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수년째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던 개그맨 이동우. 매일 숨 가쁘게 살아온 그의 앞에 별안간 찾아온 시련은 분명 혹독하고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매정하지만은 않았다. 사람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삶이 있었다. 단거리 달리기 경주 같다고만 생각했던 인생은 알고 보니 긴 마라톤이었다.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무대에 선 그는, 이 순간에도 자신만의 페이스로 담담한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마음 속 고향인 연극 무대에서 확인한 희망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이 좁아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내가 존재한다는(혹은 존재한다고 믿는) 사실을 의심하는 순간이 많아짐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사실. 눈앞의 어둠보다 더 무섭게 일상을 뒤흔드는 것은 아마도 이런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절망감과 두려움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 시련, 그 고통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만했던 개그맨 이동우에게도 그랬다. 자꾸만 ‘점점 눈이 보이지 않을수록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MBC-TV ‘휴먼 다큐 사랑’ 중에서)’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둠은 그 너머에 숨겨진 것들 때문에 더더욱 뛰어넘기 힘든 장애였다. 일도, 수입도, 인기도, 손안에 움켜쥔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갔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도, 평범한 일상도, 아름다운 세상도 잊혀져갔다. ‘모든 바람과 희망을 끊어버린다’라는 뜻의 ‘절망’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다시 삶과 마주섰다.
요즘 이동우는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창작 뮤직 드라마 ‘오픈 유어 아이즈’에 출연 중이다.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된 한 남자가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진정한 사랑과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실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인공 역을 맡게 된 이동우는 순수한 열정과 진지한 자세로 깊이 있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그에게 연극 무대는 앞으로 평생 함께하고 싶은 빛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레이디경향(이하 LADY)_ 그룹 ‘틴틴파이브’의 멤버, 개그맨 등으로 활동하셨기 때문에 유쾌한 이미지가 크게 남아 있는데 이렇게 무대에서 진지한 연기를 선보이는 모습을 보니 의외라는 생각도 드네요. 연극 무대에는 어떻게 서게 된 건가요?
이동우_ 연극은 제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건강했던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물론 그래요.
개그맨으로 데뷔했지만 열일곱 살부터 연극을 했어요. 계원예고 연극과, 서울예대 연극과를 다니면서 젊을 때는 연극에 빠져 살았어요. 데뷔 후 개그맨으로서의 생활도 만족스럽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무대가 그리웠어요.
LADY_ 개그맨 활동 중에도 가끔 연극에 출연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은 ‘개그맨의 외도’라는 잣대로 바라보게 되잖아요.
선입견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연극 무대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동우_ 연극에 집중해야겠다고 결심한 터닝포인트는 ‘실명’이에요. 물론 실명은 연극뿐 아니라 제 삶의 모든 터닝포인트이기도 하지만요. 언젠가 앞을 볼 수 없게 된다는 판정을 받고 나니 얼른 연극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막막했죠. 중도장애인이 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늘 모든 것이 막연해요.
그런데 뭔가 간절하게 생각하면 그것이 말이 되고, 말을 하다 보면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이 습관이 되다 보면 일상이 된다고 하잖아요.
그 때 그 이야기를 피부로 절감하게 됐어요. 계속 생각했고, 공연에 대한 제 생각을 사람들을 만나 툭툭 던지기 시작했어요. 누군가 관심을 보이고, 같이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 과정이 무척 ‘신비롭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본도 없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검증된 능력도 없는 상황인데도 사람들이 모여들고 팀이 만들어진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댄 덕분에 하나의 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된 거죠.
LADY_간절히 바랐고, 그토록 ‘신비로운’ 과정을 거쳤으니 첫 무대의 감격이 대단했겠어요. 아직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을 듯한데요.
이동우_첫 공연이 2010년 11월 19일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역사적인 날이었죠. 공연이 끝나고 많이 울었어요. 그 눈물의 의미는 제가 처음 병 판정을 받고 아프고 억울하고 참담해서 흘렸던 눈물과는 180도 다른 것이었어요. 눈물의 농도가 완전히 달랐죠. 기쁘고 감사하고 영광스러웠어요.
