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게 있어야 배우지. 만나기만 하면 싸움박질. 사람만 없으면 뒷담화질. 삐지시지….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니? 노인과 어른은 분명히 달라.”
노희경 작가의 새 드라마 tvN <디어 마이 프렌즈>(디마프)는 박완(고현정)의 입을 통해 앞으로 이 드라마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가 보여줄 어른은, 젊은 우리와 똑같은 이런 어른이다. 엄마의 이런 늙은 친구들, 호기심이 가니?
김혜자, 고두심, 나문희, 윤여정 등을 주연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는 ‘어른의 역할’에 관심 없다. 노인을 ‘고령화 사회’의 문제적 대상으로 한정짓거나, 이 사회가 요구하는 어른상을 제시하기 위한 도구로 삼지도 않는다. 노인들은 “한번뿐인 인생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시한부’”인 우리와 함께 이 세계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일 뿐이다. 그들은 일만 하는 억척 엄마(고두심)이거나, 밥만 하는 억척 엄마(나문희)이거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공주 엄마(김혜자)이지만, 동시에 남편과 부모에게 평생 ‘일순위’가 아니었던, 사랑받지 못한 상처를 가진 여자이고, 신혼 초 약속했던 세계여행을 반평생 꿈꾸고 있는 친구이며, 남편이 죽고 혼자 남았지만 어떻게든 죽음의 유혹에 맞서 살아내려는, 우리와 똑같이 자신의 인생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한 인간이다.
드라마는 젊은 박완을 화자로 내세워 ‘친구’로서 그들의 삶에 말을 걸어보려는 태도를 취한다. 첫 회의 제목 ‘미안하지만 난 당신들이 궁금하지 않아요’는 오히려 드라마 속의 박완과 TV 앞에 모인 우리가 앞으로 ‘꼰대’들의 삶을 점차 궁금해하게 되리라는 점을 예고한다. 과거 노희경의 드라마가 그래왔듯 ‘유사 가족’의 설정도 눈에 띄는데, 이번 드라마에는 할머니들-엄마들-딸의 느슨한 ‘여성공동체’가 등장한다. 특히 박완이 엄마의 동창생인 ‘이모’들 “모두의 딸년”으로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과정은, 사회 공동체 전체로 확장해 생각해보면 젊은 우리 모두가 (유사) “딸년”으로서 거리의 모든 엄마들에게 우정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케 한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_tvN
공교롭게도 <디마프>와 동시간대 방송 중인 <그래, 그런 거야>(SBS)는 그간 지속적으로 국내 TV드라마에 노년층의 이야기를 반영해온 작가, 김수현의 작품이다. <디마프>가 젊은이의 시각으로 관찰한 노년의 삶이라면, <그래…>를 비롯한 김수현의 드라마는 실제 노년(혹은 중장년)의 시각으로 관찰한 이 세계의 풍경이다. 말하자면 김수현의 드라마는 그 자체가 노인의 내면으로 읽힌다.
그 안에는 마치 직인처럼 그가 바라는 자기 세대의 모습이 찍혀 있다. 그의 드라마에는 보수적 가치관의 ‘괜찮은 어른’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들은 사려 깊고 자애로우며 성숙하다. <천일의 약속>(2011)의 수정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며느리를 끌어안는 태도, <인생은 아름다워>(2010)의 민재가 동성애자 아들의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남 일인 줄만 알았다. 미안하다’며 울먹이는 모습은, 가져본 적 없는 ‘어른 같은 어른’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아름다운 어른은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기 때문에, 김수현의 드라마는 현실에 닿아 있는데도 종종 판타지극 같다. 그 어른들이 때로 같은 태도로 젊은이들에게 훈수를 두어 교조적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꼰대’의 솔직함으로 보여 흥미롭다.
어느 쪽이든 동시에 방영되는 두 드라마를 보는 것은 ‘살아 있는 노인’이 부재한 한국 TV드라마의 시청자에겐 반가운 일이다.
이로사 |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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