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칼럼]다시 유행가로 돌아간 대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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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칼럼]다시 유행가로 돌아간 대중가요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200년 전의 사람들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을 들었듯이 200년 후의 사람들은 비틀스 음악을 들을 것이다!”

 

비틀스의 명곡들이 세기의 신화를 넘어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까지 숭앙을 받고 있는 것을 전제하면, 그 시기는 200년이 아니라 50년 후로 앞당겨도 과언이라고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온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비틀스의 ‘예스터데이’ ‘렛 잇 비’ ‘오블라디 오블라다’ ‘헤이 주드’와 같은 곡들은 지금도 전 세계 음악애호가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가요도 전설의 반열에 올라있는 곡들이 상당수 있다. 한국의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의 ‘미인’이 발표된 지 올해로 정확히 40년이다. 조용필의 서사적인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어느새 28년의 나이를 먹었다. 이 곡들은 10대와 20대들도 누구의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을 만큼 아직도 살아있다. 당대에 인기를 누린 뒤에 소비, 소멸되지 않고 지금도 정서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곡들에 ‘유행가’라는 딱지를 붙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대중가요는 언제나 유행가로 등식되어 왔다. 노래가 나와서 그때에는 열광적으로 포용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세인들의 기억으로부터 배제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해당하는 노래들도 부지기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들도 그 못지않게 많다.

 

대중음악이 황금기를 누렸던 1960~70년대에 쉴 새 없이 출중한 작품들을 쏟아내면서 오랜 멸시의 굴레에서 벗어났고 그러면서 유행가라는 폄하도 떼어낸 것이다. 진정성을 가진 대중음악가라면 그 어느 누구도 유행가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하지 않는다.

 

 

(경향DB)

 

그러나 요즘의 음악을 말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간혹 이런 이야기가 오간다. “근래의 노래들 중에서 과연 향후 10년이 지난 뒤에도 살아남을 곡이 얼마나 될까? 한해를 버티기가 어려운데 흐르는 세월에도 통하는 애청, 애창곡이 나올 수 있겠는가?” 최신 인기가요들이 사람들의 뇌리에 둥지를 틀지 못하고 순간의 감각에 의존하다가 곧바로 버림을 받는 소비재, 향락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물론 작곡가가 곡을 쓸 때, 그리고 가수가 녹음을 할 때 잠깐 동안 통용될 작품이라고 가벼이 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을 들였건 공을 들이지 않았건 결과는 곡의 생명이 1주일 또는 2주일이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정서를 위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아예 노골적으로 유통기한에 충실한 곡들도 눈에 많이 띄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음악을 한다기보다는 장사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대량소비사회에서 버팀목이 되어야 할 음악마저 예술이 아닌 소비산업의 어두운 굴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열광하며 듣는 노래가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를 팬들에게 물었다. 아이돌 가수의 열렬한 팬인 한 10대 여중생의 답변은 이랬다. “글쎄요. 추억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바 노래처럼 남아있지는 않을걸요!” 인디 밴드만을 찾는 한 20대 남자대학생의 답변은 또 어떤가. “아주 좋기는 한데 10년이 지나서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제 밑의 아이들도 자기 시대의 젊은 밴드의 음악을 듣지, 우리가 들었던 밴드 음악은 챙기지 않을 겁니다.”

 

많은 음악관계자가 이제는 레전드와 명곡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갈수록 사람들이 찾는 음악은 최신음악이 아니라 더더욱 흘러간 시대의 음악일 것이라는 주장이 서글픈 이유는 어쩌면 음악이 시대 견인의 기능을 멈춘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 때문이다. 이제는 오로지 수익과 가수의 행사 출연료, 즉 돈 아니면 허세만이 남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자본 회전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지만 진정한 음악은 그 자본에 눌리지 않는 억지력이다.

 

소비품으로 전락했다는 말은 예술에 대한 자본의 완승을 의미한다. 모든 게 돈의 논리로 함몰됐다. 여기마저도 그렇다면 음악은 끝난 것이 아닐까. 대중가요가 유행가라는 괄시를 그토록 혐오했건만 지금은 솔직히 반박할 자신이 없다. 요즘 대중가요는 영락없는 유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