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광고 시청은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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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광고 시청은 노동이다


SBS 드라마 <용팔이>가 화제다. 내로라하는 미남미녀 배우가 출연해서 시청률도 20%를 넘겼으니 굳이 ‘화제’라 부르는 것이 겸연쩍다.

그런데 지난주 방영된 <용팔이>가 화제를 모은 이유는 남녀 주인공의 러브라인이나 복수심, 기억상실, 오해와 해소만이 아니었다. “핸드폰 줘봐, 방 알아볼게”라는 대사와 함께 등장한 모바일 앱 ‘직방’의 뚜렷한 로고. 이어지는 앱 기능의 설명. 그리고 얼마 후 생수 ‘몽베스트’를 쥐고 있는 여주인공의 클로즈업된 손. 이어서 아이들 밥 사먹이겠다며 들어간 식당 ‘본죽’. 시청자들은 벌써 이런저런 패러디를 만들며 드라마를 비웃고 있다. 마침 시청률도 17% 선으로 떨어졌다.

극 중 재벌가 ‘사모님’을 미술관장으로 설정하려다가 PPL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포기한 사례는 고전으로 꼽힌다. 돈 많은 남자 주인공이 모는 고급 자동차는 반드시 앞면부터 카메라로 한번쯤 훑어주는 것 역시 한국 드라마의 오래된 미덕(?)이다. 드라마만이 아니다. 2010년 1월부터 간접광고가 부분 허용된 이후 예능 프로그램의 PPL도 확 늘었다.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편은 LG 텔레비전과 코카콜라 상품들을 “전혀 간접적이지 않게” 광고했다. 시골에서 ‘자연식’을 만들어 먹는 <삼시세끼>에서도 출연진은 줄기차게 커피를 마셔댔다. 요즘 잘나가는 요리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와 <수요미식회>는 간접광고가 빌미가 되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이 개정안이 현실화된다면, 관련 신문보도들에서 예시한 대로 <SKT와 함께하는 히든싱어>나 <갤럭시S6로 보는 무한도전>과 같은 제목광고가 가능해진다. 보도·시사·논평·토론 프로그램에도 사실상 협찬을 허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이미 광고인지 드라마인지 모르는 영상물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이제 광고 틈틈이 예능이나 뉴스를 봐야 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묻는다. 광고가 좀 있으면 어때? 방송사도 먹고살아야 하잖아? 어떨 때는 PPL이 재미있던데?

하긴 간접광고 확대를 애타게 바라는 방송사나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개정안을 준비 중인 방통위 모두 방송사의 재원 확보를 주요 논리로 삼는다. 지상파는 모두 수백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으니 광고규제를 풀어달라고 보채고, 종편과 지역방송은 우리부터 먼저 열어달라고 떼를 쓴다. 하긴 지방자치단체들조차 시립미술관 예산을 줄인다면서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식의 제목광고를 스스로 나서서 하는 판이다.

“텔레비전 시청은 노동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의 섯 잴리(Sut Jhally) 교수가 30년 전 던졌던 고전적 명제다. 시청자들은 (예를 들어) 10분 동안 광고를 보는 대가로 50분 동안 드라마를 공짜로 본다는 것이다. 광고 시청은 노동이고, 드라마 시청은 보수이다. 노동은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 가치들은 쌓여서 광고된 상품의 교환가치를 상승시킨다.



프로듀사 ppl 스타일난다_경향DB



따라서 아무도 보지 않는 광고는 상품의 가치를 올릴 수 없다. 당연한 일이다. 광고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시청자도 있지만, 그것은 일에서 재미를 찾기도 하는 노동자와 유사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일을 적게 하고 보수를 많이 받길 원한다. 자본가는 적은 보수를 주면서 일을 많이 시키길 원한다. 같은 논리이다. 시청자들은 광고가 나오는 동안 화장실에 가거나 다른 채널로 도망가버리고, 광고주들은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두기 위해, 즉 일을 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축구장 한복판에 가상으로 상품 로고를 띄우는 소위 ‘버추얼 광고’나 드라마 안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PPL은 이 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잴리 교수의 논리를 빌려오자면, 드라마 PPL은 노동과 그 대가가 섞인 기형물이다. 모처럼 휴가를 받아 놀러갔는데 문자메시지를 통해 급작스러운 업무지시를 받는 꼴이다. 월급 주면서 반쯤 뭉텅 잘라내 회사에 기부금으로 내라는 격이다.

요즘 같은 세상, 통신료 따로 내고 VOD 값 따로 냈으니 노동 없는 드라마를 보고 싶건만, 강제로 앱 광고, 음료 광고, 식당 광고를 봐야 하는 것이 어찌 정상일 수 있는가?

게다가 정부는 나 억울한 것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돈 못 버는 회사들만 불쌍하다고 한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동조합을 통해 항의해야 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들도 멍하니 바라보고 있지 말고 뭐라도 해야 한다. 방송 관련 시민단체에 힘을 보태거나, 방송사·방통위에 직접 항의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이라도 가져야 한다. 내가 일하고 월급 받는 회사의 일이란 말이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