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본디 난분분하는지라 평정이 깨지고 심신이 산란해야 할 계절 아닌가. 햇볕은 졸음을 몰고 오고 바람은 얼굴에 난 솜털을 간질이며 꽃은 터져 나왔는데, 모두가 코로나19 탓에 심란하기만 하다. 거리 두기로 우울하기까지 하건만, 잇따라 요란한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신천지라는 교파 탓이었다. 그러다 이번에는 이 교파를 이단이라 부르는 일부 기성 교단에서 일이 터졌다. 당황스러웠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모범을 보이고 위로가 되어야 하거늘,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다니.
착잡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뒤적이다 손에 쥔 책이 김용옥의 <나는 예수입니다>와 김근수의 <슬픈 예수>였다. 전자는 마가복음을 기초로 예수의 삶을 재구성했고, 후자는 마가복음을 신학적으로 해설했다. 신약성경 편제를 보면 마태복음이 맨 앞에 나와 있지만, 성서학자들은 복음서 중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였다고 본다. 마태와 누가의 복음서는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또 다른 전승이나, 또 다른 종교적 염원을 담아 썼다고 보면 된다. 기실, 이 사실부터 전통적 해석과 갈등한다. 기성 교단은 천사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었다 해서 성경무오설을 주장하는데, 성경은 김용옥의 말처럼 담론 주체의 원망(願望)이 투사된 것으로, 김근수의 말대로 “인간의 고뇌와 한계를 숨김없이 드러낸 책”이라 봐야 마땅하다 싶다.
두 사람의 책을 읽으며 예수의 삶을 세 단계로 나누어 이해했다. 첫 단계는 다윗의 아들이고, 두 번째는 사람의 아들이며, 마지막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마가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전제에서 연역된 이야기다(김용옥). 메시아라는 히브리말을 희랍어로 옮긴 것이 그리스도인데,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뜻으로, 야훼가 선택한 이스라엘 민족의 왕을 가리킨다. 마태가 예수의 족보 맨 앞자리에 다윗을 둔 이유를 알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예수는 다윗의 아들을 부정한다. 이 대목은 데일 마틴이 <신약읽기>에서 잘 해명했다. 마가복음 8장을 보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는데, 베드로가 이의를 제기하자 호되게 꾸짖는 대목이 나온다. “모두 구세주는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땅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예수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구세주는 먼저 고난과 죽음을 겪어야 하며 그런 다음에야 영광이라는 보상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고난받고 죽음을 당하는 메시아”(김근수)를 뜻한다. 예수의 전도여행은 갈릴리 지역에서 출발해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갈릴리에서 예수는 일약 스타가 된다. 무리가 따르고 이적이 벌어지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여정이었다. 예수의 이적을 두고 김용옥은 “더러운 귀신을 내쫓아내는 것, 그것이 곧 하늘나라, 즉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가 강림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율법의 속박이 민중이 겪는 고통의 근원이었기에, 예수가 이를 폐기하고자 했다고 분석했다. 김근수는 예수가 맞서 싸운 것은 “사람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제도와 관행과 세력”이었다고 본다.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갈릴리에서 율법 문제로 바리새파와 싸웠다면, 예루살렘에서는 정치 문제로 사두개파와 일전을 펼쳤다. 지극히 종교적인 삶이 가장 급진적인 정치운동이 되었던 셈이다. 김근수는 예수의 성전항쟁을 힘주어 말했다. 성전에서 상인을 쫓아내고, 첫째가는 계명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선포한 일을 가리킨다. 지배계층이 예수를 위험인물로 낙인찍고 죽여 버리기로 최종 확정한 이유다.
마침내 예수는 십자가 처형을 받고 죽는다. 그때 사형집행관이었던 백인대장이 “이 사람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을 다윗의 아들이 되려는 유혹을 이겨내고 사람의 아들로서 본분을 다 마쳐 비로소 하느님의 아들로 승화한 것이라 이해했다. 하느님의 아들이 되어야 부활할 수 있는 법. 김근수는 예수의 부활을 두고 역사에 희생된 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하느님의 선물이라 했다. “악인의 삶은 처벌받고 희생자의 삶은 위로받는다”는 것을 확인해준 사건이어서다.
김용옥은 마가복음의 예수를 “어둡고, 외롭고, 답답하고, 슬프고, 비극적”이라 평가했다. 김근수는 아예 책 제목을 ‘슬픈 예수’라 지었다. 오늘 온갖 교회가 섬기는 예수는 어떤 모습일까? 사람의 아들이 되려는 무리가 그립다.
<이권우 도서평론가·경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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