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치코트를 입고 낙엽길을 걷는 고독한 남자의 뒷모습과 가장 잘 어울리는 가수를 꼽는다면 단연 레너드 코언이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마치 속삭이듯 노래하는 코언은 시인이자 소설가, 뮤지션, 영화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2016년 11월 82세를 일기로 타계한 그는 작고하기 직전에도 정규앨범을 발표하는 열정을 보였다.
“당신이 원한다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요”로 시작하는 ‘아임 유어 맨’은 달콤한 유혹의 말들로 가득하다. 자칫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코언이 노래하면 진정성이 느껴진다. 권투선수가 되기를 원하면 기꺼이 링에 오르고, 당신을 위해서라면 발밑에 엎드리고,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개처럼 울부짖을 수 있다고 노래한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남자’이기 때문이다.
1988년 발표된 그의 8번째 앨범의 타이틀곡. 코언은 이 앨범에 ‘이 모든 노래를 D I에게 바친다’고 썼다. 그렇다면 D I는 누구인가? 패션 사진작가 도미니크 이서만으로 알려졌다. 앨범 하나를 통째로 사랑하는 여인에게 헌정한 것이다.
수려한 외모와 글솜씨, 노래 실력을 두루 갖춘 코언은 유독 여성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담은 노래가 많다. 자신의 두 자녀를 낳아준 수잔 엘로드가 있었지만 무용수인 수잔 베르달을 위해 만든 노래가 ‘수잔’이었다. 또 한때 연인이었던 일렌 메리앤과 헤어지면서 만든 노래가 ‘소 롱 메리앤’이었다. 가을비 내리는 날이면 듣게 되는 ‘페이머스 블루 레인코트’까지 코언은 감성을 깨우는 관능적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그가 떠났을 때 배우 루비 로즈는 “우리는 올해 프린스, 보위, 레너드 코언을 잃고 트럼프를 당선시켰다”고 탄식했고, 캐나다 총리 트뤼도도 “코언은 1960년대뿐만이 아닌 지금도 공감을 부르는 아티스트였다”고 칭송했다. 코언의 공식 홈페이지는 오는 11월22일 스튜디오 정규앨범 발매를 예고하고 있다. ‘생스 포 더 댄스’라는 제목으로 9곡이 수록되는데 제니퍼 원스, 벡, 데이미언 라이스 등 여러 후배 뮤지션들이 헌정 참여했다.
가을이 깊어간다. 멋지게 늙어가던 음유시인 코언의 노래를 들으며 커피 한 잔 마셔야겠다.
<오광수 부국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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