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다루다보면 목리(木理)에 민감해진다. 목리란 나무의 품성이다.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무마다 죄다 성질이 달라서 목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세월로 목수의 경험을 가늠한다. 단단하거나 무르거나 뒤틀리거나 갈라지거나 하는 나무의 성질에 보태 목질의 거칠고 고운 정도, 나뭇결의 무늬와 색의 농도마저 같은 나무가 없다. 같은 나무라도 밑동과 가지가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르며, 베어낸 철과 건사한 방법에 따라 목리가 달라지니 그 많은 나무의 품성을 일일이 가늠하고 따져들자면 한평생의 작업도 모자랄 판이다. 얼마 전 남도에서 새로운 나무를 접하게 되었다. 비자나무와 동백나무, 가죽나무들은 내가 사는 중부 지방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나무들이다. 목리를 알 턱이 없다. 처음 본 나무라고 마냥 만지고 들여다볼 수도 없으니 봉사 문고리 잡듯 우선 귀퉁이를 잘라보거나 대패로 밀어대며 대강의 품성을 가늠하며 작업할 수밖에 없다. 작은 비자나무 토막을 깎아 작은 목침을 하나 만들었는데 속살은 부드럽고 색은 더없이 곱다. 하지만 그 뒤로 나무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목리를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수가 목리에 집착하는 까닭은 목리가 다르면 쓰임새가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쓰임뿐 아니라 만들어진 목물의 형태와 구조를 결정하는 게 바로 나무의 품성이다. 한때 살아 숨 쉰 나무를 인간의 쓰임으로 바꾸는 직업의 이름인 목수가 나무의 성질에 민감해지는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나무에 대한 지식이 늘어갈 때마다 목리를 따지게 되고 목리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목수는 점점 더 까탈을 부린다. 이 나무는 이래서 안 되고 저 나무는 저래서 안 된다. 쓸 만한 나무조차 이 부분은 이래서 쳐내고 저 부분은 저래서 깎아낸다. 결국 남는 건 고집스럽게 남은 형해뿐. 이른바 목리를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목수의 나무를 향한 몽니는 더 심해진다.
목리를 이해한다고 나무를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또 나무를 안다고 쓰임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무지 어디 쓸지 모를 은사시나무조차 젓가락을 만들거나 그도 아니면 펄프의 원료가 될 수 있다. 내가 만들 수 없는 나무라고 해서 쓰임이 없지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무마다 생김이 다르고 그 다른 품성에 적합한 쓰임을 찾아내지 못하면서 목리를 앞세워 나무 탓만 하는 건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어디 나무에게뿐이랴. 사람에게도 대개는 그렇다. 나이든 사람이 지혜롭다는 말의 절반은 거짓이다. 나이가 들면 아는 게 많아지고 아는 게 많을수록 수많은 원칙이 세워진다. 자신의 경험으로 확인된 원칙이 절대적인 진리로 둔갑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때부터 삶의 원칙은 고집과 아집으로 바뀌고 이 일 저 일에 공연히 까다롭게 굴고 쓸데없이 몽니를 부린다. 이 일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일은 저래서 안 되고… 이 사람 저 사람 가리고 나면 할 일이 없어지고 주변에 사람이 없어진다. 결국 고집스레 해놓은 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의 껍데기일 뿐이다. 그렇다고 애써 알게 된 삶의 이치를 함부로 내다버릴 수도 없고 무골호인이 되어 이 일 저 일을 쓸어 담아도 그 또한 일을 그르치니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나만 어리석어 그런가?
이런! 둘러보면 죄다 그런 인사들 천지다. 지난 몇 년 동안 누군가 그렇게 내세웠듯이 경험을 앞세울수록 하는 일은 옹색해지는 걸 보아오지 않았던가? 한평생 애쓰고 진력하여 도달한 번드르르한 지위와 직책들에 둘러싸인 경험과 지식들이 어느새 편협한 아집으로 남는 걸 도처에서 보게 된다. 살아온 날이 많을수록 경험을 앞세우고 그렇게 쌓인 지식들로 타인의 삶조차 지배하려 드는 사람들을 지혜롭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릇 어디 가서 나이자랑과 경험자랑은 하지 말진저.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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