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TV에선] ‘집방’과 자급자족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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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TV에선] ‘집방’과 자급자족 예능

지난해 안방극장을 지지고 볶는 소리로 가득 채운 ‘쿡방’에 이어 올해는 집을 소재로 한 ‘집방’이 뜬다고 한다. <집밥 백선생>, <냉장고를 부탁해> 등으로 ‘쿡방’ 유행을 주도했던 tvN과 JTBC가 이번에도 새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tvN은 인테리어 정보예능 <내 방의 품격>, JTBC는 인테리어 배틀 예능 <헌집줄게 새집다오>를 거의 동시기에 선보이며 ‘집방의 시대’를 선언했다.

그런데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는 새로운 흐름이라기보다 이전 예능 트렌드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집방’의 원조로 새삼 거론되고 있는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얘기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대중을 위한 재건판타지였다는 점에서 <신동엽의 신장개업>과 같은 공익예능의 자매품이었다. 이에 비해, 최근의 ‘집방’은 재건의 희망은커녕 점점 혹독해지는 현실의 무한경쟁 시스템 아래서 새로운 예능 트렌드로 떠오른 생존 버라이어티의 흐름 안에 있다.

가령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방송가를 장악했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뒤이어 등장한 SBS <정글의 법칙>, MBN <나는 자연인이다>, KBS <인간의 조건>, tvN <삼시세끼>, <삼촌로망스> 등과 같은 야생, 자연 회귀지향 프로그램, 그리고 지난해의 ‘쿡방’까지도 크게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각기 배경과 소재는 다를지라도 하나같이 극한 또는 최소한으로 축소된 삶의 조건 속에서의 생존 방식을 그려나간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스로 악조건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 ‘자급자족’에 초점을 맞춘다.





‘집방’ 역시 이러한 자급자족 예능의 후속편이다. 예컨대 <내 방의 품격>과 <헌집줄게 새집다오>는 공통적으로 극도로 제한된 조건에서의 ‘셀프 인테리어’를 표방한다. <내 방의 품격> 첫 회는 10평대 집 인테리어에서부터 출발하며 최저 비용을 강조하고, <헌집줄게 새집다오> 또한 99만원이라는 최소 비용을 원칙으로 내세운다.

이들 프로그램보다 앞서 방영된 SBS ‘집방’ <에코빌리지 즐거운가>는 한층 극단적인 자급자족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인테리어를 넘어 디자인부터 완공까지 전 과정을 출연자들이 스스로 해내며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집방’이 대표하는 자급자족 예능의 부상은 삶의 가능성이 점점 축소되어 가는 시대적 흐름에 정확히 부응한다. 단적인 사례로, 매해 ‘트렌드 키워드’를 제시하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팀은 이 시대의 생존방식으로 차선책인 ‘플랜 B’도 아닌 ‘플랜 Z’와 ‘자급자족’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삶의 비용을 최대한 절감할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에 주목했다.

국내 1위 온라인리서치 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펴낸 <2016 대한민국 트렌드>에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핵심 키워드로 ‘집’을 꼽았다. 결핍과 불안의 시대에 ‘집’은 최후의 보루로 재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헌집줄게 새집다오>의 첫 번째 의뢰인이었던 예정화가 무엇보다 전신거울을 강조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장면이었다. ‘집방’은 갈수록 축소되는 최저생계 시대의 거울처럼 도착했다.



김선영 | 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