해서도 낙관적이고. 기존매체 90%가 정권친화적인 언론환경인데 과거와 같은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상황도 아니잖아요.

김-트위터에 올라온 질문들이 있는데 소개해 볼게요. 시청자가 주주되어 방송국 만든다면 초대 사장직 수락할 생각있나요?
정-글쎄. 나에게는 안맞는것 같아요. 나는 완전히 자유인이 되기로 작정했어. 글쓰고 발언하는 것이 내 역할이야. 열린매체에서 방송을 할 필요는 있다고 봐요. 국민주를 하면 충분히 호응도 있고. 
김-좀 까칠한 질문인데요. 자녀의 군대문제와 관련한 의혹에 대한 질문이 있네요.
정-글을 통해 언젠가는 밝힐 때가 있을 건데... 80년 5·18때  1년간 수배돼 도망다녔지. 우리 큰형이 67년에 미국에 갔는데 장남이면서 한국에 한번도 안왔었어. 막내인 나는 감옥 들락거리고. 
그런 상황에서 형이 부모님을 초청해서 이듬해 부모님이 미국으로 갔어요. 난 부모님 떠나는 것 못 뵈었지. 그런데 부모님이 나보고 미국으로 오래요. 여기서 할 것도 없고. 그런데 미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유학밖에 없더라고. 그거 아니면 여권도 안나오고.
우여곡절 끝에 82년에 미국을 갔는데 미국 가기 몇 달 전에 2주 간격으로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어. 부모님 묘소에 절이라도 하러 간다는 심정으로 갔지. 내가 그때 유학갈 때 추천서 써주고 도움준 사람이 정운찬 총리예요. 여튼 그때 여기서 살던 뿌리를 뽑아서 미국으로 갔지. 18년 살았으니까.
애들도 학교다니기 전에 미국 간건데 거기서 대학원까지 다 졸업할 나이가 된거지. 내가 후에 한국 간다니까 아이들은 그냥 미국에 남겠다고 해서 안 따라왔지. 그게 전부예요. 결국 미국에 살면서 미국 시민권 받아 군대가 면제된 거지. 그런데 결과적으로 군대를 안 간 거고 우리나라 일반정서로는 거부감 느끼고 싫어할 거예요. 이해하지. 내 말이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고.

김-전 뒷목 잡고 혈압 상승하는 느낌 받을 때가 많은데 수도 없이 그런일 겪으셨잖아요.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나요.

정-날 잘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나 정말 열 잘 안받아. 하루 자면 다 잊어버리고.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 한 맺힌게 있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방송이 정권에 봉사하는 거은 극복되어야 해요.
다시 기자로 돌아가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은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지. 끊임없이 기억하고 반면교사 삼고, 개인적인 한 차원은 아니고 울분으로 그런 것도 아녜요.

요즘은 굉장히 자유롭고 편안해. 내가 차몰고 여행다니는 것 너무 좋아하는데 여행도 많이 다니고. 그런데 퇴직 후 가장 안 좋은 금단현상은 후배 못만나는 거지. 맨날 지 수준의 할배들만 만나니까.


김-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술을 너무 마셔서. 현정이 누나네 모여서 마셨는데 아이고 참...  샴페인이랑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완전 섞어서 먹었습니다. 
정-나도 요즘은 자제해요.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안마시지. 아침에 일어나면 기억이 안나. 

김-저도 그래요. 큰일 났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미실이 마시자고 하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혹시 <여배우들>이란 영화 보셨습니까? 제가 그거 못봤다고 했더니 누나가 다시는 놀러오지 말라고, 아주 혼났어요. 



<여배우들> 난 봤는데 정말 눈물나더라고. 이미숙, 윤여정, 그 배우들이 살아왔던 시대를 이야기하잖아. 진짜 눈물 나던데. 그리고 하이킥도 진짜 눈물나. 시트콤이 어떻게 그렇게 슬플수 있을까. 빵꾸똥꾸 말썽난 뒤에 1회부터 100회까지 다 봤는데 어쩜 우리사회의 계급문제, 학벌문제를 그렇게 슬프고 절절하게 그릴수 있을까 싶었지. 해리보고 정신분열증이라고 한 현실은 정말 처절한 시트콤이고. (정연주)


김-전 어떤 이름이 그렇게 특정 대상을 향해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정의를 내리는것을 보면 너무 좋아요. 
정-나 어릴때 연지곤지라고 놀림받았는데 빵꾸똥꾸 듣고 연지곤지로 아이디를 바꿔볼까 생각했어요. 내 아이디가 완전한 자유인인데.
김-필명을 완자로 바꾸는게 어떨까요. 이미지도 어울리시는데. 귀엽잖아요. 완자. 동글동글하고. 전 꼬요예요. 재석이 형이 옷 못입는다고 놀려서 지은 말요. 서래마을 꼬마요정.
정-나도 방배동 사는데. 
김-그럼 완자랑 꼬요랑 한번 만나실까요?
정-그래요. 거기 재미있는 사람들 많이 살아. 제동씨도 그 자리에 와야겠네.

김-사장님 한테 재미있는 질문이 계속 올라오는데요. 아굴연피모임? 이게 뭐죠. 

정-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피해자 모임. MB정권에서 기소돼 무죄판결 받은 사람. 여기 한총리도 넣어줘야지.


정리: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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