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과 목요일, 시청률 경쟁의 승리자는 드라마 <대물>이다. 평균 시청률 25% 전후로 1일 최고시청률을 차지하며 이미 드라마 전체 분량의 광고가 모두 판매됐다. 광고 매출만 약 105억원.
승승장구하고 있는 드라마 <대물>은 제작 기획단계부터 불미스러운 일로 눈길을 끌었다. 제작 계약이 완료된 후에도 방송국에서 편성계획조차 잡지 않아 한없이 일정이 지연됐다.
제작을 반쯤 포기한 제작사에서는 주연 여배우 고현정을 상대로 계약금 반환 소송을 냈고, 배우는 맞고소로 대응했다. 드라마 제작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이번에는 작가와 연출자 모두가 초반에 교체돼 외압설 등의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SBS 드라마 ‘대물’에 출연하는 고현정. |경향신문 자료사진
방송가에서는 편성 연기와 주요 제작진 교체 모두 권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자칫 권력 비판으로 비쳐질 수 있어 방송국과 제작사 모두 알아서 처신했다는 것이다.
중도하차한 작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PD가 대사를 ‘쥐새끼들’이라고 바꿔 국정원에 끌려갈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외압이 있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을 수밖에 없는 두려운 현실이다.
정치권에서 이 드라마를 바라보는 시각은 껄끄럽다.
여당은 자신에 대한 비판이라 여기고, 야권은 또 나름의 이유를 들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런 참에 이계진 전 의원(한나라당)이 <대물>을 보고 쓴 글이 인터넷 상에 화제가 되었다. 이 전 의원은 “강원도 지사 선거전에서 패배해 상처 받은 마음에 이 드라마는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곧 이어 ‘정두언 최고위원님께’라는 다소 도발적인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요지는 선거에서 졌지만 양심은 승리했고, 극중 서혜림 의원처럼 진정 깨끗한 선거운동을 했으니 선거 결과에 대한 정두언 의원의 비판은 온당치 않다는 내용이다.
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모두에 밝힌 이 전 의원의 “아마도 이 드라마가 외풍 없이 끝날 수 있다면 대한민국 정치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국민과 함께 공감하고 있다”는 말은 이 드라마에 대한 세간의 염려를 한 마디로 보여주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전 의원은 서혜림 의원이 아나운서 시절 뉴스 시간에 딸꾹질을 해댄 일화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는 친박계 정치인이다.
일부에서는 이 드라마가 박근혜 전 대표를 띄우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또 한편에서는 박 전 대표와 서혜림 의원의 공통점이라고는 여자라는 사실 하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깨끗한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로 박 전 대표를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몇 해 전 드라마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그려져 ‘이미지 세탁’의 덕을 보긴 했었다. 유인촌 전 장관은 이때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을 연기했다.
정치현실 비판 정서 반영 대리만족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정치의 이면은 한 마디로 최악이다. 재벌뿐 아니라 폭력배와도 손잡고 범죄를 저지르며, 비인간적인 패륜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쓰레기통에서 여주인공은 오로지 원칙과 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대권을 잡는다. 꿈결 같다. 대중은 그렇게 성장해가는 원칙주의자에게 환호하고 정치권에 대해 환멸하고 있다. 한 마디로 권력을 비판하니까 통쾌하다는 것이다.
영화 ‘부당거래’ 포스터. |경향신문 자료사진
권력을 야유하는 것은 <대물>뿐이 아니다. 최근 정치권과 국가 공권력의 추악한 면을 여실히 보여준 영화가 있다. <해결사>와 <부당거래>다. 두 작품 모두 류승완 감독이 대본을 쓰고 제작에 참여하거나 연출을 맡았다. 화제작일 뿐더러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액션과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그의 전작들과는 많은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두 작품에서 감독은 사회적 정의와 권력의 부조리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강하게 드러냈다.
“우리의 오늘을 담고 있기에 사회비판이라는 평가도 있을 수 있다. 영화는 시대와 만났을 때 관객에게 전해지는 맥락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관객이 영화를 통해 사회 부조리와 비판의식을 느꼈다면 그것도 <부당거래>가 짊어질 몫이다.”
그는 무척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영화 속에 현실 권력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특히 <부당거래>는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스폰서 검사 이야기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해결사>에서는 정치와 권력이 어떻게 결탁돼 범죄를 저지르는지를 보여준다. 모두가 불편한 진실이다.
<부당거래> 제작 담당자인 여미정 프로듀서는 영화에서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가 어느 정도 흥행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권력 속성을 빗대는 이야기라 관객에게 어필하는 게 가능했을 수 있다. 아마 현재 대중들은 권력에 대한 피로현상이 쌓여 있을 것이고, 그런 울분이 이 영화를 보면서 어느 정도 해소 됐으리라 생각한다.”
너무 강한 사회비판을 담으면 관객층의 거부감도 있을 수 있고 흥행 실패의 위험도 높아져 제작자들은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염려에도 불구, 관객은 <부당거래>에 몰렸다. 답답한 현실이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재미와 영화의 완성도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야합하는 언론·검찰에 대한 야유도
<부당거래>와 <대물>에서 보여주는 또 다른 권력의 축은 언론이다. 권력과 밀착해서 의도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더러는 거짓조차 서슴없이 말하는 추악한 자리에 언론이 서있다. 언론과 권력은 둘이 아니라 한 몸뚱이며 서로를 위해 거짓과 비리를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저지른다. 이런 이야기가 영화 속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염려되는 것이 불행한 현실이다.
<대물>에서 방송국장은 정계 입문을 위해 권력자의 사주대로 움직인다. 한 인물을 필요 이상 미화하거나 의혹을 제기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예사다. <부당거래>에서 그려지는 언론의 수법은 더 구체적이다. 검찰에서 자기 입맛에 맞게 정보를 흘리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치고 빠지라고 교사한다. 언론은 몇 푼 돈 때문이거나 친분, 또는 다른 반대급부를 위해 철저히 복종한다.
류승완 감독은 “아직까지는 아무런 외압도 없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불편하겠지만 대중들은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보다 더 지독한 현실에 입을 다물고 있어도, 자신을 대신해서 권력을 질타하는 목소리에 드러내놓고 지지를 보이고 있다. 영화를 일러 꿈공장이라 한다.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영화와 드라마가 현실과 지독히 닮아 있다면 오늘의 권력은 괴물만이 출연하는 지독한 악몽이다.
김천<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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