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던 여의도 한강공원. 이범수와 조규찬, 정형돈이 마이크를 잡았다. 대한민국 청춘들을 위한 이 무대에서 세 사람은 연기자, 가수, 개그맨으로서가 아닌 조금 먼저 20대를 지나온, 그리고 현재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생 선배로서 청중을 마주했다. 이 시대 모든 청춘을 위한 조언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들의 청춘에 관한 이야기.
배우 이범수
청춘에게 거인(GIANT)의 끈기를 보여주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이언트를 꿈꾸지 말라’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언제나 큰 꿈과 야망을 가지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어요. 저 역시 ‘사나이가’로 시작되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생각해보니 그 말이 참 막연했던 것 같아요. 그럴듯해 보이고 멋진 말이긴 한데 듣고 나면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항상 따라다녔어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전 큰 꿈을 갖기보다 내 앞에 놓인 가장 작은 꿈, 한 시간 후, 바로 내일의 꿈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약간의 수고와 노력으로 우선 작은 일부터 실천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테스트하고, 나를 알아가는 그런 목표를 말이죠. 달리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달리기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물론 멋지지만 너무 막연한 느낌이에요.
“먼 훗날의 자이언트가 아닌, 이룰 수 있는 내일을 꿈꾸세요”
그냥 옆집 영철이보다 빨리 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 어떨까요? 매일 아침 조금 일찍 일어나 연습을 하고 그래서 영철이를 이기고 나면 이번에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빠른 갑식이를 이겨보는 거예요.
그 다음엔 옆 학교에서 제일 빠른 현철이를, 그렇게 한 단계씩 목표를 늘려나가면 언젠가 우리 동네, 우리 도시, 전국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 되는 거죠. 혹시나 지게 되면 왜 졌는지 생각하게 되고 분석하게 되고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원하는지 자신의 진심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진심을 깨달으며 더 원하고 갈망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너무 큰 꿈을 세우게 되면 그 큰 꿈을 정말 다 이룰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지 않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당장 내일, 이달, 올해가 가기 전에 할 수 있는 작은 목표라도 정한다면 그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도, 거기에서 오는 성취감도 분명히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성취감은 내가 나를 믿고 더 나은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내가 살고자 하는 인생의 방향이 되고 길이 됩니다. 누구나 자이언트를 꿈꿉니다. 금메달리스트가 되기를 원한다면 책상 위에 금메달리스트의 사진을 붙이기 전에 우선 운동화를 신읍시다. 그리고 대문을 나섭시다. 꿈을 위한 첫걸음, 바로 오늘부터입니다”
이범수의 꿈은 고등학교 3학년 봄, 청주대학교 축제에 다녀온 친구의 말 한마디로부터 시작됐다. 그해 축제를 주름잡은 청주대 연극영화과 학생들의 활약기를 전해 들은 그는 대학에 가지 않겠다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반장도 하고 체육부장도 하고 오락부장도 하고 응원부장도 했으니 연극영화과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라리 장사를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는 이듬해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88학번이 됐다.
대학 시절에는 오직 연극뿐이었다. 대학생활 동안 무려 서른아홉 편의 연극에 출연했는데, 당시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작품 수는 세 작품이었다. 단역, 엑스트라를 가리지 않고 출연할 수 있는 무대에는 모조리 올랐다. 본인의 커리큘럼을 무시한 채 연극에만 몰두한 나머지 학교를 6년이나 다녔지만 그는 학교에서 제일 연기 잘하는 학생이었다. 그는 그렇게 학교에서 제일 연기 잘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입학 시절 꿈을 이뤘다. 위대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은 꾸지 않았다. 그저 연기를 하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신이 날 정도로 좋았다. 그렇게 차근차근 내딛은 발걸음들이 모여 영화 ‘태양은 없다’의 병국이 되었고,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의 안중근이 되었고, ‘자이언트’의 이강모가 되었다. 시련도 있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영화 ‘쉬리’의 캐스팅이 좌절됐을 땐 포기를 생각할 정도로 낙심했고 무작정 충무로를 쏘다녔다. 그때 만난 영화가 그를 배우로서 다시금 살게 해준 ‘태양은 없다’이다. 새옹지마와 전화위복. 그가 청춘들에게 전한 말은 다시 말해 포기하지 않는 끈기였다. 30여 분의 강연이 끝나고 쏟아진 박수갈채는 자이언트 이범수가 아닌, 지난날 포기하지 않고 내딛은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을 향한 것이었다.
