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칼럼]대중가요, 결론은 다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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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칼럼]대중가요, 결론은 다양화

르네상스기의 대표적인 학자 에라스무스의 휴식 예찬은 시적이다 못해 거룩하기까지 하다. “친애하는 신이시여, 나는 쉬고 있습니다. 이 휴식은 놀라워 입으로는 아무래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일해야 살지만 일만 한다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은 아니다. 일손을 놓고 긴장을 푸는 쉼을 가져야 산다. 쉰다는 게 레크리에이션 즉 재창조의 과정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휴식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는 사실이다. 생산의 제반 과정이 일정한 목표를 향해 돌아가는 것과 달리 쉬는 것은 일정할 수 없는 것이다. 



쉴 때는 자신만의 취미를 찾고 취향을 받들게 된다. 문화의 기반과 기본이 다양성에 있다는 얘기가 여기서 나온다. 만약 음악이 하나의 스타일밖에 없다면, 그 음악 스타일이 취향이 아닌 사람은 편안히 쉴 수가 없다. 그것은 결국은 위로와 휴식을 위해 존재하는 음악 스스로의 기능을 저버리는 꼴이다. 우리 대중음악은 아주 오랫동안 협소한 장르의 범위 때문에 질타를 받아왔다. 하나의 장르가 대세로 떠오르면 그전에 존재했던 이런저런 스타일은 고사의 비운에 처하곤 했다. 1990년대 초반 댄스음악이 부상하자 이전에 그토록 북적대던 포크의 공연장이 파리를 날렸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 대중가요는 획일화, 쏠림과 거의 동일시되었다. 2000년대의 K팝도 조금의 예외가 되지 못했다.



춤이 파워풀하고 섹시하며 저마다 나름의 개성을 갖추고 있다고 아무리 강변해도 결국 K팝은 아이돌 댄스 판이다. 솔로 가수 하나 없이 죄다 최소 네 명 이상의 그룹이었고 다들 춤을 주력으로 삼았다. 



해외시장의 혁혁한 성과에 대한 포장이 커질수록 장르 편중이 문제라는 지적의 수위도 따라 올라갔다. 실제로 아이돌 댄스그룹 주도의 K팝에 많은 국내 음악인구가 무신경했다. 그들은 취향이 맞지 않은 그 음악으로 휴식을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2012년 싸이 현상과 올해의 조용필 돌풍은 어쩌면 이런 장르 편중과 획일화에 대한 반성의 징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은 아이돌 댄스가수의 삼촌, 아버지뻘 세대이며 음악 이미지와 장르도 달랐다. 잘나가던 아이돌 댄스의 K팝이었지만 정작 글로벌 센세이션은 A급 외모와 신체가 아닌 B급 캐릭터의 37세 가수 차지였고 올해는 어이없게도 CD 20만장 판매를 돌파한 64세의 노장이 대세를 쥔 것이다.



(경향DB)



심지어 어떤 음악 관계자는 “일 년의 반밖에 안 지났지만 이미 ‘올해의 가수’는 조용필로 정해졌다. 하반기에 어떤 강력한 흐름이 등장해도 그 이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승승장구하던 K팝이 2년 연속 카운터펀치를 맞은 셈이다. 솔직히 근래 우리 음악계의 아이돌 스타 생산력은 뚝 떨어졌다. 요즘 나오는 아이돌 그룹들은 5~6년 전에 결성되어 펄펄 날았던 초기 K팝 전사들에 비해 존재감이 상당히 처진다. 이것은 앞으로 한국의 대중음악은 아이돌 댄스 일변도로는 곤란하며 서둘러 콘텐츠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중심을 아이돌 댄스그룹이 잡고 가되 장르와 세대를 더 넓게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제목 가수 싸이가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경향DB)



무엇보다 음악은 휴식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공존해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결론은 다시 장르 다양화다. 록, 포크, 재즈 등 여러 음악이 댄스음악 주변에 포진해야 하고 20대 가수만이 아니라 40~50대 가수들도 적당한 시장지분을 가져야 한다. K팝의 미래를 위해서만 그런 게 아니다. 새로운 창조의 의욕을 낳게 하기 위한 음악 본연의 휴식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다양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칸트 말대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순수한 기쁨의 하나는 일한 뒤의 휴식’이며 음악을 통한 휴식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한국 대중음악은 이걸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