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씁쓸한 ‘코리안 나이트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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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와 삶]씁쓸한 ‘코리안 나이트 아웃’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매년 3월 둘째주, 텍사스 주도 오스틴에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진다. 일상은 사라지고 축제가 도시를 뒤덮는다. 음악·영화·정보기술(IT)을 아우르는 문화콘퍼런스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가 열리기 때문이다. 음악평론가로 활동하면서 글래스톤베리, 서머소닉 등 해외의 대규모 페스티벌을 다녀봤지만, 처음으로 현장에서 본 SXSW는 여타 페스티벌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특정한 곳에 대규모 무대를 세워놓고 진행되는 게 아닌, 도시 곳곳에 있는 공연장과 술집, 카페, 심지어 온 거리가 공연으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SXSW 기간 오스틴은 평범한 미국의 도시가 아닌, 세계 음악의 수도가 된다.


2008년 YB를 시작으로, 한국팀들도 꾸준히 SXSW를 찾았다. 그리고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한국 뮤지션들의 공연이 이틀에 걸쳐 열렸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12일에 열린 ‘코리안 나이트 아웃’이었다. 에프엑스, 노브레인, 국카스텐, 로다운30, 이승열, 정차식, 갤럭시익스프레스, 긱스 등 총 여섯 팀이 무대에 섰다. 관객의 인종 분포는 달랐지만 한국 공연장, 아니 한국 공개방송 현장을 그대로 오스틴에 이식해 놓은 느낌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는 한국 방송영상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에프엑스의 팬이 압도적이었고, 노브레인과 국카스텐의 공연 반응도 상당했다. 반면, 나머지 팀들은 좋은 공연을 보였음에도 아쉬운 반응을 얻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룹 에프엑스가 공연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첫째, 공연장의 사운드다. 엘리시움의 음량은 웬만한 한국 공연장 음량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사운드로 승부해야 하는 록 뮤지션들에게는 치명적인 조건이었다. 사운드의 디테일이 중요한 이승열, 정차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헤드라이너였던 에프엑스도 열악한 사운드의 피해자이긴 마찬가지였다. 다른 밴드들과 달리 에프엑스는 적잖은 립싱크로 공연을 진행했다.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 경우, 현장에서는 공연장 전부를 묵직하게 울릴 수 있는 음량이 중요하다. 하지만 객석 앞쪽을 제외하고는 지나치게 소리가 작게 들렸다. CD를 최소 볼륨으로 틀어놓고 있는 느낌이었다. 또한 낮은 무대로 인해 그들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전달하기도 힘들었다.


둘째, 이질적인 라인업 구성이었다. 록밴드와 아이돌은 활동의 방식도, 소비되는 양태도 다르다. 에프엑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록을 기반으로 하는 뮤지션들이다. 이런 이질적인 두 집합을 자연스럽게 엮기 위해서는 그만큼 철저한 기획이 필요하다. 최근의 록 페스티벌에는 반드시 록 뮤지션들만이 무대에 서는 게 아니다. 힙합, 솔, 일렉트로니카 등 여러 장르의 뮤지션들이 섭외되고,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럴 수 있는 까닭은 그들 모두 철저하게 라이브로 공연을 소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리안 나이트 아웃’은 그런 공통분모를 제시하지 못했다. 열악한 음향 환경에서 힘겹게 공연을 치른 록밴드들과 에프엑스는 좀처럼 섞이지 못했다. 퍼포먼스가 중요한 특성답게 립싱크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쳐도, 외국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처럼 DJ의 라이브 믹싱이라도 있었다면 최소한 음악적으로는 다른 팀들과 섞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음악은 물론이고 공연이 끝난 후 바로 공연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경호팀이 다른 뮤지션들까지 밀쳐내는 모습을 보며, ‘코리안 나이트 아웃’은 무엇을 위한 행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행사는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성이란 가치는, 영역의 구분에 의해 얻어질 수는 있어도 위상의 차별에 의해 얻어지는 게 아니다. 머나먼 오스틴에서 한국 공연장에서 종종 보이는, 씁쓸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