가수 조규찬
따뜻한 목소리로 청춘을 응원하다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과 나눌 이야기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여기 서 있는 제가 그 답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정답이라고 말씀드릴 순 없지만 나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면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로 질문을 바꾸어보세요. 혹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진 않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돈이 중요해요. 돈을 얼마나 벌 것인가, 그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혹은 그렇지 않을까가 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엄마들이 비싼 사교육비를 부담해가며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이유가 아이의 자유롭고 예술적인 삶을 위한 것 같지는 않아요.
안정적인 고용, 전망이 밝은 대기업 입사, 높은 사회적 지위가 우선시되고 아마 여기 계신 여러분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자라고 살아가고 계실 겁니다. 때문에 뭘 하고 살 것인가에 대한 여러분의 고민이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닌 ‘세상이 평가하는 나’로 기준이 맞춰져 있을 거란 생각을 해요. 이런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신가요? 돈이 아닌 마음이 행복한 일을 하세요”
어떤 일을 하거나 하려고 할 때, 그 일을 통해서 내가 돈을 많이 벌게 될 것이다, 혹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는 판단이 과연 얼마나 정확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전망이 좋아 보이는 일이 미래에는 어두워질 수도 있고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될 수 있어요. 미래는, 그리고 돈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보폭은 돈보다 느려요. 제 얘기를 해드릴까요? 저는 젊은 시절 혹독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음악을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돈에 대한 유혹도 많았어요. 사람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닌 대중적인,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음악을 하라고 했고 그렇게 해볼까도 생각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어요.
어쨌거나 전 제가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것을 했고 그렇게 아홉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음악을 하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던 기억은 없어요. 부자가 아니라는 얘기죠.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누렸던 행복은 돈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 기록들은 제 일기처럼 영원히 시간 속에 저장되어 있어요.
현재 나이가 들고 앞으로 나이가 들어갈 제가 살아갈 힘이죠. 미래란 예측할 수 없고 시류란 변하게 마련입니다. 경제적인 논리와 기준으로만 예측하고 예단해서 여러분의 지금을 쏟아 붓고 희생한다면 언젠가는 공허해질 거예요. 미래를 위해 오늘을 버리는 우를 범하지 마세요. 오늘 행복하고 내일과 모레, 내년, 10년 후에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마음이 가는 일이라면 뭐든 좋습니다. 단, 돈이 전부인 삶은 아니라는 말이죠”
조규찬이 젊은 시절을 살면서 주로 했던 일은 음악이었다. 노래도 하고 작곡, 작사, 편곡도 했다. 사람들은 그를 경제적으로 아주 풍요롭게 살아온 사람으로 보곤 하는데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을 하는 젊은 가수가 벌 수 있는 돈은 매우 적었다. 하루는 동부이촌동의 한 녹음실에서 만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 듣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곡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쉬운 멜로디와 코드를 써서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를 따르면 대중적으로도 성공하고 가수로서 더욱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거라는 선배의 말에 그는 “네 선배. 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고 20년 넘게 음악을 해오며 대중적으로 성공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불행하진 않았다. 물론 원하는 것을 다 사고, 입고,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것 또한 사람 사는 재미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얻었다. 끼니를 굶을 정도로 힘들었던 경험은 고스란히 그의 음악에 녹아들었고 지금까지도 큰 자산이 되고 있다.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몸은 피폐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정신은 가장 맑았던, 촉이 바짝 서 있고 끊임없이 꿈꿀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의 조규찬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천재 뮤지션’이라는 별명도 사라지지 않은 그 시간들이 만든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가수입니다”라는 인사로 시작된 강연은 아름다운 그의 노래로 막을 내렸다. 지쳐 있던 청춘이 따뜻하게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개그맨 정형돈
청춘, 보고 있나?
