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행 비행기를 타는 지인들이 늘어났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참가를 위해서다. 런던에서 버스로 3시간 반 정도 거리의 작은 도시, 글래스톤베리 워시 농장에서 매년 6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이 페스티벌은 세계 최대의 축제다. 매일 15만명씩, 3일간 45만명의 인파가 농장을 가득 채운다. 흔히 록 페스티벌로 알려져있지만 축제의 공식 명칭은 ‘글래스톤베리 컨템포러리 퍼포밍 아츠 페스티벌(Glastonbury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Festival)’. 즉, 공연이란 형태로 존재하는 모든 예술이 3일간 펼쳐지는 셈이다.
롤링 스톤스 등 초거물급 아티스트들을 필두로, 약 1000여팀의 뮤지션이 수십개의 무대에서 공연을 펼친다. 10여개의 댄스 텐트에서 DJ들이 하루 종일 음악을 튼다. 그뿐 아니다. 서커스, 코미디, 아동 연극, 마임, 행위 예술, 전시, 설치 미술 등 남들에게 보여짐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고, 또한 소통할 수 있는 모든 문화가 이 거대한 농장에 존재한다. 심지어 각종 정당의 강연회와 여러 인문학자들의 포럼까지 열린다. 페스티벌 티켓 오픈은 일단 라인업이 공개된 후에 시작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글래스톤베리는 그렇지 않다. 매년 3월경 라인업이 나온다. 티켓 오픈은 전년도 10월에 시작된다. 즉 ‘묻지마 예매’인 셈이다. 그럼에도 15만장의 티켓이 매진되는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닐 영, 블러가 헤드라이너였던 2009년 페스티벌에 갔을 때 ‘내 인생은 글래스톤베리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 같다’는 생각마저 했을 정도였으니, 그 스케일과 디테일이 전달될지 모르겠다.
영국 필튼의 워시농장에서 열린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 남성 (AP연합)
이런 거대한 규모의 페스티벌이 하루아침에 쓰여진 건 아니다. 농장 주인이자 페스티벌의 주최자인 마이클 이비스가 1970년 자신의 농장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들의 공연을 열어보자는 취지로 연 무료 공연이 시작이었다. 60년대 히피 문화가 영국에도 득세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수천 명의 히피들이 몰려든 첫번째 글래스톤베리는 마이클 이비스에게 엄청난 경제적 손해를 끼쳤다. 이 때문에 한 번으로 그칠 뻔 했던 페스티벌은 이듬해 윈스턴 처칠의 손녀가 공동 기획자로 참가하면서 한 번 더 열렸다. 그리고 몇 년 후, 반핵시민단체가 가세하면서 정례화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늘어났고 출연진은 화려해졌으며 행사 규모는 성장해왔다. 그 와중에 수없이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것은 영국의 정치·사회·문화의 단면이 함의된 사건이기도 했다. 히피 문화에서 시작된 탓에 정치적으로도 진보적 자세를 견지해온 글래스톤베리는 대처 정권 시절에는 탄압의 대상이었다. 당국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이 페스티벌을 멈추려는 시도를 했다. 행사장 입구에서 경찰관들이 참가자들의 짐을 수색하기도 했고, 히피들에게 곤봉을 휘두르기도 했다. 어떻게든 담장을 넘어 공짜로 페스티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안전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런 역사를 거치면서, 글래스톤베리는 올해로 43년의 나이를 먹어왔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축제가 됐다.
뮤직 페스티벌 (경향DB)
한국에서도 많은 페스티벌이 열린다. 페스티벌의 불모지라 여겨졌던 게 채 10년도 되지 않는데, 지금은 일년 내내 주말마다 페스티벌이다. 올 여름도 해외 아티스트를 헤드라이너로 내세우는 록 페스티벌만 5개가 한꺼번에 개최된다. 페스티벌 거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러잖아도 즐길 거리가 많지 않은 한국에서 이런 이벤트가 풍성해지는 게 그리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매우 아쉬운 점이 있다. 모든 페스티벌이 크기와 규모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몇 만명을 목표로 일단 지르고 본다. 처음부터 블록버스터를 꿈꾸는 것이다. 이런 ‘규모의 경제’ 앞에서는 페스티벌 문화가 생기기 힘들다. 한국의 모든 페스티벌이 돗자리 깔고 먹고 마시는 분위기 일색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글래스톤베리를 비롯한 세계 우수의 페스티벌들의 백미는 공연이 아니다. 관객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문화다.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문화 생산자가 되어 페스티벌 현장을 누빈다. 그 또한 하루 아침에 생성된 건 아닐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나눈다는 공동체 의식에서 출발, 나이를 먹어가며 자연스레 규모를 불려온 역사의 산물이다. 라인업과 쾌적한 환경만을 앞세워 문화 소비자들의 지갑을 노리는 그런 페스티벌은 이제 충분히 많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작고 더 공동체적인 페스티벌이다. 무대와 객석이 굳이 나뉘지 않고 적어도 페스티벌 기간만큼은 동고동락하며 함께 놀 수 있는, 쇼 비즈니스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있는 진정한 축제를 즐기고 싶다.
김작가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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