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먹방과 쿡방… ‘음식 이상’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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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먹방과 쿡방… ‘음식 이상’을 먹다

텔레비전과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현재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으며, 적지 않은 대중적인 관심을 끌어내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 트렌드로 ‘먹방’과 ‘쿡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의 예능과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가로지르며 일련의 음식을 만들고 먹는 행위와, 다양한 요리와 조리의 방식에 관한 재현작업들이 새로운 ‘대세’로 확립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상 속에서 낯익은 음식을 스타와 예능인들이 직접 체험의 일부로 만들어내고, 먹거리를 쟁탈하기 위해 주어진 임무를 군말 없이 수행하기도 한다. 나아가 전문가 집단이 이국적인 레시피를 소개하거나, 이들이 수행하는 요리를 둘러싼 치열하고 흥미로운 경연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과거에는 대중문화의 전면에 크게 등장하지 않던 ‘셰프’들이 새로운 스타군으로 속속 자신들의 얼굴을 알리고 있다.

나아가서 이들은 특출한 요리실력과 예능감각으로 예능과 라이프 스타일 프로그램에서도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와 함께 ‘차줌마’에서 ‘백주부’ 혹은 ‘허세 셰프’와 같은 최근에 주목받는 캐릭터와 유행어들이 예시하듯이, 부드럽고 만만치 않은 내공을 발휘하며 기민하게 요리하는 특정한 ‘남성성’에 관한 문화적 상상과 선호 또한 크게 강조되고 있다.

한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주요 온라인 사이트들의 경우에도 각종 음식과 식문화에 관한 관심과 열기는 매우 높다. 수용자들은 자신들이 방문한 ‘맛집’에서 접한 주요 음식에 관한 이미지와 품평을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올리기도 하며, 스스로 탐방한 다양한 먹거리에 관한 정보와 기행문을 제공하고, 음식을 테마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제시하는 주요 내용을 회람시키기도 한다.

대중은 스타일과 미각이 발현되는 음식에 열광하며, 시선을 사로잡는 일련의 음식의 향연을 접하며, 특히 고단하고 분주하게 내몰리는 삶 속에서 일정한 위안과 더불어 공유되는 체험을 나눈다.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불안감에 떠는 취업 준비생도, 부쩍 늘어난 1인가구의 주체도, 가족을 위한 먹거리로 고민하는 맞벌이 주부도 이 과정에 공통적으로 참여한다.

이러한 매우 가시적인 문화현상을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까?

우선 다양하고 화려한 요리들에서 일정한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하여 어렵지 않게 만들어내며 도전할 수 있는 소박한 음식들이나, 새로운 음식과 풍성한 식재료에 관한 대중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어 보인다.

먼저 인간이 소지한 식욕과 먹거리에 관한 관심이라는 본원적이고 생래적인 측면이 강건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극도로 바삐 돌아가며 과도한 노동과 사회·경제적인 불안감에 노출된 우리네 일상 속에서 단순한 생존의 차원을 넘어, 음식은 몇 안 되는 자기위안과 즐거움의 추구, 그리고 ‘힐링’과 대리적인 보상을 체화해줄 수 있는 선호되는 대상이자 소비의 기호로 작용하는 듯하다.

특히 고된 하루의 과업을 마치고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에 지친 주체들에게 일정한 생기를 불어넣고, 야식의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또는 진부한 일상 바깥으로 잠시 나설 수 있게 해주는 먹거리에 관한 기대와 상상은 미디어 속 다기한 식문화의 퍼레이드를 만나게 되면서 보다 가속화되는 측면을 드러낸다.

이제 일상 속에서 음식에 관한 논의와 평가 그리고 차별화된 소비의 욕구는 거대하고 주목받는 문화적인 ‘환’을 구현하면서, 다수가 참여하는 일종의 ‘정서적 평등주의’를 생성해낸다.

조금 다르게 특정한 먹거리를 소비하거나 직접 만드는 행위는 이제 필요한 지식과 일정한 실험정신을, 그리고 특정한 취향의 발휘와 감각을 요구받는 또 다른 ‘과업’이자 고민이 수반되는 노동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김준현, ‘스포츠경향’과 주경야독 인터뷰 개그맨 김준현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동의 한 음식점에서 진행된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 도중 음식을 먹고 있다. (출처 : 경향DB)


다양한 식문화를 소개하고 재현해내는 매체의 콘텐츠들은, 생존을 위해 자기역량을 계발하라는 정언명령의 세례를 이미 강하게 받고 있는 일상 속의 평범한 주체들에게, 음식에 관한 진전된 안목과 더불어 구별짓기와 만들기의 능력까지도 기를 것을 넌지시 속삭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 치열한 자기관리와 ‘허기사회’라는 배경 속에서 간과되고 당연시되던 먹는다는 행위와 음식의 영역 또한 한층 세분화되고, 차별화된 상징작용과 더불어 상품성을 구현해내는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스테이크와 감자칩의 프랑스식 문화적 함의와 신화작용을 논했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의 작업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우리네 식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전화되고 해독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음식과 식문화의 문화 비평이 보다 다각도로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기형 |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