“전 개그맨이 되기 전 7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저희 부서에 12년 학교 선배가 계셨어요.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도, 군대에 갔다 돌아왔을 때도 그 선배가 계셨죠. 선배를 보다 문득 나의 12년 후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그분이 일을 잘 못했거나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환경적으로 그 안에서 성장해 나갈 수 없는 부분이 있었고 제가 가고자 했던 길과는 분명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걸 알았죠. 더 늦기 전에 제 가치와 능력을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노력과 의지는 재능을 이길 수 있어요”
이왕이면 두려울 것 없는 20대 때 저질러보자 마음을 먹고 과감히 사표를 냈어요. 그때 제 나이 스물다섯,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이었습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개그맨이 되겠다고 하자 핀잔을 준 사람들도 많았지요. 그게 저에겐 상당한 자극제가 됐습니다.
저는 남이 저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새겨듣는 편이에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모님은 설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아셨을 땐 이미 회사를 그만둔 뒤였거든요. 그땐 믿음을 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로 개그 무대에 올랐어요. 공연을 하며 사람들에게 공연 전단지도 나누어주고 포스터도 붙이러 다니고, 그렇게 차근차근 하나씩 시작했습니다. 물론 힘들었어요.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과연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내게 재능이 있을까 하는 고민은 꿈을 좇던 젊은 시절의 저를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저는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저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그 사람도 나와 같이 하루 24시간, 1,440분, 86,400초를 삽니다. 제가 누군가보다 재능이 떨어진다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야겠지요.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는 사람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재능을 믿기보다는 노력과 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전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핸들을 쥐고 있죠. 바르게 가느냐 삐뚤게 가느냐, 우회전을 하느냐 좌회전을 하느냐는 결국 여러분의 손에 달렸어요. 정 힘들 땐 한두 번 브레이크를 밟는 여유를 가지되 끝까지 그 핸들을 놓지 않고 가고자 하는 길을 제대로 보고 가셨으면 합니다. 뺑소니치지 말고, 불법 유턴하지 말고 말입니다”
정형돈이 채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객석은 이미 술렁이고 있었다. 괜히 ‘대세’가 아니었다.
그가 무대에 오르자 환호성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고 그 환호성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지치지 않고 터져 나왔다. 요즘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정형돈’이라는 이름 석 자만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니 개그맨에게 이보다 더 좋은 칭찬이 어디 있을까.
데뷔 10년 차, 혹자는 지금이 그의 정점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에겐 별 의미가 없는 말이다. 의미가 없다기보다 지금보다 인기가 없었거나 웃기지 않았던 시기, 그러니까 ‘웃기는 거 빼고 다 잘했던’ 그 시기도 그에겐 지금만큼의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그는 밸런스와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느 사회에나 개인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적절히 수행함으로써 균형이 맞춰지게 된다는 것. ‘무한도전’에서의 ‘안 웃겼던’ 캐릭터 역시 전체적인 그림 속 한 부분임을 항상 잊지 않았다. 전체적인 팀워크를 깨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면 어떤 캐릭터라도 그 길을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도 중요하지만 ‘우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10년 뒤가 궁금하지 않다. 당장 내일이 궁금하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오늘과 내일 정도 준비하고 노력해서 잘 살 수 있는 능력은 있는 것 같단다. 그 능력 안에서만큼은 열심히 살고 싶고 잘 살 자신도 있단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박동민 ■취재 협조 / micimpact
ⓒ 레이디경향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스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그맨 이동우의 빛나는 무대, 빛나는 인생 (0) | 2012.02.01 |
---|---|
개그콘서트 ‘서울메이트’ 팀의 명절 이야기 (0) | 2012.02.01 |
법륜 스님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합니다” (3) | 2012.02.01 |
정치인의 아내 된 황혜영의 달콤한 러브 스토리 (0) | 2012.01.10 |
MC제왕, 12년 만의 귀환 “주병진입니다” (0) | 2012.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