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화심리학자 전중환은 혐오가 병원체 감염을 예방하는 심리적 적응이라 말한 바 있다. 낯선 병원체에 감염되지 않으려고 혐오 정서가 발동하도록 진화했다는 뜻이다. 새삼스럽게 이를 입증할 실험을 찾아볼 필요도 없게 되었다. “전염병이 다시 드러낸 바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퍼지자 우리 사회에 일어난 혐오증세를 개탄한 한 칼럼의 제목이다. 그 칼럼의 내용대로 전염병을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혐오와 배척의 정서가 일어나면서 공동체의 근간을 뒤흔드는 현상을 보는 것도 무서운 일이었다.
호모사피엔스의 미덕은 스스로 진화의 압박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유년시절에는 혐오감이 생존과 번식을 가능케 했다면, 문명사회에서는 환대가 종의 멸종을 막고 더불어 사는 세계공동체를 이룰 핵심가치가 될 터다. 이를 수긍할 수 있게 설명한 책이 바로 김현경이 쓴 <사람, 장소, 환대>이다. 지은이는 사람과 인간을 뚜렷하게 나눈다. 사람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안에서 성원권”이 있다는 뜻이다. 지은이가 보기에 사람, 장소, 환대는 맞물려 있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이에 비해 인간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일 뿐 사회가 인정하는 문제는 아니다.
오늘의 상황에서 ‘자리’라는 낱말에 오랫동안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이 자리는 중의성을 띠었을 터다. 하나는 자리 잡고 살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직위나 지위다. 지은이 설명에 따른다면, 우한에 고립되었던 국민이 귀국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 일부는 그들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돌아와 진단하고 치료할 공간을 내주지 않으려 했고, 그들도 마땅히 우리의 국민이라는 지위를 부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환대의 대척점에 낙인찍기가 있을 터다. 고프먼은 낙인의 특징으로 ① 신체의 괴물스러움 ② 정신적인 결함(의지박약, 비정상적 열정, 잘못된 신념, 부정직 등) ③ 특정한 인종, 민족, 종교에 속해 있다는 사실 등을 꼽았다. 낙인찍힌 이는 오염되었다고 여겨 공공장소에 접근할 수 없고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금지되었다. 신종 코로나 공포 탓에 오로지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택시에 태우지 않거나, 식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행위가 바로 낙인찍기다. 낙인찍기가 문제되는 것은 이들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인류사를 보면 낙인찍기와 배척은 반드시 희생양을 낳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를 낙인찍어 모욕하는 일에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이유다.
지은이는 데리다의 환대론(論)을 지렛대로 삼되, 그 한계를 돌파하며 절대적 환대의 가능성을 설파한다. 먼저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고대사회와 달리 현대사회 들어 모든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무조건적 환대를 받아 사회 성원이 된다. 이것은 “그 생명이 살 가치가 있는지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타자를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을 괄호 안에 넣은 채 그를 환대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 고대 로마 시절, 내다 버린 아이를 데려다 키운 사람은 아이를 종으로 부리거나 팔았다. 지은이는 이를 환대가 아니라 증여의 논리라 비판한다. 의무와 빚을 면책하거나 그 사실을 잊게 해주는 게 진정한 환대라는 것. 끝으로 복수하지 않는 환대. 적대적인 상대방도 환대해야 하는데, 이는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자격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은이는 타자의 영토에 유폐된 이들에게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는 것이 절대적 환대라 말한다. 더불어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최소한의 무대장치와 소품을 마련해주어야 마땅하니 “환대는 자원의 재분배를 포함하기 마련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지점에서 문화인류학적 환대는 정치경제학적 환대로 도약한다. 집 없는 이에게는 주거수당을, 일자리 잃은 사람에게는 실업수당을 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환대이니 말이다.
한 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환대받지 못하자 입학을 포기했단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이권우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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