LADY_그렇게 시작한 공연이 벌써 시즌3까지 왔어요. 재미와 감동이 있는 ‘볼 만한’ 공연으로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이동우_시즌을 거듭할 때마다 조금씩 발전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어요. 처음 작품을 준비할 때 ‘좀 더 번듯하고 근사하게 판을 벌여보자’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제가 반대했거든요. 스스로에 대한 검증도 필요했고, 소박하고 진실되게 관객들을 만나고 싶기도 했고요.
사실 홍보나 마케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많은 분들이 알음알음 찾아와주시고 좋은 평가를 해주시니 참 감사했어요. 그 모든 것들이 제게 엄청난 힘이 됐다는 것을 아실까요? 요즘은 정말 예전엔 결코 느끼지 못했던 ‘참’ 행복을 많이 느껴요.
LADY_처음에는 이동우 개인의 스토리에 기대 ‘반짝’해보려는 기념적인 공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꾸준히 지켜보니 체계적으로 기획된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도 요즘 공연의 추세에 맞춰 좀 더 화려하고 특이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동우_‘오픈 유어 아이즈’는 평생 갖고 갈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말하자면 ‘마라톤’인 거죠. 마라톤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면 절대 완주할 수 없어요.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절절한 이야기도 부각시키고 볼거리도 잔뜩 넣어서 한 방에 뜨는 공연을 만들 수도 있었겠죠. 화제가 되고 돈도 많이 벌고요.
하지만 제게 이 작품은 단순한 연극 한 편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실명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대에서 얼마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등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제가 세상에 다가가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했어요. 저처럼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당장은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이 작품의 변화와 발전을 구상하고 꿈꾸는 것 또한 하나의 큰 즐거움이에요.
LADY_하지만 실명 상태에서 연기를, 그것도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맡기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런데 무대 위에서의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럽고 거침없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동우씨의 실명 사실을 잊게 되더라고요.
이동우_무조건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수밖에 없어요. 보통 ‘연습’한다고 말하지만, 저게는 ‘훈련’이란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대사, 동선, 장면 전환 모두 꼼꼼하게 확인하고 몸이 기계처럼 움직일 때까지 반복했어요.
사실 초반에는 이런저런 실수도 범했어요.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무대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특히 공연 전반부에는 정상인으로 나오는데 그때 실수를 하게 되면 작품성 측면에서 봤을 때 치명적인 거니까요.
LADY_소극장 공연이라 더욱 그렇겠네요. 관객석에 앉아보니 동우씨의 손놀림, 눈빛, 호흡까지 전부 고스란히 느껴져요. 힘들고 어렵더라도 구석으로 숨기보다는 사람들 속으로 다가가겠다는 의지의 표현 같기도 하고요.
이동우_무대에 서면 관객들의 숨소리가 다 전해져요. 참고로 시각장애인들은 소리에 굉장히 집중하고 의존하는 편이라 듣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굉장히 빨리 파악할 수 있어요. 지금 즐거워하는지 지겨워하는지 금방 알 수 있죠.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에서는 눈속임이라는 게 있을 수 없어요. 조명, 소품, 무대 장치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저를 막아주고 감싸주고 도와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더욱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100% 최선을 다해서 임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 느낌과 마음을 잊지 않고 간직하려 해요. 연극 무대를 벗어난 제 인생의 무대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자세일 테니까요.
사랑으로 함께 뛰는 인생 마라톤
요즘 이동우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다. 지난해부터 마라톤 연습을 시작한 뒤로 달리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된 것. 뛰는 동안은 숨이 차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순간들을 이겨내고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의 성취감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당장에 연연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도 인생과 닮은 마라톤의 매력이다.
