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청년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 가는 모양이다. 좌파 학생 운동가를 살해한 극우파 조직을 해산시키겠다고 프랑스 정부가 으름장을 놓았다. 마침 일본정부도 <재특회>라는 극우조직 “오야붕”을 체포하면서 극우청년단체들에 경고를 보냈다. 한국에서 그런 극우 청년 문화의 아류일 <일베>를 두고 관심이 크다. 극우 청년들을 마주할 때 우리가 받는 가장 큰 충격은 그들의 강렬한 감정이다. 감정은 정치의 주요한 밑천이다. 감정을 정치에서 제거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뿐더러 불가능한 일이다. 분노 없는 저항이란 무언가 결정적인 실체가 제거된 형식적 몸짓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감정을 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극우 청년문화의 원한과 분노를 좋게 봐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일본 재특회('재일특권을 허락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 회원들이 일장기와 재특회 깃발을 들고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가운데 인물이 재특회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다. 후마니타스 제공
그러나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구분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감정 자체에 혐의를 씌워 그것을 가둘 수 있다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감정을 제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아주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들이 원한을 품은 적은 실은 가짜 적일 뿐이고, 진짜 원인은 고용불안, 삶의 불안정 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문제를 의식하고 해결할 때 나쁜 감정은 제거될 것이며,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고삐 풀린 감정을 승화시켜 비판적인 의식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루카치라는 문화이론가는 현대 소설의 기원에 관한 그의 유명한 저작인 <소설의 이론>에서 근대인은 근본적으로 고독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는 문학적인 양식이 소설이라고 말한다. 그때 그는 근대인의 고독을 “자기 혼자만의 삶을 살게끔 운명 지워진, 그러면서도 공동체를 목마르게 갈구하는 피조물의 고통”이라고 불렀다. 그가 일컫는 고독은 물론 근대 이전의 세계를 떠나버리면서 조화로운 질서, 유기적인 전체의 세계를 박탈당한 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인물의 처지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사시나 비극 속의 인물과 다른 근대적 소설 속의 인물이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인화해야 한다. 전체 속의 어느 부분으로 태어나 그 위치 자체에 부여된 역할을 살아간다면 그는 개인이 아니다. 그에게는 고독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태어난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모르는 세계에 응답하려 발버둥치고, 세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진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독 속에서 각자 세계를 짐 지는 고역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극우청년이나 냉소적인 진보적 청년이나 그 둘 사이에는 그리 거리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베충”을 조롱하는 그들도 역시 알고 보면 충분히 스스로를 개인화하지 못한 채 꼰대와 아버지, 국가적 권위를 들먹이며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는 감히 고독하다는 것을 인정할 용기가 없는지 모른다. 그리고 일부가 그런 비겁함을 가리기 위해 고독하게 자신을 대면할 의무를 면제해주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나아가 공동체를 좀먹고 분열시키는 적을 향해 원한을 품고 분노를 토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고독은 외롭다는 기분이 아니다. 그것은 어떻든 자신이 직면한 세계를 의식 속에서 그려보려는 몸짓이다. 내가 세계의 바깥에 있다는 감정이고 사고이다. 그리고 그런 고독을 스스로 감당해낼 때 비로소 세계에 관한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다. 고용불안은 그냥 사회학적인 사실이다. 그것을 의식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이 세계의 이미지의 한 조각으로서 체험되지 않는 한, 고독한 자가 자신의 반성 속에서 그려내는 세계의 이미지 안에 새겨지지 않는 한, 그것은 죽은 사실일 뿐이다. 한 명의 개인이 됨으로써 자신과 세계를 맞세우는 고독이 없는 한 원한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고독해질 필요가 있다. 실은 우리는 얼마나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서동진 | 계원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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