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4월을 맞고도 아직 지난 겨울 매운 추위의 기억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남녘에는 매화와 벚꽃이 흐드러져 봄이 지척인 줄은 알겠는데 좀처럼 움츠러든 몸이 펴지질 않는다. 굳이 지난 추위가 온난화로 인해 몰아닥친 한파가 아니었대도 이미 마음의 한파가 쓰나미처럼 몰려와 멘붕으로 이어진 겨울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다고 하던 일마저 뜻대로 되지 않아 그 어느 해보다 을씨년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강퍅해진 마음과 미처 추스르지 못해 거덜이 난 몸을 달래러 남녘에 다녀오기로 했다. 장흥과 강진을 거쳐 해남을 돌아오는 여정. 나는 이번 여행 참에 한동안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몇 달이나마 단절된 공간에서 유폐의 시간을 보내기로 작정한 터였다. 이른바 셀프 유배. 혹한의 겨울을 지내며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상처를 치유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한편으로 봄이 먼저 오는 남녘이라면 지친 몸을 잠시 기대어 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없지 않았다.
남쪽으로 차를 몰면서 붉은 땅에 점점 번지는 푸른빛에 위안을 받기도 하고 희끗하게 피어난 매화의 향을 쫓으면서 잠시 세사를 잊은 듯했다. 그러나 문득 돌아본 풍경은 여전히 겨울이 끝나지 않았으며 어쩌면 그 겨울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봄빛이 무르익고 바람은 훈풍임에 틀림없었지만 보이는 풍경은 황량하고 거칠었다. 서울에서 한없이 이어지는 도시의 삭막함이 끝을 보인다 싶으면 또다시 이어지는 콘크리트와 샌드위치 패널과 울긋불긋한 간판들, 파릇한 마늘밭과 풀이 오르기 시작한 너른 들판 끝으로는 여지없이 쇠락한 인가 주변의 어수선함이 이어졌다. 땅끝으로 가 푸른 바다로 애써 눈을 돌리기 전까지는 여기저기 널린 비닐과 쓰레기처럼 팽개쳐진 건물들을 마주해야 했다.
다산의 정신이 숨쉬는 곳, 사의재
(경향DB)
다산초당의 툇마루에 앉아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고 나서 나는 나의 유배 공간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남녘이 유배의 땅이라면 그곳에서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은 평생 유배의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다산은 그 작은 집에서 11년 동안 머물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어쩌면 산속으로 기어들어 사람 사는 곳에서 멀어진 외로움을 견디며 후학을 모으고 수많은 생각에 몰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배의 공간은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유보와 유예의 공간이다. 그 공간을 오롯이 자신의 생각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곳은 유배의 장소가 아니라 세계와 우주의 중심일 수 있다.
사회적 삶의 지속을 단절하는 것만으로 죄에 대한 벌에 가름했던 시대는 사라졌다. 대신, 200년 후의 이 땅은 그 어디건 일상적인 유배의 위협이 가득하다. 단절의 두려움이 컸던 탓일까? 하루라도 사회관계망과 접속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휴대폰이 울리지 않는 몇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어디나 휭하니 뚫린 길들과 끝없이 이어지는 도시의 흔적 역시 단절의 두려움을 애써 피하려는 현대의 강박증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동안 유배지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어느 곳이나 삶의 고단함이 결국 험악한 풍경으로 드러난다는 걸 애써 모른 체했을 뿐이었다. 성급하게 지어진 가건물과 원색이 덧칠된 간판과 바람에 나부끼는 현수막들이 보여주는 황량한 풍경들은 녹록지 않은 현실의 반영이었다. 해남에서 목포로 올라오는 길의 너른 들판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쯤에서 셀프유배에 대한 환상을 거둬들여야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야 했다. 스스로를 유폐의 시간에 가두려 했지만 유배의 공간조차 똑같이 지난한 삶의 공간이라는 걸 새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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