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대량 소녀 성장서사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Mnet <프로듀스 101>에 이어 대규모 보이그룹 데뷔 서바이벌 <소년 24>가 지난 18일 방송을 시작했다. 49명의 소년들은 가슴팍에 ‘소년 OOO’이라는 명찰을 붙이고 나와 자신의 불확실한 성장서사의 서문을 열었다. 그들은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의 불안한 미래와 “뭐 먹고 살 거냐”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오직 자신의 꿈을 향해 땀흘리며 달려갈 것이다. 이 시간을 거치고 나면 몇 뼘쯤 성장해 있을 것이며, 지금의 어설픈 무대는 후일 자기 역사의 자료화면으로 남을 것을 예고한다.
49명의 <소년24> 후보들이 Mnet <소년24> 제작발표회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시즌5째 승승장구하고 있는 래퍼 서바이벌 <쇼미더머니> 역시 비슷한 성장서사를 안고 간다. 힙합/랩이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래퍼 개개인의 고유한 성장담의 성격을 띤다.
마이크 하나로 바닥부터 기어올라와 슈퍼카를 모는 부자가 된 도끼의 서사, 전국을 돌아다니며 길거리 프리스타일 랩 배틀로 ‘도장 깨기’를 하며 ‘전국구’가 된 서출구의 드라마. 그 ‘소년’들이 뱉는 자신에 관한 짧은 드라마는 소비자를 매혹한다. 이때의 소년은 반드시 생물학적 나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직 ‘무엇’이 되지 못한 미완의 상태, 세상의 무시와 편견에도 오직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 되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가는 이들이면 모두가 ‘소년(소녀)’이다.
인간이 성장서사를 애호하는 것은 본성에 가깝다. 그 본성이 실은 ‘팬질’의 뼈대를 이룬다. 불편한 것은 지금 TV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비슷한 성장서사를 찍어내어 대량공급하는 공장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과거 소수의 팬들이 손수 발굴하던 연예인의 역사는 이제 기획되어 그들 손에 쥐어졌다.
<K팝스타>류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런 목적에 복무하며, 지금은 여느 때보다 많은 연예인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다. <윈: 후이즈넥스트>(2013)와 <믹스앤매치>(2014)는 YG의 보이그룹 위너와 아이콘을, <노 머시>(2015)는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보이그룹 몬스타엑스를 만들어냈다. JYP는 <식스틴>(2015)을 통해 걸그룹 트와이스를 데뷔시켰고, 올해 각 기획사의 연습생을 총망라한 <프로듀스 101>은 아이오아이를 배출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새로운 소년은 끝없이 공급된다(남자판 <프로듀스 101>이 내년 1월 출격 준비 중이다). 프로그램들은 TV 플랫폼 안팎을 오가며 다채로운 성장의 서사를 진열하고, 시청자는 이 소년에서 저 소년으로 갈아타며 드라마를 소비한다. 지금 스타가 되려는 소년은 누구든 자신의 드라마를 만드느라 분투해야만 하지만 그뿐, 신화가 되지도 어른이 되지도 못한 채 계속해서 새로운 소년으로 대체된다.
이런 가운데 역설적으로 눈에 띄는 ‘소년’은 자신이 직접 만들고 부른 노래 ‘열아홉’으로 음원 차트 1위에 오른 ‘MC그리’다. 그는 어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성장서사 통째를 현재진행형 방송으로 공유하고 있는 예외적 인물이다. <붕어빵>에 나오던 김구라의 아들, 어린이 김동현은 수난의 가족사를 생중계해왔고 이제 그 상처를 제 노래로 소화해내는 소년으로 성장했다. 래퍼를 꿈꾸는 그는 <쇼미더머니>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을 이미 갖고 있다. 논란이 일었던 것처럼 그가 래퍼로서 ‘금수저’라면, 그 진짜 이유는 아버지가 돈과 명예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성공적 데뷔의 ‘치트키’인 리얼한 삶의 드라마와 역사를 확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로사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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