사실 이름조차 생소한 난치병으로 인해 자꾸만 세상이 어두워져만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그는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긴장하고 조급했으며, 또 불만스러웠다. 초조하게 출발 신호만 기다리고 있다가 ‘땅!’ 하는 소리와 함께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황급히 되돌아섰다. 그만큼 만족할 만한 대가를 받아야 했고, 그렇기에 모든 일에 어떤 보상이 있는지부터 따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생이 긴 호흡으로 포기하지 않고 뛰어야 할 마라톤 경주 같은 것임을 잘 안다. 내 주변에 누가 있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웃으며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피고 고민하며 뛰려 한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을 찾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LADY_최근 다른 아홉 명의 장애인 마라토너들과 함께 아테네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 참여해 5km를 완주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쉽지 않은 운동인데, 어떻게 마라톤을 시작하게 됐나요?
이동우_‘마라톤 합니다’라고 말하기에는 좀 부끄러운 수준이에요. 엄청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어쨌든 저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더군다나 어딘가 몸이 불편한 사람이기 때문에 체력을 잘 관리하고 다른 몸의 기능을 늘 좋은 컨디션으로 맞춰놔야 해요. 그래서 꾸준히 운동을 하는데, 마라톤만의 묘미가 있더라고요. 이제는 조금씩 즐기면서 연습하고 있어요. 아테네에는 홍보대사 겸 참가자로 다녀왔는데, 취지와 목적이 좋아 참여하게 된 거예요. 사실 ‘뛴다’라는 사실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종로 한복판이든, 아테네든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걸요.
LADY_망막색소변성증이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질병이잖아요. ‘휴먼 다큐 사랑’으로 대중에게 그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5% 정도의 시력이 남아 있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떤 상태인가요?
이동우_2010년부로 완전히 실명 판정을 받았어요. 실명했다고 얘기하면 모든 것이 완전히 암흑인 상태를 생각하실 텐데, 저는 명암을 구분하는 정도의 실명이에요. 실내인지 실외인지, 낮인지 밤인지 정도는 알아요. 왜 눈을 감고 있어도 빛을 비추면 느낌이 다르잖아요. 그런 정도예요. 망막색소변성증은 희귀병이 아닌 진행성 난치병이라고 불러요. 특정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 수가 3만 명 이상이면 희귀병이라고 하지 않는데, 현재 저와 같은 질병을 앓고 있다고 등록된 분들이 30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해요.
LADY_누가 더 낫고 아니고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건강하게 살던 사람에게 갑자기 찾아온 질병은 더 큰 충격이고 어려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일이 달라짐을 느끼면서도 과연 실감하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요.
이동우_저는 비교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이 중도장애인의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훨씬 큰 아픔을 겪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을 다 잃어야 하니까요.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누구라도 힘들고 아플 수밖에 없겠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특히 한순간에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진행성이잖아요.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는 그런 말을 해요. ‘사형수’ 같다고요. 결과를 뻔히 알면서 그걸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 게 굉장히 불쾌하고 공포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점점 나빠져만 가는 상황을 외면할 것이냐 받아들일 것이냐예요. 답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죠. 옆에서 누군가가 돕고, 응원하고, 사랑을 준다 하더라도 선택과 대처는 결국 본인의 문제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확실한 건 외면하거나 피한다면 절대로 그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거예요. 힘들지만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해요. 어쩔 수 없어요. 자신의 몫이니까.
LADY_지금은 이렇게 명쾌하게 이야기하지만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디 쉬웠겠어요. 지금의 동우씨는 참 밝고 행복해 보여 다행이지만 그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을 거라 생각해요. 본인을 이렇게 버틸 수 있게 한 건 뭘까요?
이동우_가장 크게 작용한 건 역시 사랑이에요. 뻔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랑 없이는 절대 불가능해요.
세상의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사랑을 정의해왔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을 노래하고 있잖아요. 그만큼 사랑은 사람이 밥을 먹듯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는 것 같아요. 제가 시각장애 3급 정도의 시력이 남아 있을 때 공지영 작가의 책을 보다가 ‘사랑은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란 구절을 읽고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감정을 느꼈어요.
문득 아내의 얼굴이 스쳐가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제 옆에 있을 여자가 아닌 거예요. 몸도 마음도 망가져가는 저를 얼마든지 떠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말하자면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고’ 옆에 있어준 거예요.
