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역사적 위상을 강조하려는 표현법이겠지만 ‘한국 대중음악은 유재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유재하를 이렇게 특대하는 이유는 그가 한국형 발라드를 구축한 선두라는 것인데, 이 문장 그대로 쓰되 인명은 유재하 대신 음악문법 전체의 변동이란 점에서 서태지를 넣는 게 옳다는 주장도 많다. 또 다른 해당 인물로 한국 대중음악의 진정한 시작임을 전제해서 신중현, 대중음악의 예술과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측면에서 조용필이 빠질 리 없다.
그렇다면 20세기를 주도한 해외 팝음악의 경우는 누구를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분기점으로 얘기할까. 로큰롤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대중가요 가사의 일대 혁명이라는 밥 딜런을 거명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팝은 비틀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규정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본다면 ‘영국에서 온 이 네 명의 더벅머리’가 청년의 의식과 문화를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를 먼저 들 수 있다.
(경향DB)
그들이 주도한 로큰롤 밴드 문화는 스스로 연주와 편곡, 노래를 모두 해결하는 청년의 자주(自主)를 상징한다. 사실 그들의 우상인 엘비스 프레슬리는 곡을 쓰지 못했지만 비틀스는 거의 모든 곡을 주도적 멤버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작사·작곡했다. 음악에 관한 한 모든 부문을 자가 충당하면서 비틀스는 밴드 로큰롤을 ‘약동하는 청춘의 1960년대’라는 시대성과 맞물리게 했다. 기성의 질서와 가치에 저항하며 학원에서 거리로 뛰쳐나온 당대 베이비붐 세대들은 비틀스의 로큰롤과 함께 분노의 에너지와 자주 정신을 키웠다. 폴 매카트니가 “우리는 한 세대의 대변자였다”고 한 것은 비틀스 음악이 곧 시대정신이었다는 말과도 같다.
1960년대와 비틀스를 같은 범주로 묶는 표현의 결정타는 아마도 과거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이자 음악감독이었던 고 레너드 번스타인일 것이다. 그는 “1960년대를 알려거든 비틀스 음악을 들어라”고 단언했다. 분리할 수 없을 만큼 서로 엮인 ‘청춘과 1960년대’라는 의미망이 있기에 비틀스가 지금 같은 역사적 크기를 누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비틀스가 신화요 문화유산인 또 하나의 이유는 레너드 번스타인이라는 인물 그 자체로 설명이 가능하다. 비틀스광이었던 그는 줄기차게 “그들의 ‘엘리너 리그비’나 ‘페니 레인’ 등등의 곡들은 바흐, 브람스, 모차르트의 작품에 못지않다”며 비틀스 편애론을 폈다.
이것은 비틀스가 그때까지 팝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고전음악으로부터의 멸시에서 대중음악이 벗어나는 전기가 됐음을 가리킨다. 사실 클래식 진영은 팝을 저급한 유행가로 무시해왔다. 하지만 대중음악의 지평을 수단계 끌어올린 비틀스의 예술이 등장하자 조금씩 시선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비틀스의 1967년 앨범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전체를 슈만의 작품에 견주었고 작곡가 노엘 로뎀은 앨범의 수록곡 ‘쉬즈 리빙 홈’을 두고 슈베르트가 쓴 작품에 필적하는 곡이라고 칭송했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비틀스 실연(實演)에 나섰다. 유진 올만디가 ‘예스터데이’를 비롯한 비틀스 레퍼토리를 연주했고 베를린 필하모닉 등 무수한 오케스트라들이 비틀스를 곡 리스트로 채택하는 일은 1980년대 이후 다반사가 됐다. ‘예스터데이’가 20세기의 명곡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클래식 음악가가 주도한 무수한 리메이크 때문이기도 하다. 갈수록 대중음악은 클래식 쪽으로 가고, 클래식은 팝을 가볍게 포옹하는 흐름을 보인다. 어떤 클래식 음악가는 “내게 베토벤은 신곡, 비틀스는 고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막 비틀스의 새 앨범이 나왔다. 그들의 전성기인 1963년에서 1965년까지 자국 영국의 국영방송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실황 연주와 노래들을 묶은 것이다. 당시의 열악한 라디오 녹음장비 때문에 비록 음향은 낡은 수준이지만 그 속에서 비틀스가 펼치는 열정은 보석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링고 스타는 “그때 우리는 20대였고 코끼리와 사자 같은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고 했고 폴 매카트니도 “우리는 그냥 앞만 보고 달렸고 조금도 뒤로 머뭇거리지 않았다”며 앨범의 키워드를 스피릿과 에너지로 압축했다. 이 위대한 청년정신만으로도 비틀스는 세기의 문화유산이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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