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딜라일라’
본문 바로가기

대중음악 블라블라/노래의 탄생

조영남 ‘딜라일라’


“밤 깊은 골목길 그대 창문 앞 지날 때/ 창문에 비치는 희미한 두 그림자/ 그대 내 여인, 날 두고 누구와 사랑을 속삭이나.”


1968년 어느 겨울날 저녁. 지금은 없어진 TBC 인기 쇼프로그램인 <쇼쇼쇼>를 보던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야전점퍼에 검은테 안경을 쓴 못생긴 사내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 앞에 칼을 들고 서서 절규하듯이 노래하다 급기야는 상의를 벗고 러닝셔츠를 찢으면서 뒹굴었다. 


‘딜라일라’는 톰 존스의 히트곡으로 구약성서 속 삼손을 배반한 델릴라의 영어식 발음이다. 당시 연출을 맡았던 조용호 PD(작고)가 ‘세시봉’에서 노래하던 조영남에게 번안해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이미자나 나훈아, 남진 등에 익숙했던 시청자들은 이 젊은 가수한테 열광했다.


이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던 조영남은 하루 저녁 만에 상처를 안기고 떠난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노랫말을 썼다. 조영남이 서울대 음대 입학 전에 한양대 음대 재학 중 만난 첫사랑은 한 학년 후배였지만 나이는 세 살 연상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녀와의 사랑은 세도가 당당했던 여자집안의 반대로 막을 내렸다. 그 아픔을 노래에 담아 불렀고, 그 절절함이 대중을 울린 것이다.


조영남은 당시 “조용필의 전성기 인기를 능가했다”고 말한다. 신도호텔에 장기투숙하면서 공연을 소화하느라 학교도, 교회성가대 활동도 접었다. 매니저도 두게 됐고, 크라운승용차도 생겼다. 결국 학교는 자퇴했다.


정말 잘나가던 조영남은 하루아침에 군대에 끌려갔다. 1970년 4월 마포에 건립된 와우아파트가 준공 석달 만에 폭삭 주저앉은 사건이 발단이었다. 같은 해 시민회관에서 열린 김씨스터즈 내한공연에 초대가수로 출연한 조영남은 ‘신고산타령’을 “와우아파트가 와르르르…”로 개사해 불렀다. 마침 공연을 보던 경찰간부를 분노케 한 조영남은 병역기피로 구속 위기에 처했다. 그때 전 국회의원 정대철의 어머니 이태영 박사가 중재에 나서 구속 대신 군입대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딜라일라’는 불건전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20년간 금지곡으로 묶였다.


<오광수 부국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