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시선]보정한 얼굴, 진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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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별별시선]보정한 얼굴, 진짜 얼굴

오랜만에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린 데다 여권까지 만료가 돼버렸다. 운전면허도 없는 나는 한 달가량을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이 살다가 겨우 시간을 냈다. 찍고 난 직후에 본 사진은 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고 사진사 아저씨는 바로 보정작업에 착수했다. 아저씨의 손길에 따라 턱이 날렵해지고 눈매가 또렷해지고 잡티가 사라졌다. 순식간의 변화에 ‘멘붕’에 빠져 있다가 다시 보니 화면 속에 미스코리아 웃음을 짓는 어떤 여자가 있었다. 내가 입꼬리를 저렇게 올려서 웃었던가. 웃는 표정마저 보정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사진사 아저씨는 ‘훨씬 낫죠?’ 하고 말하며 자신의 성과에 만족한 듯했다. 화면 속 여자는 성형외과 광고의 ‘비포 & 애프터’처럼 확연히 차이가 났다. 물론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래서야 주민등록증 사진으로 쓸 수 있을지 난감했다. 신분을 증명하려면 적어도 동일인물인 줄 알아야 할 텐데 화면 속 저 여자는 도무지 나 같지가 않았다.

 


아저씨, 턱 좀 덜 깎아주시면 안될까요? 내 요청에 아저씨는 거참 이상한 손님 다 보겠다는 듯이 깎은 부분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아저씨는 잡티를 지우고 양쪽 눈 크기를 맞추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저씨와 나 사이에는 그 정도면 됐어요, 여기만 좀 더 손볼게요, 그만 깎으세요, 하는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에나 등장할 법한 대화가 오갔다.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보정한 사진파일을 보내주었다. 자신의 성과가 아까웠는지 턱을 많이 깎은 ‘백미’ 사진과 내 요청에 따라 조금만 깎은 ‘현미’ 사진, 보정하지 않은 원본사진 몇 장을 함께 보냈다. 집에 가서 다시 사진을 보는데 ‘백미’ 사진에 눈이 갔다. 그사이에 보정한 얼굴에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보정을 덜한 사진을 보니까 오히려 낯설어 보였다. 원본사진은 참혹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얼굴은 아픈 사람처럼 어둡고, 입술은 거무튀튀했다. 크기가 다른 눈은 부자연스럽고 한쪽으로만 치켜든 입술은 심술사나워 보였다. 처음 봤을 때는 만족스러웠는데 그사이에 사진이 변했을 리는 없고, 내 눈이 변한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가장 왜곡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자신일 것이다. 보정한 사진에 익숙하고, 사진도 얼짱 각도로만 찍어서 그렇다. 거울을 볼 때도 보고 싶은 부분만 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만 보는 사람들은 적나라하게 정면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분명 자기 얼굴인데도 낯설게 느낀다. 반대로 맘에 안 드는 부분만 유심히 보다가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있다. 전체적으로 조화로운데도 얼굴의 일부분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성형수술을 택하기도 한다.


성년 기념 셀카 (경향DB)



나는 남의 사진을 자주 찍어주는 편이다. 회사에서 사진 찍는 업무를 맡기도 했고, 길을 지나갈 때도 유난히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결과가 늘 좋은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상대방의 모습을 잘 담았다고 생각한 사진이라도 본인은 실망할 때가 많다. 자신이 원하는 각도와 표정으로 ‘셀카’를 찍고 나서야 비로소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수많은 표정과 각도 중에서 오로지 단 한 얼굴만을 좋아하고 익숙해진 것이다. 나 역시 머릿속에 있는 내 얼굴과 실제의 내 얼굴이 달라 당황하는 경우가 꽤 있다.



언제 어디서든지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폰과 진보한 보정기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미의 기준을 턱없는 수준으로 왜곡하기도 했다. 잡지를 보면 화장품 광고 모델의 얼굴은 사실상 불가능한 얼굴을 표현하고 있다. 모공도 없고, 잔털도 없이 도자기 같은 피부는 어찌보면 아름답지만, 어찌보면 무섭고 섬뜩하기도 하다. 사람들은 사진에서 본 것을 갈망하고, 자기 얼굴에 대한 불만족은 성형으로 이어진다. ‘미쓰에이’ 멤버 수지가 아닌데도 수지처럼 보이게 만들어준다는 카메라 광고를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진만이라도 연예인처럼 나오고 싶다는 심리를 이용한 거겠지만, 순간의 만족이 클수록 현실과의 괴리는 커질 뿐인데 말이다.



(경향DB)


예전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매년 생일에 증명사진을 찍는 사람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환갑을 맞은 현재의 얼굴을 보는 그의 모습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다. 자신의 변화와 역사를 긍정하는 모습이었다. 사진이 추억의 상징인 것은 그때의 감정과 표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수지처럼’ 사진 찍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짜 자신의 얼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라봐주는 그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신의 진짜 얼굴, 진짜 표정과 친해졌으면 좋겠다. 잘 보면 뭐든지 아름답듯이 자신의 얼굴도 보아줄수록 사랑스러운 구석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김지숙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