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주 생소한 경험을 했다. 최근 공개된 영화의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다른 언론사 기자 5명과 함께하는 ‘라운드 인터뷰’ 자리였다.
인터뷰 시작 15분 전에 홍보담당자가 고지한 인터넷 링크를 통해 접속했다. 이미 다른 언론사의 기자 한 명이 ‘화상 인터뷰 방’에 들어와 있었다. 얼굴과 이름을 보니 10여년 전 다른 출입처에서 만났던 기자였다. 반가운 악수와 웃음 대신 건조한 채팅으로 해후했다.
인터뷰에 응할 감독이 화상대화방에 들어오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자 중 일부는 마이크를 통해 육성으로 질문을 했고, 나를 비롯한 몇몇은 채팅창을 통해 진행자에게 질문을 전달했다. 질문의 진의는 감독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얼굴을 보고 있었다면, 질문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 또는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 등을 통해 의사소통이 되었겠지만 화상이라 해도 온라인상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질문과 대답은 겉돌기 일쑤였고 재차 질문해도 의문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답답하기는 대답해야 하는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언컨택트’(Uncontact·비대면·비접촉)의 시대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어차피 도래할 것이 코로나19의 창궐로 약간 일찍 왔을 뿐이라고 하지만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문화계는 그중에서도 조금 더 일찍 온 것 같다. 수많은 대면행사가 짧은 시간 안에 ‘비접촉’ 방식으로 전환됐다.
앞으로도 ‘언컨택트’는 대세가 될 것 같다. 최근 출간된 <언컨택트>(퍼블리온)에서 저자 김용섭은 “언컨택트가 기업의 일하는 방식, 종교와 정치, 연애, 우리의 의식주와 사회적 관계, 공동체까지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언컨택트는 서로 단절되어 고립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연결되기 위해서 선택된 트렌드 (…) 우린 더 편리하고 안전한 컨택트를 위해 언컨택트를 받아들이는 것이지, 사람에게 사람이 필요 없어지는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언컨택트’가 모두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극장이 대표적이다. 극장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큰 스크린 앞에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천명의 관객이 모여 영화를 보는 것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보며 공감하고, 함께 호응하는 곳이 극장이다. 이런 시간을 경험할 수 없으면 극장의 존재 의미는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극장산업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주말(25~26일) 극장을 찾은 관객은 총 9만2789명에 불과했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4월 마지막 주말(27~28일)에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한 편이 이틀간 309만7000여명을 동원한 것과 비교하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다행히 최근 코로나19 전염이 잦아들고 있다. 관객 급감으로 문을 닫았던 극장들도 5월부터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언컨택트’란 대세는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언컨택트’가 ‘컨택트’(접촉)의 영역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러기를 바란다. 최소한 극장에서만은.
<홍진수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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