저는 제 상처 하나 받아들이지 못해서 절규하고 아파하고 있을 때,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사람을 남편으로 두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아내를 보면서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어요. 살면서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받잖아요. 제게는 그 대답이 바로 아내예요.
LADY_역시 ‘사람’이 가장 큰 희망이고 힘이 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드네요. 연예인이 워낙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에 익숙한 직업이긴 하지만, 이제껏 동우씨에게 전해진 마음은 그래도 좀 다르리란 생각이 들어요.
이동우_네, 그래서 저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사랑을 받으면서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도록 노력해야 하고요. 아, 어떤 의무감 같은 건 아니에요.
다만, 사랑 없이는 살아가야 할 이유도, 목적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가족은 물론이고 제 주변에 있어준 사람들, 저를 응원해준 분들, 멀리서 기도하고 격려해준 분들, 그 모든 사람들에게 제 삶으로 보답을 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습으로 사랑하고 보답하며 살려고 해요.
LADY_동우씨의 활동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해 좋은 연기도 계속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토록 꿈꿔왔던 연극 공연은 어느 정도 터를 닦은 것 같은데, 혹시 앞으로 새롭게 계획하는 것이 있나요?
이동우_저는 앞으로 좋은 느낌이 있는 곳에 늘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싶어요. 한때 인기 있고 잘나갔을 때는 돈, 명예, 대우 뭐 이런 데만 관심이 쏠려 있었던 것 같아요. 연예인이랍시고 이런저런 ‘척’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일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의미로 일을 하는지’만 생각해요.
이제껏 해보지 않았던 낯선 일이라도,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힘든 일이라도 상관없어요. 손 잡아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제가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연극을 더 크고 예쁜 나무로 잘 키워보고 싶어요.
물론 역할의 한계는 있겠죠.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도 얼마든지 도전해보고 싶고요. 결국, 저는 그저 움직이는 사람이고 싶나봐요.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보다는 어디에서건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되겠다고 할게요. 그렇게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저를 좋게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리라 믿어요.
가혹한 짐이라고만 생각했던 아픔이 자신의 인생을 이토록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라고는 그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행복하고 여유로워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가끔은 서글프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감사할 줄 알게 됐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책임질 수 있게 됐다는 것.
보이지 않는 만큼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집중하게 됐고,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함부로 대하거나 생각 없이 내뱉지 않게 됐다. 워밍업을 끝내고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인생의 마라톤 레이스를 시작한 이동우.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싶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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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이 좁아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내가 존재한다는(혹은 존재한다고 믿는) 사실을 의심하는 순간이 많아짐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사실. 눈앞의 어둠보다 더 무섭게 일상을 뒤흔드는 것은 아마도 이런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절망감과 두려움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 시련, 그 고통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만했던 개그맨 이동우에게도 그랬다. 자꾸만 ‘점점 눈이 보이지 않을수록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MBC-TV ‘휴먼 다큐 사랑’ 중에서)’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둠은 그 너머에 숨겨진 것들 때문에 더더욱 뛰어넘기 힘든 장애였다. 일도, 수입도, 인기도, 손안에 움켜쥔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갔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도, 평범한 일상도, 아름다운 세상도 잊혀져갔다. ‘모든 바람과 희망을 끊어버린다’라는 뜻의 ‘절망’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다시 삶과 마주섰다.
요즘 이동우는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창작 뮤직 드라마 ‘오픈 유어 아이즈’에 출연 중이다.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된 한 남자가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진정한 사랑과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실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인공 역을 맡게 된 이동우는 순수한 열정과 진지한 자세로 깊이 있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그에게 연극 무대는 앞으로 평생 함께하고 싶은 빛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레이디경향(이하 LADY)_ 그룹 ‘틴틴파이브’의 멤버, 개그맨 등으로 활동하셨기 때문에 유쾌한 이미지가 크게 남아 있는데 이렇게 무대에서 진지한 연기를 선보이는 모습을 보니 의외라는 생각도 드네요. 연극 무대에는 어떻게 서게 된 건가요?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이동우. 메이크업을 하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대사를 되뇌며 입에 붙도록 연습, 아니 ‘훈련’을 한다. 무대에서 실수가 없도록 부단한 연습을 통해 동선과 장면을 익힌다. 미리 수십 번, 수백 번 동료들과 연기해본 뒤 오르는 ‘귀중한’ 무대다.
