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 기자
지난 2일 오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세바퀴>에 요즘 ‘임재범 흉내’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개그맨 정성호(사진)가 나왔다. 언뜻 봐도 가수 임재범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외모가 흡사했다. 그가 모창한 ‘너를 위해’ 역시 외모 이상으로 임재범의 창법을 닮아 있었다.
여기까지였으면 그저 재주 많은 개그맨의 재미있는 모창쇼 정도로 가볍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정성호가 노래하는 동안 자막에는 ‘나는 가수다’의 개그맨 매니저 점수표를 패러디한 행사 건수가 소개됐다. 2007년 263건, 2008년 2건, 2009년 0건, 2010년 1건, 2011년 5건. 최근 5년간 연도별 그의 주가를 가늠할 수 있는 표인 셈이다.
정성호는 2006년 MBC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야>에서 인기절정을 구가하던 개그맨이었다.
그해 방송연예대상 코미디부문에서 남자 최우수상도 받았다. 이 같은 인기를 발판으로 화려한 2007년을 보냈던 그는 이후 급속도로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개그맨 정성호 개인의 위기이자 몰락이었지만, 동시에 한국 코미디 프로그램도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잇따라 폐지됐다. 명맥을 이어간다 하더라도 심야에 편성돼 시청자들의 접근 역시 쉽지 않았다.
특히 정성호가 몸담았던 MBC의 개그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를 황금시간대에 배치하면서 공력을 들이는 KBS에 비해 훨씬 열악한 조건이었다.
정성호의 임재범 흉내는 현재 매주 금요일 밤 12시35분에 방송되는 MBC 코미디 프로그램 <웃고 또 웃고>의 ‘나도 가수다’ 코너를 통해 먼저 알려졌다.
이날 정성호의 <세바퀴> 출연은 자사의 프로그램을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너무 늦은 시간에 방송되는 그의 코너를 더 많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제작진과 고정 출연자인 개그맨 선배들의 배려도 있었을 것 같다. <세바퀴> 진행자들도 <웃고 또 웃고>의 방송시간을 소개하면서 “초인적 힘을 발휘해 시청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출연자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정성호의 솜씨와 능력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고 놀라웠다.
그렇지만 그의 모습을 보며 마냥 웃고 박수치기는 힘들었다. 생존을 향해 발버둥치며 오랜 시간 눈물과 땀을 쏟았을 그의 몸짓에는,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는 한국 코미디의 모습이 진하게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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