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세상]기울어가는 지상파 드라마들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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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와 세상]기울어가는 지상파 드라마들의 악수

이영미 | 대중문화평론가



 

지상파 TV방송은 언론이면서 오락매체이며, 이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이 뉴스와 드라마이다. 그런데 이제 이 두 가지 축이 모두 심하게 불안한 양상이다. 최근 지상파 TV의 급격한 몰락을 한두 요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모바일 등 새로운 매체의 급부상, 케이블 채널과 종편으로 확고해진 다채널 환경 등의 매체 환경 변화가 그 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최근 5년 지상파 방송들이 보도와 탐사의 발전을 가로막고 이로 인한 위기에 꼼수나 다름 없는 퇴행적 악수를 계속 두고 있는 것 또한 이유일 것이다.



지상파 드라마들은 시청률이 높아도 존재감이 약한 드라마로 불린다. 드라마 중에서 여전히 최고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일일극이 5년 전 막장드라마 논란을 마지막으로 이제 그런 논의에서조차 사라져버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아침극은 이런 지 오래 됐고, 주말극 중에서도 8시 드라마가 종종 이렇다.


MBC 드라마 <마의>에 출연하는 이요원 (경향신문DB)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이제 드라마의 선두 경향을 이끌어왔던 주중 10시대 드라마에서까지 나타나고 있다. 물론 작년에도 <추적자>, <유령>, <골든타임> 등 여러 편의 수작이 나왔고 올 초에도 <학교 2013> 등 참신한 시도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부쩍 존재감 없고 시청률만 높은 드라마가 자주 출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병훈 감독의 <동이>와 <마의>가 대표적이다.



이런 드라마들의 특징은 지상파 TV 앞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며 드라마를 관성적으로 보는 노인 시청자들과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시도, 복잡한 구성, 도발적인 문제제기, 빠른 진행, 참신한 연출 등을 소화하기가 힘든 시청자들이니,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의 작품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당연히 이런 작품을 뻔하고 지루하다고 여기는 50대 이하의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로부터 이탈하는데, 오히려 이들이 떠난 자리를 ‘관성적 본방사수’ 노인 시청자들이 채운다. 작품에 대한 긴장감은 덜하지만 시청률로는 훨씬 윗길이다.



그래도 시청률이 유지되니 괜찮은 것일까? 하지만 이런 현상이 10년 이상 계속되면서 이제 지상파 드라마 자체가 흔들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케이블 채널에서 자체 제작한 드라마들은 이제 더 이상 B급이라 치부할 수 없다. 작년 <응답하라 1997>로 바람을 일으켰고, 올해 <나인>, <더 바이러스>로 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종편 JTBC도 개국 첫 해에 <아내의 자격>으로 선방한 후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무자식 상팔자>로 시청률마저 끌어올렸다. 이제 막 시작한 <세상의 끝>은, OCN의 <더 바이러스>처럼 전염병 소재의 재난물로 역시 새로운 시도이다. 안정된 시청률을 보장하긴 힘들지만 드라마의 미래를 위한 선도적인 작품은 이제 케이블 채널과 종편에서 찾게 되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차이는 확실히 시청률에 목을 매느냐 아니냐에서 판가름 나는 듯하다. 지상파와 달리 케이블과 종편방송은 20% 시청률 같은 것은 바랄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최고의 악수(惡手)는 MBC가 9시대에 일일극 <구암 허준>을 배치한 것인 듯하다. 수십 년 계속되어 온 9시 뉴스시간대를 뒤흔들어 가뜩이나 약화된 TV 뉴스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드라마는 정말 뻔한 인물과 장면,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다른 채널로 빠져나간 시청자를 회귀시키는 게 아니라 지상파 9시뉴스를 보다가 지쳐버린 중노년 시청자를 끌어오는 것을 목표로 두는 듯하다. 지상파의 독점적 우위 체제가 해체되는 것이 아쉬운 건 아니다. 그래도 공영방송이라 이름 건 지상파가 이렇게 관성과 꼼수로 버티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