개그맨으로 데뷔했지만 열일곱 살부터 연극을 했어요. 계원예고 연극과, 서울예대 연극과를 다니면서 젊을 때는 연극에 빠져 살았어요. 데뷔 후 개그맨으로서의 생활도 만족스럽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무대가 그리웠어요.
LADY_ 개그맨 활동 중에도 가끔 연극에 출연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은 ‘개그맨의 외도’라는 잣대로 바라보게 되잖아요.
선입견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연극 무대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동우_ 연극에 집중해야겠다고 결심한 터닝포인트는 ‘실명’이에요. 물론 실명은 연극뿐 아니라 제 삶의 모든 터닝포인트이기도 하지만요. 언젠가 앞을 볼 수 없게 된다는 판정을 받고 나니 얼른 연극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막막했죠. 중도장애인이 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늘 모든 것이 막연해요.
그런데 뭔가 간절하게 생각하면 그것이 말이 되고, 말을 하다 보면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이 습관이 되다 보면 일상이 된다고 하잖아요.
그 때 그 이야기를 피부로 절감하게 됐어요. 계속 생각했고, 공연에 대한 제 생각을 사람들을 만나 툭툭 던지기 시작했어요. 누군가 관심을 보이고, 같이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 과정이 무척 ‘신비롭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본도 없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검증된 능력도 없는 상황인데도 사람들이 모여들고 팀이 만들어진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댄 덕분에 하나의 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된 거죠.
LADY_간절히 바랐고, 그토록 ‘신비로운’ 과정을 거쳤으니 첫 무대의 감격이 대단했겠어요. 아직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을 듯한데요.
LADY_그렇게 시작한 공연이 벌써 시즌3까지 왔어요. 재미와 감동이 있는 ‘볼 만한’ 공연으로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이동우_시즌을 거듭할 때마다 조금씩 발전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어요. 처음 작품을 준비할 때 ‘좀 더 번듯하고 근사하게 판을 벌여보자’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제가 반대했거든요. 스스로에 대한 검증도 필요했고, 소박하고 진실되게 관객들을 만나고 싶기도 했고요.
사실 홍보나 마케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많은 분들이 알음알음 찾아와주시고 좋은 평가를 해주시니 참 감사했어요. 그 모든 것들이 제게 엄청난 힘이 됐다는 것을 아실까요? 요즘은 정말 예전엔 결코 느끼지 못했던 ‘참’ 행복을 많이 느껴요.
LADY_처음에는 이동우 개인의 스토리에 기대 ‘반짝’해보려는 기념적인 공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꾸준히 지켜보니 체계적으로 기획된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도 요즘 공연의 추세에 맞춰 좀 더 화려하고 특이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동우_‘오픈 유어 아이즈’는 평생 갖고 갈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말하자면 ‘마라톤’인 거죠. 마라톤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면 절대 완주할 수 없어요.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절절한 이야기도 부각시키고 볼거리도 잔뜩 넣어서 한 방에 뜨는 공연을 만들 수도 있었겠죠. 화제가 되고 돈도 많이 벌고요.
하지만 제게 이 작품은 단순한 연극 한 편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실명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대에서 얼마나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등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제가 세상에 다가가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했어요. 저처럼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당장은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이 작품의 변화와 발전을 구상하고 꿈꾸는 것 또한 하나의 큰 즐거움이에요.
LADY_하지만 실명 상태에서 연기를, 그것도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맡기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런데 무대 위에서의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럽고 거침없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동우씨의 실명 사실을 잊게 되더라고요.
이동우_무조건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수밖에 없어요. 보통 ‘연습’한다고 말하지만, 저게는 ‘훈련’이란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대사, 동선, 장면 전환 모두 꼼꼼하게 확인하고 몸이 기계처럼 움직일 때까지 반복했어요.
