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칼럼]조용필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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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칼럼]조용필 현상

음반을 공식적으로 출시하기 전부터 조용필이 몰고 온 화제는 메카톤급이었다. 신곡 ‘바운스’가 음원차트 1위에 오른 그 순간에 벌써 현상을 예약했다고 할까. 4월 말부터 5월 첫 주까지 음악 관련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그의 것이었다. 신드롬이나 센세이션이란 표현을 적용할 수 있는 가수는 지금까지 한둘이 아니지만 당사자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60대 가수란 점에서 그 현상은 종이 달랐다.



디지털 세대가 주도하는 음원차트를 정복한 것이나 가수가 조금만 나이가 들면 음반판매량은 아예 포기하는 현실에서 10만장이라는 얼핏 이해할 수 없는 판매고를 거둔 것은 노장가수의 영역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베테랑도 추억의 뒤 무대가 아닌 현실의 앞 공간에서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조용필 돌풍은 인상적이다.



조용필은 가수로서의 시제가 과거가 아닌 현재임을 시범하기 위해 음반을 제작하면서 분명한 입장을 취했다. 스스로의 말에 따르면 ‘내 틀에서 벗어나는 것, 또 다른 나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렉트로닉 사운드, 모던 록, 랩 등 통상적으로 63세의 나이에 부합하지 않는 젊은 장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주행, 역공이었다. ‘영’한 음악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일반의 예상과 반대로 치고 나간 것이기에 낯설 소지가 다분했다. 사실 ‘바운스’나 앨범과 동명의 곡 ‘헬로’ 등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록이 혼합된 사운드와 선율은 기성세대 팬들이 알고 있는 조용필 음악 스타일은 아니다. 솔직히 처음에 40~50대 연령층에서는 ‘친구여’ ‘그 겨울의 찻집’과 같은 노래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러 번 들어야 친숙해질 곡이었다고 할까. 홍보와 마케팅의 조건이 유리하지 않은 노장가수 입장에서 팬들이 ‘여러 번’ 들을 수 있는 상황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조용필은 그럼에도 젊게, 모던하게 가는 리스크 전략을 감행했다. 모험과 도발을 택한 것이다. 흔히 아티스트를 논할 때 우리는 드높은 예술성과 함께 ‘태도’를 강조한다. 음악인이 아무리 대중 다수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내 호응을 창출했어도 기존의 성공 공식을 따랐을 경우 역사는 점수를 박하게 매긴다. 조용필은 이전의 패턴과 선입견을 탈피했다는 점에서, 역공을 취했다는 점에서 아티스트의 행보에 충실했고 그 결과 지극히 음악가적인 앨범을 내놓았다. 이게 음악계의 찬사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음악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이후의 전략을 구사하는 데도 주춤할 필요가 없었다. 그 나이의 가수가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쇼 케이스’ 행사에 나선 것부터 파격이었고 젊은 가수처럼 디지털 싱글을 낸 것도 놀라웠다. 특히 ‘바운스’를 월드스타 싸이의 ‘젠틀맨’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시점에 꽂아넣은 것은 대담함의 백미였다. 기성세대 팬들은 여기에 감동받아 “가왕답다!”를 연발했다. 어른들은 현재 “조용필이 잘되니까 괜히 내가 잘된 것 같다”고 뿌듯해하고 있다.




조용필은 오랫동안 오로지 노래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TV 출연이 아니라 공연에만 집중했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음악가의 진정성으로 최고 가수의 위상을 지킨 것이다. 아이돌과 예능이 판치는 요즘 음악계에서 진정한 가수의 면모를 원하는 사람은 그를 찾을 수밖에 없다. 대중은 모처럼 새 앨범을 가지고 컴백한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아마도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동시 포섭한 선풍은 음악역사상 거의 처음이 아닐까 한다. ‘어른 따로, 애들 따로’의 세대차가 음악부문에도 고착된 현실을 전제하면 정말 별일이다. 음악계는 조용필 열풍이 세대공생의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세대가 공존해야 우리 대중음악에 절실히 요구되는 다양성도 가능해진다. 너무 놀라운 일을 겪다보니 갑자기 바라는 것도 많아졌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