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오브제에서 아이콘으로 - 지드래곤 ‘피스마이너스원’ 전시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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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오브제에서 아이콘으로 - 지드래곤 ‘피스마이너스원’ 전시의 아이러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지드래곤의 ‘피스마이너스원’ 전시를 둘러싸고 말들이 무성하다.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공공성이 강한 서울시립미술관이 왜 굳이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의 상업적 기획에 동참했는가와 다른 하나는 전시의 내용이 왜 이토록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는가이다. 전자는 공공미술관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고, 후자는 전시 기획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관행과 상식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공공미술관은 공공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표면적으로 보면 이번 전시에서 어떤 일관된 맥락이나 주제의식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시 우리가 신뢰하는 자명한 상식에서 조금 벗어나면, 이 전시는 다른 의미를 생산한다. 공공미술관에서 한번쯤은 확고하게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 오히려 공공성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만들고, 공연계와 전시계라는 다른 문화적 장들이 충돌하면서 야기된 텍스트들 간의 모호함이 오히려 전시의 무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공공미술관을 통해 상징자본을 획득하고 싶은 YG와 지드래곤을 통해 대중적 선호를 이끌어내고 싶은 미술관 사이의 공모관계는 비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비평의 대상이다. 그리고 한번쯤은 시도해볼 수 있는 번외 게임이다. 우리는 늘 이런 예외적 도발과 공모의 사건에 인색하다. 애초에 공공적일 수 없는 전시에 공공성을 요구하거나, 모호할 수밖에 없는 전시 내용에 일관성을 요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 전시 텍스트에서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이다.

8일 열린 ‘피스마이너스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지드래곤 (출처 : 경향DB)


이 전시의 제목은 ‘피스마이너스원-무대를 넘어서’이다. 전시 설명 자료를 보면, 원래 제목은 평화로운 이상 세계와, 결핍된 현실이 공존하는 스타의 음악세계의 내면을 상징한다고 한다. ‘피스’는 이상 세계, ‘마이너스’는 결핍의 상태, ‘원’은 현실의 세계를 지칭한다. 아마도 지드래곤이 팝 아티스트로서 느꼈던 무대의 안과 밖, 공연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충돌에서 오는 긴장 상태를 설명하려고 한 듯하다. 멋진 설명이다. 실제로 전시 제목의 영어 알파벳은 중간에 하나씩 빠져 있다. 첫 번째 전시공간인 ‘논픽션뮤지엄’의 방을 들어가기 전 설치된 공사장 비계들의 매끈한 배치는 공연 무대의 뒤를 받치고 있는 속칭 ‘아시바’의 날것 노출을 연상케 한다. 의미의 결핍, 화려한 무대 뒤에 감추어진 공허함은 ‘논픽션뮤지엄’의 방에 진열된 지드래곤의 공연 소품들과 컬렉션들이 잘 보여준다. 영국 글램문화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금장의 액세서리,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하드코어적 의상과 소품들, 큐빅 안에 숨바꼭질을 하는 지드래곤의 얼굴들, 이 모든 것이 무대와 일상, 이상과 현실의 결핍을 표상한다. 화려한 모든 것들의 허무한 배치.

‘논픽션뮤지엄’의 방에 진열된 것들은 모두 아이콘으로 표상된다. 보이드와 샤넬, 베르사체의 가방들, 장프로베의 의자, 크롬허츠의 십자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쿠데타’와 ‘원오브카인드’의 의상들은 모두 오브제에서 아이콘으로 이동한다. K팝과 패션의 아이콘 지드래곤은 전시된 모든 오브제들을 아이콘으로 변화시킨다. 미적 대상으로서 오브제는 팝이라는 이교도 숭배의 아이콘이 되고, 물질로서 오브제는 비물질적 정동이란 팝문화의 아이콘이 된다.

그래서 지드래곤이 대중예술과 현대미술의 접점을 찾겠다던 전시의 단단한 모든 의도는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팝과 엔터테인먼트의 상징자본은 존재하는 모든 오브제를 아이콘으로 만들어버린다. 오브제에서 아이콘으로의 허무한 이행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권오상의 ‘무제의 지-드래곤, 이름이 비워진 자리’이다. 이 아이콘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지드래곤의 사진 수천장을 짜깁기해서, 미카엘 대천사의 성스러움의 전투를 차용해 만든 것으로 표면의 눈속임으로 팝문화의 허구성을 표상한다. 2차원 사진을 3차원 형상으로 짜깁기한 허구의 조형물은 지드래곤이란 팝 아이콘의 현존의 허무함을 보여준다. 오브제에서 아이콘으로의 이행이라는 화려한 팝문화의 극도의 우울증은 진기종의 디오라마기법, 마이클 스코긴스의 팝아트, 콰욜라의 디지털조각, 그리고 마지막 전시공간인 사일로 랩의 ‘Room No.8’에서 보여주는 일관된 전략이다. 지드래곤이 의도하건 안 하건 결국 이 전시는 한국 팝문화의 외부의 시선에서 이 전시를 비난하는 자들을 향해 지드래곤이 자기결핍과 자기혐오의 방식으로 방어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모든 오브제는 모든 아이콘으로 이행한다.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