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찬 기자
김기덕 감독은 자신이 제작한 영화 <풍산개>의 개봉을 앞두고 작성한 서면 인터뷰 자료를 8일 배포했다. 현재 해외에 머물고 있다는 김 감독은 “15년 동안 19편의 영화를 감독하고 각본과 제작을 맡아왔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의 모순을 보았고, 말도 안되는 일도 겪었다”며 “이제 한국 영화계는 그냥 도박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어 <풍산개>가 “자본과 시스템을 대체할 첫 영화”라며 “영화인의 열정과 영화의 주제, 그리고 진정한 영화의 가치를 통해 벽을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홍보사는 <풍산개>의 배우와 스태프가 모두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주연 윤계상, 김규리를 비롯한 모든 배우와 연출부, 제작부까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이들은 영화의 ‘투자자’가 돼 <풍산개>에서 수익이 날 경우 그 지분을 받는다.
김기덕 영화감독 (경향신문DB)
이 같은 일이 처음은 아니다. 중저예산 영화에 대한 투자가 경색되면서 높은 출연료를 받아온 배우들이 이를 삭감하는 대신 ‘러닝 개런티’ 형태로 계약을 한다든지, 일거리가 없는 스태프들이 매우 적은 임금만을 받고 영화에 참여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한국 영화가 ‘돈 놓고 돈 먹기’식의 도박판이 됐다는 김기덕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열정이 거대한 제작비를 넘어서는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도 지지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던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재능을 꽃피우지도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한 것이 올 1월이다. 이를 계기로 영화계가 젊은이들의 열정과 꿈을 담보로 그들의 실생활을 앗아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싹트기도 했다.
비록 제작비는 적을지언정 <풍산개>는 대형 배급사가 배급하고 스타 배우가 출연하는 엄연한 상업영화다. 상업영화 제작자가 ‘제작부 막내’에게까지 개런티를 주지 않았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열정의 불을 지피는 데는 장작이 필요하니, 장작이 없으면 몸을 태워야 한다?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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