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과 댄스음악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의 감정을 흥분시키면서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흥분을 유발하는 요소는 두드림에 의한 박(拍), 이른바 비트라는 것이다. 음향학자들은 “사람들은 비트(Beat)를 인식(Perception)하면 행동을 일체화한다(Synchronization)”는 사실을 밝혀냈다. 앞 철자를 따 ‘BPS’라고 하는 이러한 특성은 록과 댄스음악이 펼쳐지는 곳에 가면 대번에 목격할 수 있다.
파워풀한 비트 음악이 들려오면 누구한테 배우지 않아도, 심지어 옆 사람의 움직임을 ‘커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몸짓을 하게 되면서 멀리서 보면 하나가 되는 일체화된 광경을 만들어낸다. 이게 현장음악, 바로 ‘라이브’고, 여러 팀의 라이브를 축제 형식으로 엮는 것이 페스티벌이다.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 공연 모습 (CJ E&M 제공)
근래 라이브와 페스티벌의 성장세는 무섭다. 공연강국으로 통하는 영국은 2011년 총 670차례, 지난해 700차례의 옥외 대형공연이 개최되었다. 라이브 음악의 매출은 해마다 10% 이상의 증가세를 보이면서 매출규모는 15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덩치 큰 나라답게 미국은 라이브 음악 매출이 10년간 거의 2배 증가해 2011년에 46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렇게 라이브 음악 쪽에 돈이 몰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대규모 관객이 참여하는 페스티벌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과거 음악계를 지탱해준 것은 주지하다시피 음반이다. 만약 가수가 100원의 수익을 거두었다면 대략 음반으로 75원, 공연으로 15원, 저작권으로 10원을 벌었다. 1990년대 말까지도 그랬다. 10년이 흐른 근래 음반 매출은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50%나 폭락해 반 토막이 났다. 반면 공연은 폭발적 성장세를 자랑하고 있으니 음반과 라이브의 지분이 완전 역전된 것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몇 년 뒤에는 가수들이 오로지 공연을 위해 신고 차원에서 음원을 만들지도 모른다.
흥겨워 하는 록매니아 (경향DB)
녹음된 음악, 그것이 음반이든 음원이든 음악산업의 중심을 지키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소비자들이 음악을 접하기 위해 음반이나 음원을 듣는 게 아니라 공연장과 페스티벌을 찾기 때문이다. ‘음악시장의 주인’인 젊은이들이 전에는 수개월간 돈을 모아 음반을 샀지만 지금은 페스티벌의 티켓을 구매한다. 전문가들은 “음악팬들은 이제 콘서트와 같은 직접적 체험을 원하고 여기에 비용지출을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수동적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 가서 직접 가수의 라이브에 빠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특히 무엇보다 인간의 BPS 욕구를 자극하는 페스티벌은 젊은 관객들에게는 거대한 유혹이다. 같이 흔들고 뛰노는 일체감을 즉각 형성할 수 있는 즐거움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하나의 ‘해방구’다. ‘함께 노는 음악’의 시대가 됐다고 할까. ‘듣는 음악’ 시대는 갔고 지금은 ‘보는 음악’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국내 음악계에서도 페스티벌은 이미 과열 단계로 진입했다. 올해는 여름 4주간에 걸쳐 지산밸리, 펜타포트, 안산밸리, 슈퍼소닉, 슈퍼콘서트 등 무려 5개의 대형 페스티벌이 열려 치열한 집객 경쟁을 벌이고 있다. 출연섭외 경쟁이 불가피해지면서 주요 해외 밴드의 몸값이 올라가고 그게 상당부분 소비자 부담이 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아직 공고하지 않은 공연시장의 현실로 볼 때 4주간 5개 페스티벌은 과잉이라는 것이다.
걱정되는 게 사실이지만 문제적 관점에 앞서 트렌드의 이동이라는 시점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라이브와 페스티벌이 음악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한다. 40년 넘게 활동하면서 한 번도 페스티벌에 출연하지 않았던 조용필이 올해 슈퍼소닉 콘서트에 참여하지 않는가. 음악계는 ‘볼거리’에 만족하지 않고 ‘함께 놀 거리’를 찾아내는 데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아이돌 댄스음악 주도의 K팝도 예외일 수 없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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