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결산이 한창인 가운데 대중음악계도 올해를 장식한 좋은 앨범과 곡을 뽑느라 바쁜 시점이다. 앨범이든 단일 곡이든 빛났던 작품들 중에서 대체로 열 개를 골라 한 해를 정리하는데, 음악 관계자들과 평자들은 “올해는 열 개나 선정할 작품이 없다”며 상대적으로 수작이 부재한 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2012년 세계를 주무른 싸이의 ‘강남스타일’ 센세이션이 K팝의 정점을 찍은 걸까. 확실히 올해는 아이돌 댄스음악의 파괴력이 조금은 떨어진 느낌이다. 이곳저곳에서 아이돌 댄스음악에 대한 피로감이 확연하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대중음악이 받들어 모시는 현상과 선풍은 역사적으로 젊음이 주체가 되어온 게 보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이상했다.
선풍의 주인이 ‘바운스’란 노래로 4월과 5월을 강타한 나이 63세의 베테랑 조용필이었던 것이다. 이 곡이 전파를 석권하던 무렵 음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올해의 앨범’ ‘올해의 곡’ ‘올해의 가수’는 정해졌다”고 서둘러 예단(豫斷)하기도 했다. ‘바운스’ 선풍은 보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후 터진 크레용팝의 ‘빠빠빠’나 엑소의 ‘으르렁’ 그리고 음원 차트를 싹쓸이한 버스커버스커의 2집 앨범의 폭발적 호응을 압도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드가수 싸이의 신곡 ‘젠틀맨’과의 경쟁에서도 이겼다.
조용필의 컴백과 함께 올해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회자된 최백호를 비롯해 좋은 앨범을 낸 이승철, 장필순, 들국화 등 전설의 반열에 선 중견들이 오히려 힘을 썼다. 세대 균형과 더불어 장르 다양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분명 2013년의 소득이다.
케이블TV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이은 <응답하라 1994>의 바람은 중견의 부활과 함께 흘러간 콘텐츠가 묻히지 않고 끊임없이 자주 쓰이게 될 것임을 말해주었다. 진부한 말이지만 ‘복고’는 역사에 대한 재조명 열기에 힘입어 앞으로도 간헐적 현상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인디 음악 쪽도 주류를 넘보는 결정타를 내지는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터전이란 점에서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올해 인디는 음악 매출의 중심이 음반, 음원에서 공연으로 이동하는 추세의 주역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못박았다. 올여름 수도권에서 무리하게 다섯 개의 대형 록페스티벌이 난립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페스티벌에 강한 인디 밴드들 입장에서는 희망적인 흐름이라고 본다.
(경향DB)
문제는 상기했듯 아이돌 음악 쪽이다. 청소년들한테는 아직도 엑소 등의 아이돌 세상일지 몰라도 결코 올해 판세를 리드했다고 볼 수는 없다. 수년을 떵떵거리던 걸 그룹들의 활동은 고만고만했다. 아마도 SM 사단의 엑소, 샤이니, 슈퍼주니어, 에프엑스가 없었다면 아이돌 음악은 눈부신 해외활동과 달리 내수시장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을 수도 있다. 아이돌 빅 그룹 출신 멤버가 낸 신곡들도 대부분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K팝이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낸 지 5년에 다다르면서 피로감이 나타날 조짐이 보이는데 세계 진출을 주도해온 아이돌 그룹들이 어느새 아이돌이란 말이 무색하게 나이가 만만치 않은 것은 걱정스럽다. 이 대목에서 ‘샤이니’가 올해 펼친 앨범 활동이 돋보인다. 이들은 봄 시즌에 9곡이 수록된 풀 앨범을 연속으로 2장을 냈고 심지어 신곡을 덧붙인 세 번째 앨범으로 3부작을 완성했다. 음악도 기존 아이돌 음악과는 상당히 차별화된 실험적인 곡들로 높은 짜임새를 구현했다. 기획사 SM이 그간 내놓은 스타일과는 달랐다.
거의 반(反)아이돌 행보였다고 할까. 마치 우리를 마냥 아이돌로 치부하지 말라는 뜻인지 세 장의 앨범 제목을 각각 ‘너의 오해’ ‘나의 오해’ ‘우리의 오해’로 각각 붙였다. 그래봤자 기획의 산물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아이돌 그룹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놀라운 춤과 비주얼, 훌륭한 프로듀싱으로 급성장한 우리 아이돌 음악은 이제 키드를 넘어 다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기존 음악패턴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개성이 표현된 음악을 내놓지 않으면 K팝은 어려운 국면에 처할 수 있다. 이 문화적 쾌거를 춤이 아닌 음악의 승리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돌 음악은 달라져야 한다.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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