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칼럼]돌아온 거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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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칼럼]돌아온 거장들

싸이의 신곡에 대한 대대적 관심은 다시금 K팝의 글로벌 상승무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대중음악은 언제나 젊음이 주인인 ‘지금’의 음악이 끌어가는 것이라면 K팝이 대중적 시선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거대 기획사의 아이돌 댄스음악이 반드시 판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다른 한편에는 정반대 성격에다 그 못지않은 파괴력을 발하는 별도의 흐름이 움트고 있다. 


바로 음악계 전설들의 용트림이다. 과거에는 나이가 들면 시장과 인기차트에서 퇴각해 이름만으로 버티는 노장들이 근래 ‘레전드의 소환 분위기’를 타고 잇달아 전면으로 솟구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젊은 K팝이 힘차게 뻗어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또 한쪽에서 베테랑들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장면은 상쾌한 그림이다. 


 

신구의 등권(等權) 조성 때문만이 아니라 다양성을 꾸려간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또한 그들과 함께 청춘시절을 보낸 기성세대들도 돌아올 것이기에 공연시장의 확대 측면에서도 좋다.


열정무대 펼치는 들국화 (경향DB)



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조용필, 들국화, 이문세가 그 면면들이다. 전인권과 최성원이 다시 합쳐 전성기의 라인업을 갖춘 들국화는 현재 진행 중인 공연에서 ‘다시 행진’의 기염을 토하고 있다. 높은 음을 쩌렁쩌렁 울려대는 전인권의 말끔한 ‘쾌창’을 되돌려 받은 객석도 연일 감격의 ‘떼창’으로 화답 중이다. 


들국화는 서정성의 허울 아래 유약하고 나른해져가는 근래 대중음악의 행태를 꾸짖으며 씩씩한 아우성을 원하는 음악수요자들이 엄존하고 있음을 실증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공연으로만 컴백한 게 아니라 신곡도 내놓았다는 점이다. 전인권·최성원·주찬권이 재결합 신고식으로 이번에 출시한 새 노래 중 하나는 ‘노래여 잠에서 깨라’다. 멤버들은 현재 신곡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가수의 존재감과 활동력은 두말할 것 없이 신곡 발표에 달려 있다면 전설의 귀환에 방점을 찍는 인물은 가왕 조용필이다. 2003년에 18집을 낸 그는 10년 만에 정규 앨범을 들고 가수로서 현재 시제의 회복에 나섰다. 조용필 측은 “사람들이 신보를 냈다는 것만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자세를 낮추고 있지만, 록으로 무장한 신보 수록곡을 먼저 접한 사람들은 올해의 앨범감이라며 호평하고 있다.


젊은 가수들의 것보다 훨씬 빼어난 거장다운 음악이라서 음악계 전체가 조용필의 새 앨범에 초긴장 상태라는 얘기도 들린다. 조용필은 게다가 신보 출시에 맞춰 젊은 가수들의 특전인 ‘쇼 케이스’ 무대를 가진다. 환갑을 훌쩍 넘긴 노장 음악가로선 파격적 접근이다. 이후의 스케줄은 늘 그랬듯 전국 순회공연이다. 신작 앨범과 콘서트의 양면 공략은 돌아온 거장들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레전드의 귀환이라고 해서 결코 잠룡으로 머물지 않겠다는 회심의 선언이다. 


‘발라드의 아이콘’ 이문세도 6월 공연으로 컴백한다. 공연에 붙인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틀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공연으로 대한민국 관객들의 지난 세월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 역시 무대만이 아니라 11년 만의 새 앨범 제작에 땀을 쏟고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음악적 정체성과 앞으로의 30년’을 위해서라도 신곡을 내야 한다고 밝혔다. 


노련한 역전의 용사들이 단발의 성격이 강한 콘서트를 넘어 음반으로 컴백 포인트를 잡았다는 것은 위험하지만, 위험하기에 고부가가치의 행보로 평가된다. 


싸이를 비롯한 젊은 K팝 전사들이 독점하는 듯한 판의 한가운데서 아버지뻘의 전설적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내고 공연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은 이례적이다. 조용필, 들국화, 이문세 외에도 활동이력 20년을 넘긴 많은 중견들이 오랜 무기력을 털고 신보로 컴백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이 어쩌면 음악계가 실한 내외를 다지는 ‘조정기’인지도 모른다. 모처럼 반가운 풍경을 본다. 노래가 정말 잠에서 깰 모양이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