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을 시작한 두 편의 드라마는 철거현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중 한 편인 MBC <스캔들>은 88올림픽 개막을 앞둔 산동네 철거촌에서, 다른 한 편인 SBS <황금의 제국>은 1990년 정부의 5대 신도시 개발로 인한 철거현장 이야기로 그 서막을 열었다. 이 도입부에서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세입자들 위로 쏟아지는 강제철거의 폭력과 붕괴의 모티브는 앞으로 두 드라마가 전개할 몰락의 서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두 작품은 국가와 재벌이 ‘손에 손 잡고’ 강행한 개발주의의 그늘을 드러내고자 한다.
SBS 황금의 제국.
재벌 중심 경제성장의 어두운 뒤안길에 대한 두 드라마의 비판의식은, 2009년 이후 나타난 새로운 경향의 재벌드라마들의 연상선상에 있다. 가령 그 전까지의 재벌드라마는 KBS <야망의 세월>처럼 한국 경제성장 주역으로서의 영웅담이거나,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처럼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재벌2세 연애담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KBS <남자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MBC <욕망의 불꽃>과 <로열패밀리>, SBS <마이더스> 등 2009년 이후 등장한 재벌드라마들은, 재벌이 주도한 경제성장사의 폭력적 이면과 재벌지배구조의 부조리를 비판하며, 기존과 달라진 시선을 보여준다. 그 시초가 된 송지나 작가의 <남자 이야기>는 맨주먹 창업신화를 이뤄낸 뒤 편법으로 부를 확장한 1세대 재벌에 이어, 주가와 언론을 조작해 부를 팽창시키는 2세대의 비리를 고발했다. 그 과정에서 <스캔들>과 <황금의 제국>처럼 용산참사를 연상시키는 철거민 문제를 통해 약자들의 고통을 드러낸다.
<욕망의 불꽃> 역시 개발독재시대가 낳은 독점재벌 일가를 중심으로 부의 확장을 넘어 영속시키려는 재벌의 탐욕을 다루고 있다. 부의 영속에 대한 욕망은 새로운 경향의 재벌드라마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예컨대 <로열패밀리>와 <마이더스>에서는 경영권 불법 승계 음모가 주된 소재로 다뤄진다. 이 과정에서 정치와 사법시스템까지 자유로이 동원할 정도로 절대권력이 된 재벌에 대한 분노 또한 공통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재벌드라마들의 등장에는, 2007년 폭로된 삼성그룹의 불법비자금 의혹과 불법상속 문제가 큰 영향을 미쳤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글로벌 기업의 허상이 드러나고 양극화 문제가 전 지구적 현안으로 대두된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2009년 이후 등장한 재벌드라마의 새로운 경향은 그 심화된 양극화의 원인으로서의 재벌에 대한 대중의 비판적 시각과 분노가 반영되어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원화를 패러디한 박순찬의 ‘행복한 눈물’
<스캔들>과 <황금의 제국>은 그러한 시각을 이어가면서도 또 다른 차이를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두 작품을 감싸고 있는 것은 붕괴와 몰락의 서사다. 거기에는 분노의 정서보다 불안감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가령 붕괴사고를 은폐한 재벌에게 아들을 잃은 <스캔들>의 하명근(조재현)은 딸의 죽음에 은폐된 진실을 끝까지 추적했던 <추적자> 백홍석(손현주)과 달리 원수의 아들을 유괴함으로써 스스로 불안에 빠지는 인물이다. <황금의 제국> 주인공 장태주(고수)도 비슷하다. 대기업의 강제철거로 아버지를 잃은 그는 재벌의 부도덕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는 길을 택한다. 그의 ‘풀베팅’은 도박이라기보다 이렇게 된 이상 죽어도 같이 죽자는 투신처럼 보인다.
얼마 전 미국의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넷판은 남양유업사태와 ‘포스코 라면상무’ 등의 ‘재벌스캔들’을 언급하며 한국에서 재벌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캔들>과 <황금의 제국> 같은 재벌드라마의 변화에서도 그러한 요구가 절실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분노 이상의 어떤 위기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몰락할 것이라는, 공멸에 대한 불안. <황금의 제국> 첫 회의 마지막 장면, 태주 부친의 심장박동 정지 순간이 한 개인의 사망선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멸에 대한 경고처럼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김선영 | 드라마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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