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를 처음 본 건 1993년 겨울 대학로의 작은 소극장이었다. 고찬용이 이끄는 5인조 재즈보컬그룹 ‘낯선 사람들’의 공연을 보면서 망설임 없이 그녀의 팬이 됐다. 이후 이소라는 동아기획 김영 대표에게 발탁되어 1990년대 최고의 여성보컬로 군림하며 잇따라 플래티넘 앨범을 내놨다. 6집 <눈썹달>(2004년)에 수록된 ‘바람이 분다’는 왜 이소라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수작이었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중략)/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문인들이 최고의 노랫말로 뽑은 이 곡은 이소라가 직접 썼다. 여기에 이승환(스토리)이 곡을 붙였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숨이 멎는 듯했다. 실연의 아픔을 어찌 이렇게 쓰고, 부를 수 있을까. 이소라는 대부분의 노랫말을 직접 쓴다. 노랫말 속의 얘기는 곧 자신의 얘기다. 그녀가 ‘난 행복해’라고 말하거나, ‘청혼’을 얘기할 때는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것이다. ‘바람이 분다’ 역시 지독한 이별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쓸 수 없는 노랫말이었다. 슬픔과 분노, 우울을 담은 노래들은 대체 불가인 그녀의 보컬과 어우러져 감정이 극대화된다.
프로듀서 이소라는 자신이 쓴 노랫말에 어울리는 곡을 쓸 작곡가를 찾는 데 탁월한 안목을 갖고 있다. 초기엔 고찬용, 김현철, 조규찬이 있었고, 신대철, 김태원 등 록밴드 출신 작곡가들도 있었다. 이처럼 넓은 스펙트럼은 어떤 장르든 소화해낼 수 있다는 보컬리스트 이소라의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1990년대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진행하거나 단독 콘서트를 앞두고 있을 때 방송사나 기획사 매니저는 늘 긴장상태에 있어야 했다. 이소라가 기분이 우울하거나, 무언가에 집중할 때면 사방 커튼이 드리워진 자신의 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소라는 저만치 홀로 핀 꽃을 닮았다. 바람이 분다. 이소라를 들어야겠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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