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콘서트] 허각, 장재인, 박태환… 우리에겐 ‘진짜’ 드라마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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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2030 콘서트] 허각, 장재인, 박태환… 우리에겐 ‘진짜’ 드라마가 필요해

김지숙ㅣ자유기고가


나는 가끔 한 권의 책이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내 인생이 고스란히 종이에 남겨져 도서관 한 켠에 꼽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떤 외피를 지닌, 어떤 장르의 책이 되어 있을까.
두께 350페이지 정도의 양장본이면 폼이 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의 무게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쩌면, 자칫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양장본보다는 100페이지 내외의 문고판 할리퀸 소설이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조차 쉽지는 않을 터이다. 나에겐 연애경험이 미천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사기와 음모가 난무하는 공포나 미스터리는 어떨까. 그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내 삶에는 스펙터클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 별다른 콘텐츠가 없는 나는 베스트셀러의 길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상상일 뿐이지만 약간 서글퍼진다.

그래도 뭔가 작지만 소중한 역할을 하는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걸어본다. 적어도 말 못할 좌절을 겪은 사람에게 뭔가 실마리를 던져주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화장실 안에 꽂아놓고 보다가 너무 웃겨서 배변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 책이었으면 한다.
문득 내 인생의 드라마적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이유는, 요즘 사람들이 논픽션의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처럼 이미 갈 데까지 가버린 픽션에 기대 못하는 감동을 논픽션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종영한 <슈퍼스타K>는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렸다. 

최근 믿거나말거나인 슈퍼스타K 법칙이 떴다. 이승철이 칭찬하면 떨어진다, 여자 심사위원을 울리면 떨어진다, 떨어지는 남녀 성비는 같다 등.

오래도록 살아남거나, 우승을 차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법칙도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드라마 같은 개인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 이번 시즌에서 1등을 한 허각은 환풍기 수리사를 하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 좁은 환풍기통 안에서 노래연습을 했다는 이야기는 드라마로서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중졸 아저씨의 신화를 만들며 1위를 한 것이야말로 드라마의 완성이다.

영국의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를 통해 휴대폰 판매원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주목받게 된 오페라 가수 폴 포츠가 생각난다. 그 역시 허름한 입성과 외모로 무시를 당하다가 멋진 고음으로 좌중을 놀라게 한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최종 3인 안에 들었던 장재인도 학창시절의 왕따 사실을 털어놓아 주목받았다. 그녀가 바닥에 앉아 기타를 칠 때 사람들이 진정성을 느낀 것도 “어리지만 뭔가 겪어낸 아이”의 연주였던 덕분이다.

중국 광저우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임신 7개월의 김윤미 사격선수가 태아가 놀랄까봐 공기권총으로 종목을 바꿔가면서도 결국 금메달 2개를 따낸 일, ‘세 쌍둥이 아빠’인 김학만 사격선수가 쌍둥이의 생일날 생일선물로 금메달을 딴 것도 훈훈한 드라마이다.
왕기춘 유도선수가 상대의 부상 부위를 공격하지 않는 모습에서는 그야말로 ‘오빠!’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리고 금메달 3관왕 박태환 선수가 딴 7개의 메달도 특별한 감동이었다. 그는 베이징올림픽 이후에 부진을 겪으며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어왔다.

하지만 성공한 드라마에는 시련이 양념처럼 따르는 법. 박태환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며 등의 피부가 몇 번씩 벗겨지도록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감동은 더욱 짙어진다.

온 몸으로 드라마를 쓰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새 나도 욕심이 생긴다.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같은 삶은 아니더라도, 당장 주변 사람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는, 그런 책을 하나 쓰듯이 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