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경향신문 자료사진
알제리의 조용한 해안도시 오랑에 죽어가는 쥐 떼들이 발견된다. 재난의 서곡이었다. 몇 달 뒤 도시 전체가 페스트에 뒤덮였다. 정부는 도시를 봉쇄하고 방역에 나서지만 도시는 대혼란에 빠져든다.
코로나19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소환했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인들은 <페스트>를 손에 잡기 시작했다. 2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이탈리아에서는 <페스트>가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유럽의 언론은 <페스트>가 2020년의 코로나19 사태를 예견했다고 평가했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 2월1일부터 지난 19일까지 소설 <페스트>의 판매량은 2만6500부로 지난해 동기 대비 66배나 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페스트>는 각 전자도서관의 대출 건수에서도 1위를 지키고 있다. 최근 국립극단은 2년 전 무대에 올렸던 카뮈 원작의 연극 <페스트>를 극단 공식 유튜브 채널로 내보냈다.
지구촌의 ‘페스트 열풍’은 소설 내용이 작금의 코로나19 상황과 흡사하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봉쇄도시 오랑을 우한이나 뉴욕으로 대체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당국에 신속한 대책을 촉구하는 소설 속 주인공 의사 리유의 모습은 코로나19의 진실을 폭로했던 우한의 의사 리원량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은 대재난에 직면한 인간의 공포와 죽음, 이별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절망과 공포 속에도 희망의 끝을 놓지 않는 인간의 투쟁을 담고 있다. 페스트와 맞서 싸우는 소설 속의 자원봉사대는 코로나19 확진자 치료를 위해 감염 병원으로 달려간 국내 의료진과 닮아 있다. <페스트> 읽기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진단이자 희망 찾기인 것이다.
교보문고가 ‘세계 책의 날’(23일)을 앞두고 알베르 카뮈를 ‘올해의 아이콘’으로 선정했다. <페스트>가 다시 화제를 모은 데다 올해가 카뮈 작고 60주기인 점을 감안한 것이다. 유네스코는 1995년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사망한 4월23일을 ‘세계 책의 날’로 지정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 방법으로 독서만 한 게 있을까. 카뮈가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책과 함께하는 ‘슬기로운 집콕 생활’로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모색해 보자.
<조운찬 논설위원>
'대중문화 생각꺼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으로 말하기]춤추는 남자 (0) | 2020.05.04 |
---|---|
[기자칼럼]접촉은 이어져야 한다 (0) | 2020.05.04 |
[직설]새로운 매체와 가해자의 서사 (0) | 2020.04.16 |
[몸으로 말하기]다시 만나는 무용과 음악 (0) | 2020.04.09 |
[문화와 삶]전염병의 특효약 (0) | 2020.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