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짝퉁 라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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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짝퉁 라보엠’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


야외 오페라 <라보엠>이 막을 내렸다. 결과는 우려했던 것보다 더 참담했다. 이 정도면 굴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여름 밤, 정명훈과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펼치는 별들의 잔치’라는 화려한 선전문구가 무색하기 짝이 없다. 공연 시작 전부터 티켓이 너무 비싸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컸다. 전체 7000여석 가운데 420석이 57만원짜리, 3000개가 넘는 좌석이 45만원짜리다. 입장권이 팔리지 않아 4회 공연을 2회로 줄였고, 그나마도 70% 이상 할인해서 팔았다. 이 정도면 할인이 아니라 거의 땡처리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티켓의 가격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니 가격이 비싼 것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게다가 보러 갈 것도 아니면서 굳이 티켓 값을 트집 잡는 것이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명품백이 왜 수백만원이나 하냐고 따질 필요 없이 들고 다니지 않으면 그만이다. 진짜 문제는 기획사가 짝퉁 물건을 내놓고 명품 값을 달라고 한 것이다. 오랑주 페스티벌의 제작진을 데리고 왔다고 해서, 연세대 노천극장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오랑주 야외극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랑주 야외극장은 로마시대부터 2000년 넘게 수많은 공연을 마이크 없이 치러낸 곳이다. 그리스나 로마시대에 건축된 원형극장에 가면 현지 가이드들이 관광객들을 객석 꼭대기에 세운 다음 무대 한가운데에서 동전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그 작은 소리가 멀리 떨어진 객석에서도 명징하게 들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바로 이런 것이 명품 극장이다. 연세대 노천극장의 울림이 좋다고 해도 그것은 무대의 소리가 객석까지 전해질 수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마이크를 전혀 쓰지 않은 자연음향으로 <라보엠>을 들려줄 것이라는 호언장담은 애초부터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던 셈이다.


결국 공연할 때 성악가들은 가슴에 마이크를 달고 나왔고, 오케스트라 음향까지도 마이크를 통해 흘렀다. 그나마 사운드 밸런스도 맞지 않았고, 성악가들이 포옹 연기를 할 때는 상대의 마이크가 몸에 닿아 불편한 잡음까지 내고 말았다. 처음부터 그들이 데려왔어야 할 사람들은 오랑주 페스티벌의 제작진이 아니라, 대형 야외 공연의 음향 전문가들이다. 마이크를 쓰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사실 마이크는 테크놀로지가 음악에게 준 고마운 선물이다. 음악에서 마이크는 단순한 증폭장치가 아니다. 마이크가 중요한 점은 노래를 크게 부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소리 낼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안젤라 게오르규와 같이 세계 최고의 미성을 가진 소프라노의 그 섬세한 음색을 마이크를 통해 제대로 전달만 해주었어도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오페라 라보엠의 한장면. (출처: 경향DB)


청중이 화가 난 것은 자신들을 명품과 짝퉁을 구분할 줄 모르는 우둔한 소비자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차례의 태풍으로 공연 날짜도 오락가락했다. 태풍이 닥친 것이 기획사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야외 오페라 공연은 여름에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지중해 나라들에서 주로 열린다. 집중호우와 태풍이 빈발하는 8월 말 한국에서 야외공연을 계획했다는 것 자체가 하늘을 상대로 벌인 도박이었다. 


기획사는 비에 대한 보험을 들었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그거야 기획사가 볼 손해에 대한 대책이지 청중이나 음악가들을 위한 대책은 아니다. 공연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빗방울이 떨어질 경우에는 그대로 진행하겠다면서, 우산은 시야를 가리므로 안되고 우비만 입을 수 있다고 했을 때 놀라서 입을 다물기 어려웠다. 오페라 공연이 축구 경기인가? 축구 선수들은 비를 맞고도 뛸 수 있는지 몰라도 그 비싼 악기들이 비에 맞는데 서울시향 단원들이 연주를 하겠는가?


공연을 보고나니 본전 생각부터 났다. 45만원씩 하던 R석이 ‘미미석’이라는 이름으로 9만9000원에 나왔을 때 횡재나 한 줄 알고 발 빠르게 구입했던 것이 화근이다. 싸게 사면 뭐하나? 짝퉁을 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