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휴먼다큐 사랑> 2016년 방송분이 지난주 종영했다. 올해로 11년째, 가정의 달 5월이면 어김없이 안방 문을 두드린 이 장수 시리즈는 인간 내면의 상처에 밀착하면서도 비극성에 함몰되지 않는 담담한 연출로 호평받아 왔다.
하지만 올해는 유독 문제가 많아 보인다. 엄앵란, 신성일의 굴곡진 부부 역사를 사랑의 해피엔딩으로 봉합한 1부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뜨거웠다. 엔딩과 함께 봉합된 것은 부부의 갈등만이 아니라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가부장제의 억압적 현실이었다.
이런 시선은 이후 편에서도 이어진다. 특히 두 차례나 소재로 선택한 ‘입양’ 이야기에서 두드러졌다. 3부 ‘내 딸 미향이’ 편은 딸의 청각장애 치료를 위해 스위스로 입양을 결정한 탈북여성의 사연, 5부 ‘사랑하는 엄마에게’ 편은 28년 전 각각 다른 나라로 입양됐다가 극적으로 재회한 쌍둥이 자매의 사연을 다뤘다.
두 편 모두 다른 매체를 통해 유명해진 이야기다. 엄마 뱃속에서 사선을 넘은 “최연소 탈북자” 미향과 생모 장해연씨의 사연은 이미 몇 년 전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쌍둥이 사만다 푸터먼과 아나이스 보르디에의 사연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화제가 된 뒤 다큐멘터리 영화 <트윈스터즈>로 더 널리 알려졌다.
<휴먼다큐 사랑>이 ‘입양’ 문제에서 이들의 후속 사연을 다룬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 그동안 거의 조명되지 않았으나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자리한 탈북아동 입양 문제나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뿌리를 들여다보게 된 SNS 세대의 입양 문제 등 달라진 현실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휴먼다큐 사랑 MBC_MBC 제공
그러나 정작 방송은 이 복잡한 현실을 모녀지간의 구시대적 갈등구도로 축소한다. ‘내 딸 미향이’에서는 딸을 다시 데려오려는 생모를 중심으로 “낳아준 엄마와 길러준 엄마”의 고전적 갈등을 재연한다. ‘사랑하는 엄마에게’는 생모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 출생지 부산을 방문한 딸들의 엄마 찾기 여정을 그린다. 생모의 연락과 관계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선언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트윈스터즈>와도 상충하는 전개다.
이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남는 건 ‘나쁜 엄마’ 이미지다. 딸을 버렸다가 치료까지 끝내고 잘 성장하자 뒤늦게 찾아온 미향이 생모나, 쌍둥이를 갈라놓은 데다 출산 사실마저 부인하는 사만다와 아나이스의 생모는 3부 내내 반복하던 장해연씨의 ‘엄마의 자격이 없다’는 말처럼 이기적인 모성으로 비춰진다.
이러한 시선은 입양 문제가 곧 여성의 문제이기도 한 현실을 생각할 때 더욱 불편하다. 입양 아동 10명 중 6명이 비혼모 자녀라는 통계가 말해주듯 한국 사회의 입양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쌍둥이 자매의 생모가 입양을 선택한 것도 미혼모여서였다.
장해연씨 사연은 더 복합적이다. 최근 탈북고아와 입양 문제에서는 중국인에게 신부로 팔려오는 북한 여성의 현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장씨도 여기에 해당된다. 더욱이 그의 최종 입양 결정은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딸과 함께 건너온 “꿈의 나라” 한국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탈북자, 싱글맘, 장애인 가정으로서 정씨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금 <휴먼다큐 사랑>에 필요한 건 사랑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그 상상을 구체적인 현실로 그려낼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일 것이다.
김선영 |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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