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말하기]춤추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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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몸으로 말하기]춤추는 남자

발레 의상을 입은 루이 14세. vikidia 제공


언제부터인가 여성이 압도적이었던 무용계에 남성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현대무용 분야에서 그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그 요인 중 하나로 힙합을 들 수 있다. 거리에서 춤추던 힙합 춤꾼들이 순수예술로의 진입을 시작한 것이다. 힙합의 살벌한 춤 겨루기가 배틀과 동지애를 동시에 포함한 유희성으로 서로를 끌어들이는 것이 최근 세계적으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전 세계 청년 세대들을 압도적으로 사로잡은 이 묘한 춤의 매력은 당분간 이 땅에서도 지속될 것 같으니, 현대무용에서도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들어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 힙합 무용수들이 나타나고 있으나 기상천외하게 몸을 다루는 스릴을 만끽하게 하는 힙합 춤은 신체 공학적으로 남성에게 유리하다. 


힙합 춤을 잘 추는 무용수를 보면 먼 옛날 춤의 주체는 남성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원시시대에 춤은 남성이 추었다. 특히 전쟁터에 나가기 전 남성들은 박력 있는 타악에 맞추어 힘찬 춤을 추면서 전투력을 고양했다. 아마도 그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어쩌면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몸 전체로 납득하기 위하여 춤을 추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춤의 위력을 가장 잘 활용한 남성은 ‘태양왕’이라 불리던 프랑스 ‘루이 14세’이다. 그는 취약한 정권 초기의 입지를 위해 자신의 권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무기로 춤을 사용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무대에서 태양의 신 아폴로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금빛 분장을 하고 춤을 추며 절대 왕정의 이미지를 매우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무용이 극장으로 들어오면서 가부장적 가치관의 사회 속에서 모든 책임 있는 자리는 남성들이 차지했다. 따라서 안무는 남성의 몫이 되었고 “발레는 남성이 만들고 여성이 추는 것”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무대 위에서는 남성 무용수의 역할이 점차 여성 무용수를 들어 올리거나 돌려주는 것으로 작아지면서 위상도 낮아지고 그 숫자도 적어졌다. 그리하여 무용은 같은 예술 분야인 음악, 미술, 연극에 비해 남성의 수적 비율이 미미한 분야가 되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


20세기에 현대무용이 등장하면서 남성들이 다시 춤으로 돌아오고 있다. 초기에는 거센 여성 혁명가인 비너스를 상징하는 무용가들에 의한 아도니스들이 탄생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성적인 남성 무용가들이 합세하여 다양한 무용의 정의들을 선언하고 있다. 게다가 거리에서 춤추던 이유 없는 반항아들도 개과천선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몸짓을 무대에서 주장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현대무용공연장에서 원시시대 전사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남성 무용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