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보이지 않는 코르셋’ 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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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보이지 않는 코르셋’ 입기

얼마 전 대형 연예기획사 사장과 그 회사 소속 신인 그룹이 촬영한 교복 광고가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날씬함으로 한판 붙자. 스커트로 깎아라. 재킷으로 조여라, 코르셋 재킷’이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웠고, 광고 사진 역시 성인 남성이 교복을 입은 여성 모델들의 몸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구성은 교복 광고에 맞지 않을뿐더러 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콘셉트라고 비난받았다. 결국 교복업체와 기획사는 바로 사과하고, 이미 제작된 광고는 수거하기로 했다.

이후 연예기획사의 발 빠른 대처에만 집중하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지만, 이 광고의 문제는 ‘얼마나 빨리 사과했는가’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콘셉트의 광고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광고가 촬영되었다는 것과 함께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문제적 시선이 그만큼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획일화하고, 여성에게 극한의 자기관리를 강요하고 있다.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한 여성 아이돌 그룹의 식단은 문제적으로 읽히기보다 다이어트 식단을 그대로 따르는 젊은 여성들을 양산한다. 일례로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의 맛만 보고 뱉는다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다이어트 경험담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러한 경험이 성공한 아이돌 그룹이 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라 여긴다. 이처럼 미디어는 계속적으로 여성들에게 날씬한 몸을 유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드라마는 어떤가. 드라마 속 세계에서 날씬하지 않은 여성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뚱뚱한 여성은 자기관리에 실패한 여성이며, 전문성이 결여된 여성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드라마 <미녀의 탄생> 역시 뚱뚱하고 못생긴 능력 없던 여성이 성형수술과 다이어트를 통해 아름다움을 얻고 결국 성공과 행복을 얻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신의 전문분야를 개척하는 여성보다는 외적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노골적으로 뚱뚱한 몸을 가진 여성을 비난한다. 이러한 시각이 여성에게 얼마나 억압적이며 강압적 방식으로 날씬함을 강요하는지에 대한 문제점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



가수 박진영이 그룹 '트와이스'와 함께 찍은 교복 브랜드 '스쿨룩스' 광고 _경향DB



이러한 잘못된 시각은 결국 자신의 몸이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서만 고민하게 만든다. 많은 여성들이 극한의 다이어트와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건강보다는 타인들의 말과 시선 때문이다. 미디어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아름다움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며,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노골적으로 비난한다. SBS <힐링캠프-장윤주편>에서 한 방청객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외모 비하의 경험으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져 있음을 고백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타인의 평가에 대해 노골적이고 잔인하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 비난의 대상이 ‘내’가 되지 않기 위해 더더욱 노력해야만 한다.

프랑스의 모델 이사벨 카로는 모델이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던 중, 거식증으로 사망했다. 이사벨 카로 사건은 여성의 몸, 그리고 모델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여성에게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문제적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영국 광고심의위원회는 패션잡지 ‘엘르’ 영국판에 게재된 마른 모델이 등장하는 패션 브랜드 광고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비현실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몸을 광고에 활용함으로써 잘못된 인식을 여성들에게 심어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프랑스에서는 지나치게 마른 몸매를 지닌 모델이 활동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의 몸에 대한 평가 기준이 여전히 엄격하고, 모델 출신의 배우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름다운 몸을 지닌 배우들의 출연이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여성의 몸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날씬한 몸을 유지해야 함을 강요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은 날씬한 몸을 얻음으로써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결국 그 성공은 남성의 기준,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는 ‘여성되기’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다. 19세기까지 허리를 조여 날씬한 몸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코르셋이 현대사회에서 다이어트라는 극한의 자기관리로 거듭나고 있다. 그리고 그 날씬한 몸은 남성의, 사회의 억압적 시선을 그대로 따른 결과물이다. 10대들의 교복 광고에서도 억압적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강요하는 것이 일상화된 지금, 타인의 몸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배제시키는 주체가 ‘내’가 아닌지, 여성의 몸에 대한 나의 시선은 어떤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때다.



이종임 |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