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과학문화를 위하여
본문 바로가기

대중문화 생각꺼리/이권우의 책과 세상

품격 있는 과학문화를 위하여

언젠가부터 과학기술이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따지고 보면 예전에는 과학과 기술이라 했다. 그 ‘과’는 두 단어 사이가 무척 멀다는 것을 뜻했다. 앞은 좀 더 순수한 영역을, 뒤쪽은 좀 더 실용성을 띤 영역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두 단어 사이에서 ‘과’가 사라지면서 과학은 곧 기술이 되고 이는 경제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낱말이 되었다. 과학은 한마디로 돈이 되는 것, 조금 고상하게 말해서 미래성장 전략을 뜻했다.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괴짜가 세계와 우주의 근본원리를 파헤치려 고독하게 실험에 몰두하는 그림은 이제 떠오르지 않는다. 한마디로 품격이 사라진 셈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스스로 지식큐레이터라 부르는 강양구가 <과학의 품격>에서 이 점을 문제 삼았다. 지은이는 본디 과학기술은 빛나는 창의력의 산물이며,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 문화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대중은 과학기술을 마치 마술인 양 받아들여 원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효과를 성찰하지 않으며 그저 소비하고 감탄하는 데 그친다. 지은이는 과학기술이 “국가, 자본, 노동이 힘겨루기를 하는 정치의 장”이라면서 그 결과에 따라 “해방과 억압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이 충돌의 지점에서 과학의 품격이 솟아오른다. 오로지 과학기술을 기득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집단이 있지만,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 ‘경제’로만 한정할 수 없는 역할, ‘성장’이 아니라 공존과 공생”이 되도록 맞서 싸운 집단이 있다. 말하자면 과학의 품격을 지키려는 “치열한 고민, 용감한 실천, 힘겨운 싸움”이 있었다는 말이다.


일례로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내세운 시민과학센터가 있다. 1997년 결성한 이 단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민주화가 심화해야 한다면 과학기술은 왜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첫째, 관료, 정치인, 과학기술자가 독점해온 이 분야의 의사결정에 다양한 시민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둘째, 돈만 되면 사회에 미칠 부작용을 무시한 주류집단의 논리에 맞섰다. 셋째,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환기하고,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강조했다. 첫째는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문제를 시민이 숙의해서 결정하는 형태로, 둘째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셋째는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같은 단체의 탄생에 이바지했다. 아쉬운 점은 이 단체가 2017년 자진 해산했다는 것이다.


‘영화 제보자가 말하지 않은 황우석 사태의 진실’이란 부제가 붙은 1부는 한 과학자와 국가권력, 그리고 열광하는 대중으로 이뤄진 리바이어던과 싸운 진실한 과학자와 언론인의 면모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른바 황우석 사태에 얽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영화 <제보자>의 내용과 비교하면서 흥미진진하게 그렸는데, 한국사회를 집단적 광기로 몰고간 사건을 냉정하게 복기하는 데 맞춤하다. 유독 눈길이 갔던 대목은 “운이 좋았다는 구절”이다. 황우석 박사가 비록 법이 정한 것보다 엄청 많은 난자를 썼다지만, 중복사진, DNA 지문 분석 등에서 숱하게 논문을 조작했다지만, 만약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나 인간복제 배아줄기 세포를 손에 쥐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자문한다. 애국주의 광풍에 휩쓸려 <PD수첩>은 줄기세포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상태지만 방영을 유보한 상황이고, 지은이는 테러 위협을 받았던 시절이다. 오로지 돈, 경제, 성장에만 매몰된 대중은 두 언론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했을 게 분명하다.


얼마 전 옥스퍼드 사전이 2019년 올해의 단어로 기후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를 선정했다. 일찌감치 환경과 기후 문제를 지적해온 지은이는 이번 책에서도 이 주제와 관련해 중요한 내용을 밝혔다. 먼저 미세먼지. 일반적인 어림짐작으로 미세먼지는 중국 탓이라 여기지만,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요인이 크다고 한다. 대체로 발전소나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나온 미세먼지와 오염물질이 대기가 정체되면 그 농도가 짙어진다. 특히 경유차 배기가스가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미세먼지로 바뀐다고 한다. 남 탓하지 말고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며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다음으로는 에너지 전환 문제.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탄소문명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 대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은이는 우리나라가 지형적으로 태양광 발전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을 한 방에 날려 보낸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독일의 태양광 발전이 올해 6월 최대 단일 전력 발전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독일은 우리보다 위도가 훨씬 높다. 그만큼 태양 에너지의 양이 적다. 독일이 되면 우리는 더 잘된다는 뜻이니, 앞으로 햇빛이 안 좋아 태양광 발전을 하기 어렵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세계는 지금 풍력발전의 적소로 바다를 주목하고 있단다. 육지보다 바람 좋은 곳이 많고 이런저런 갈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이라는데, 삼면이 바다인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유리하다. 똥오줌으로 전기를 만들고, 수소를 저장하고, 사람의 체열로 난방을 한다. 문제는 의지다. 그동안 석탄이나 원자력에만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에너지원이 뒤섞인 ‘모자이크 에너지’ 모델을 구상하자는 지은이의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1969년 미국 의회가 가속기 연구비를 삭감하자 물리학자 로버트 윌슨은 “이것은 우리나라를 지키는 일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과학기술이 저절로 품격을 얻을 수는 없다. 당장의 쓸모를 넘어서 궁극적인 앎의 자리에 바짝 다가서려 할 때에,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일에 함께할 때에 비로소 과학은 품격을 얻게 될 것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