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중문화계에서 눈에 띄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사회파 모성 스릴러 붐이다. 요 몇 년 사이 영화계에서는 <몽타주> <더 파이브> <돈 크라이 마미> <공정사회> 등 모성 복수극의 유행이 두드러졌고, TV에서는 지난해 방영된 SBS <신의 선물-14일>을 비롯해 올해에도 MBC <앵그리맘>과 SBS <미세스 캅> 등의 모성 수사드라마가 연이어 등장했다.
이들 작품 대부분은 모성을 과거처럼 감동적인 멜로드라마적 코드로 풀어내기보다는 여성, 아동과 같은 약자에게 집중되는 차별과 폭력, 권력층의 부패 커넥션, ‘위험사회’의 도래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교차되는 틀로서 바라보고 있다.
특히 근래 TV의 모성 수사물은 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응징의 카타르시스에 집중한 모성 복수극을 넘어 수사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사회적 부조리 비판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가령 납치된 딸의 행방을 추적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신의 선물-14일>에는 유괴 사건의 핵심에 거대 정치권력이 존재하고 딸은 결국 “국가권력의 희생양”이었음을 깨달은 주인공의 비판적 목소리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 김수현(이보영)이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고 특히 아이는 더더욱 보호받아야” 한다고 외치던 청와대 앞 1인 시위 장면은 같은 시기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겨냥한 메시지로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에 방영된 <앵그리맘> 역시 강력한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주인공 조강자(김희선)는 자녀와 관련된 사회문제에 분노하고, 그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주도적인 사회운동 세력으로 떠오른 우리 시대의 ‘앵그리맘’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딸의 학교에 위장 잠입하고 그 폭력의 심층을 파헤치면서 그것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자본, 정치, 교육계 등 각계각층의 부정부패가 복잡하게 뒤얽힌 총체적 비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 딸의 안전’만이 목표였던 평범한 엄마가 거대한 사회 현실의 부조리에 눈뜨고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아이들을 구원하는 이야기는 ‘앵그리맘’ 탄생의 배경을 잘 보여준다.
앵그리맘_경향DB
그런가 하면 <미세스 캅>은 한층 확장된 사회적 모성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싱글맘 강력계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워킹맘의 애환을 그리겠다는 기획 의도와 달리 당황스러울 정도로 엄마로서의 이야기를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주인공 최영진(김희애)의 강력계 형사 이야기가 그 자체로 워킹맘의 강도 높은 노동 조건에 대한 확대된 은유처럼 보이게 만든다. 최영진의 수사가 주로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며, 그 대부분의 사건들 최종 배후에는 ‘나쁜 아빠’ 강태유(손병호) 회장이 상징하는 남성 중심적 권력의 부조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좀 더 분명해진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사회파 모성 드라마들이 최근으로 올수록 주부판 슈퍼히어로물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엄마들의 노동 조건이 점점 더 고단해지는 현실과도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말 발간된 책 <엄마의 탄생: 대한민국에서 엄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의학, 뇌과학, 아동학, 교육학, 영양학, 심리학, 위생학 등 다양한 지식담론 위에 탄생한 ‘과학적 모성’의 억압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근에는 ‘위험사회’의 도래와 함께 여기에 안전, 환경 이슈까지 더해졌다.
사회가 보장해야 하는 최소한의 안전 영역이 무너지고 가정의 책임으로 떠넘겨지면서 엄마들의 노동 환경에 갈수록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겹쳐지는 것은 필연적 결과다. 그렇게 돌봄 노동의 전방위화와 더불어 사회파 모성 드라마는 슈퍼맘을 넘어 슈퍼히어로 판타지가 되어 간다.
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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