사실 초반에는 이런저런 실수도 범했어요.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무대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특히 공연 전반부에는 정상인으로 나오는데 그때 실수를 하게 되면 작품성 측면에서 봤을 때 치명적인 거니까요.
LADY_소극장 공연이라 더욱 그렇겠네요. 관객석에 앉아보니 동우씨의 손놀림, 눈빛, 호흡까지 전부 고스란히 느껴져요. 힘들고 어렵더라도 구석으로 숨기보다는 사람들 속으로 다가가겠다는 의지의 표현 같기도 하고요.
이동우_무대에 서면 관객들의 숨소리가 다 전해져요. 참고로 시각장애인들은 소리에 굉장히 집중하고 의존하는 편이라 듣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굉장히 빨리 파악할 수 있어요. 지금 즐거워하는지 지겨워하는지 금방 알 수 있죠.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에서는 눈속임이라는 게 있을 수 없어요. 조명, 소품, 무대 장치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저를 막아주고 감싸주고 도와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더욱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100% 최선을 다해서 임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 느낌과 마음을 잊지 않고 간직하려 해요. 연극 무대를 벗어난 제 인생의 무대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자세일 테니까요.
사랑으로 함께 뛰는 인생 마라톤
요즘 이동우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다. 지난해부터 마라톤 연습을 시작한 뒤로 달리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된 것. 뛰는 동안은 숨이 차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순간들을 이겨내고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의 성취감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당장에 연연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도 인생과 닮은 마라톤의 매력이다.
사실 이름조차 생소한 난치병으로 인해 자꾸만 세상이 어두워져만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그는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긴장하고 조급했으며, 또 불만스러웠다. 초조하게 출발 신호만 기다리고 있다가 ‘땅!’ 하는 소리와 함께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황급히 되돌아섰다. 그만큼 만족할 만한 대가를 받아야 했고, 그렇기에 모든 일에 어떤 보상이 있는지부터 따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생이 긴 호흡으로 포기하지 않고 뛰어야 할 마라톤 경주 같은 것임을 잘 안다. 내 주변에 누가 있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웃으며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피고 고민하며 뛰려 한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을 찾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LADY_최근 다른 아홉 명의 장애인 마라토너들과 함께 아테네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 참여해 5km를 완주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쉽지 않은 운동인데, 어떻게 마라톤을 시작하게 됐나요?
이동우_‘마라톤 합니다’라고 말하기에는 좀 부끄러운 수준이에요. 엄청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어쨌든 저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더군다나 어딘가 몸이 불편한 사람이기 때문에 체력을 잘 관리하고 다른 몸의 기능을 늘 좋은 컨디션으로 맞춰놔야 해요. 그래서 꾸준히 운동을 하는데, 마라톤만의 묘미가 있더라고요. 이제는 조금씩 즐기면서 연습하고 있어요. 아테네에는 홍보대사 겸 참가자로 다녀왔는데, 취지와 목적이 좋아 참여하게 된 거예요. 사실 ‘뛴다’라는 사실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종로 한복판이든, 아테네든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걸요.
LADY_망막색소변성증이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질병이잖아요. ‘휴먼 다큐 사랑’으로 대중에게 그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5% 정도의 시력이 남아 있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떤 상태인가요?
이동우_2010년부로 완전히 실명 판정을 받았어요. 실명했다고 얘기하면 모든 것이 완전히 암흑인 상태를 생각하실 텐데, 저는 명암을 구분하는 정도의 실명이에요. 실내인지 실외인지, 낮인지 밤인지 정도는 알아요. 왜 눈을 감고 있어도 빛을 비추면 느낌이 다르잖아요. 그런 정도예요. 망막색소변성증은 희귀병이 아닌 진행성 난치병이라고 불러요. 특정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 수가 3만 명 이상이면 희귀병이라고 하지 않는데, 현재 저와 같은 질병을 앓고 있다고 등록된 분들이 30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해요.
