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칼럼]가수의 예능 출연, 독이 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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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칼럼]가수의 예능 출연, 독이 되는 까닭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게 본업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노래만 해서 되는 현실은 아닌 게 분명하다. 과거에 가수는 텔레비전에 출연해도 대부분 노래하는 모습만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가수는 이런저런 활동을 보여주느라 참으로 분주하다. 아이돌 스타들은 춤추고 노래하는 본연의 일 외에 방송의 예능프로그램 패널로 나와 신상을 털고 재치 있거나 매력적인 언변을 구사해야 하고 더러 연기나 개그도 해야 한다. 음악보다도 예능적 재능을 발휘하는 게 인기 획득에 더 효과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KBS2 '우리동네 예체능' 기자간담회에서 가수 최강창민과 배우 이종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과외 활동이 본업을 넘어서는 이러한 역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별로 없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한 우물 파기의 신조를 폐기하고 멀티 플레이어와 다각화 풍조를 선호하고 있다.


그런 변화와 맞물려 가수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어느덧 추세가 아닌 대세가 되었다. 이것은 아이돌 가수만이 아닌 중견 가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전성기가 지나 활동이 뜸했던 가수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인상적인 몇몇 언행으로 단숨에 인기인으로 부상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어떤 때는 안쓰러워 보인다. 중견 가수의 경우, 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들의 전성기와 함께한 세대에게는 반가울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팬들로부터 ‘잊히는 것’에 대한 불안이 낳은 몸부림으로 보인다.


하기야 요즘은 잠깐만 보이지 않아도 금방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대중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래를 부르는 일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어떤 짓이라도 해야 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내건 명제는 설득력이 있다. “현대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보여진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시대이다!”


모든 작업이 그러하듯 음악 만들기와 가창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가는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지난 25일 2집 앨범을 낸 ‘버스커 버스커’는 2011년 케이블방송의 오디션프로그램 <슈퍼 스타 K3>에 출연해 선풍을 일으킨 후 일체의 방송활동과 매체 인터뷰를 끊고 신보를 위한 곡 작업에만 매달렸다. 모든 섭외를 거절한 채 오로지 음악에만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소포모어 징크스가 아니더라도 에너지의 집결과 분배가 절대적으로 우선시되는 음악과 가창 작업의 성격상 충분히 이해가 가는 ‘외부와의 단절’이다.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출처 :경향DB)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가수로서의 진정성 측면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주목받을 경우 확실히 단기부양 효과는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예술가라는 이미지는 후퇴할 소지가 높다. 아티스트 건전성은 악화되는 것이다. 잠깐은 살아나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잊혀버릴 수 있다.


심지어 노래에 초점을 둔 MBC <나는 가수다>도 신드롬이 그토록 거셌다. 하지만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활동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벌써 무게감이 떨어진 가수가 꽤 된다. 방송이란 게 그런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아닌 본연의 노래 활동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마침 음반·음원 시대에서 콘서트로, 라이브로, 페스티벌로 음악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어떻게든 자신이 설 공연 무대를 마련하고 늘리는 쪽으로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콘서트는 반향이 느리지만 가수의 생명력 보전에는 그 이상의 왕도가 없다. 


조용필은 말할 것도 없고 가수 활동 20년을 넘긴 이승철, 이승환, 신승훈이 히트곡 생산 여부와 무관하게 음악계에서 여전히 존재감이 큰 이유는 콘서트의 강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가수들은 모두 ‘라이브의 왕자’니 ‘라이브의 황제’니 하는 수식이 붙어 다닌다. 


신승훈은 수년 전 인터뷰에서 “이제 저는 음반으로는 비주류지만, 공연에 관한 한 주류”라면서 “한창 때 눈을 여의도(방송국)에서 잠실(공연장)로 돌리자는 철칙을 세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위치에 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수들마다 ‘가수 하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렇다고 예능 프로그램 나가겠다고 결단하는 게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세월이 지나면 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수라면 노래하는 방향으로, 정공법으로 풀어가야 한다. 지금 안 잊힐려고 하다가 영원히 잊히는 수가 있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