LADY_누가 더 낫고 아니고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건강하게 살던 사람에게 갑자기 찾아온 질병은 더 큰 충격이고 어려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일이 달라짐을 느끼면서도 과연 실감하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누구라도 힘들고 아플 수밖에 없겠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특히 한순간에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진행성이잖아요.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는 그런 말을 해요. ‘사형수’ 같다고요. 결과를 뻔히 알면서 그걸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 게 굉장히 불쾌하고 공포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점점 나빠져만 가는 상황을 외면할 것이냐 받아들일 것이냐예요. 답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죠. 옆에서 누군가가 돕고, 응원하고, 사랑을 준다 하더라도 선택과 대처는 결국 본인의 문제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확실한 건 외면하거나 피한다면 절대로 그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거예요. 힘들지만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해요. 어쩔 수 없어요. 자신의 몫이니까.
LADY_지금은 이렇게 명쾌하게 이야기하지만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디 쉬웠겠어요. 지금의 동우씨는 참 밝고 행복해 보여 다행이지만 그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을 거라 생각해요. 본인을 이렇게 버틸 수 있게 한 건 뭘까요?
이동우_가장 크게 작용한 건 역시 사랑이에요. 뻔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랑 없이는 절대 불가능해요.
세상의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사랑을 정의해왔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을 노래하고 있잖아요. 그만큼 사랑은 사람이 밥을 먹듯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는 것 같아요. 제가 시각장애 3급 정도의 시력이 남아 있을 때 공지영 작가의 책을 보다가 ‘사랑은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란 구절을 읽고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감정을 느꼈어요.
문득 아내의 얼굴이 스쳐가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제 옆에 있을 여자가 아닌 거예요. 몸도 마음도 망가져가는 저를 얼마든지 떠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말하자면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고’ 옆에 있어준 거예요.
저는 제 상처 하나 받아들이지 못해서 절규하고 아파하고 있을 때,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사람을 남편으로 두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아내를 보면서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어요. 살면서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받잖아요. 제게는 그 대답이 바로 아내예요.
LADY_역시 ‘사람’이 가장 큰 희망이고 힘이 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드네요. 연예인이 워낙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에 익숙한 직업이긴 하지만, 이제껏 동우씨에게 전해진 마음은 그래도 좀 다르리란 생각이 들어요.
이동우_네, 그래서 저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사랑을 받으면서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도록 노력해야 하고요. 아, 어떤 의무감 같은 건 아니에요.
다만, 사랑 없이는 살아가야 할 이유도, 목적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가족은 물론이고 제 주변에 있어준 사람들, 저를 응원해준 분들, 멀리서 기도하고 격려해준 분들, 그 모든 사람들에게 제 삶으로 보답을 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습으로 사랑하고 보답하며 살려고 해요.
LADY_동우씨의 활동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해 좋은 연기도 계속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토록 꿈꿔왔던 연극 공연은 어느 정도 터를 닦은 것 같은데, 혹시 앞으로 새롭게 계획하는 것이 있나요?
이동우_저는 앞으로 좋은 느낌이 있는 곳에 늘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싶어요. 한때 인기 있고 잘나갔을 때는 돈, 명예, 대우 뭐 이런 데만 관심이 쏠려 있었던 것 같아요. 연예인이랍시고 이런저런 ‘척’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일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의미로 일을 하는지’만 생각해요.
이제껏 해보지 않았던 낯선 일이라도,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힘든 일이라도 상관없어요. 손 잡아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제가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연극을 더 크고 예쁜 나무로 잘 키워보고 싶어요.
물론 역할의 한계는 있겠죠.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도 얼마든지 도전해보고 싶고요. 결국, 저는 그저 움직이는 사람이고 싶나봐요.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보다는 어디에서건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되겠다고 할게요. 그렇게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저를 좋게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리라 믿어요.
가혹한 짐이라고만 생각했던 아픔이 자신의 인생을 이토록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라고는 그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행복하고 여유로워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가끔은 서글프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감사할 줄 알게 됐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책임질 수 있게 됐다는 것.
보이지 않는 만큼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집중하게 됐고,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함부로 대하거나 생각 없이 내뱉지 않게 됐다. 워밍업을 끝내고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인생의 마라톤 레이스를 시작한 이동우.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싶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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