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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끝에 만난 터닝 포인트
199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그룹 룰라의 메인 보컬로 섹시한 매력을 뽐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김지현(42). 천하의 그녀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분명한 연예계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지는 후배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재기를 꿈꾸며 무대에서 내려와 도전한 영화 ‘섬머타임’은 연기력보다 관능적인 이미지만을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시켰고, 꾸준한 활동을 펼쳤음에도 그녀의 존재감은 점점 더 옅어져갔다.
“평상시 제 모습은 섹시보다는 ‘털털’에 가까웠어요. 데뷔 초 소속사에서 ‘황혜영보다 무조건 어려 보여야 해’라고 요구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고요(웃음). 그냥 나에게 어울리는 걸 하자, 해서 파마를 했고 아이라인을 그리는 것이 더 예뻐 보이는 것 같아 길게 그렸어요.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섹시 아이콘’이 됐죠. 그런데 양악수술 후엔 오히려 단아하고 청순한 컨셉트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며칠 전 시스루 룩을 입고 촬영한 걸 봤는데 어찌나 어색하던지(웃음)…. 헤어스타일 하나만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이 여자잖아요.”
양악수술을 받은 것은 지난해 5월. 음식을 씹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는데, 그 원인이 바로 턱의 부조합 때문이라는 의사 소견이 수술을 결심을 하게 된 첫 번째 이유였고, 이제까지 살아왔던 지난했던 삶을 통째를 바꾸고 싶다는 절박함이 두 번째 이유였다.
“지난 10년간, 말도 못하게 힘들었어요. 제가 선택을 잘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제 딴에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거칠어지는 삶이 버거울 때가 많았죠. 솔직한 심정으로 도피를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어요. 또 왜 나는 남들보다 20대, 30대를 치열하게 살았는데 남들처럼 편안하게, 평범하게 살지 못할까 자책도 했어요. 그러다 문득 지금부터라도 내 자신을 조금 편안하게 만들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외모가 바뀐다고 사람이 바뀌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저도 잘 알아요. 다만 새로운 사람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저를 수술대 위에 눕게 했어요.”
마취를 앞두고 ‘이전의 김지현은 죽는 거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새로운 김지현이 되는 거다’라는 생각을 하며 두려움을 쫓았다. 그리고 수술 후에는 ‘조금만 더 지나면 내 삶도 달라질 것이다’라는 희망만을 생각했다.
“20, 30대 땐 무대에서의 강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게 좋았지만 이제는 편안한 이미지로 보이고 싶었어요. 또 세상의 풍파라고는 모르는, 온실에서 자란 화초처럼 천생 여자라는 말도 듣고 싶었어요. 아, 원래 제가 비만 오면 오늘은 술 마시는 날이라고 여길 만큼(웃음) 한 주당 했거든요. 밤만 되면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저를 보고 어떤 분들은 ‘밤의 여왕’이라고도 했고요. 그런데 수술 후엔 그 좋아하던 소주도 끊었어요. 달라지고 싶어서. 그러다 보니 정신이 맑아지고 실수도 안 하게 되고, 점점 더 제가 제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더라고요.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행동부터 여느 집 규수처럼 조신하게 하면 인생도 순탄해질 것 같고….”
수술 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정에 끌려 차마 끊지 못했던 인간관계들도 정리했다.
“전에는 인맥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부르면 달려나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남의 말에 좌지우지되기보다는 나를, 내 가족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거죠. 저는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제가 무척 좋아요. 이미 최고의 자리에도 올라봤잖아요. 그냥 순탄하게 살고 싶어요. 연예인 김지현으로서 살면서 내 밥벌이만 하자 하는 마음으로. 방송에서 불러주면 열심히 방송하고 앨범이 나오면 또 열심히 노래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아버지와의 서툰 이별
평균적으로 양악수술은 1년 정도의 회복기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지현은 현재 수술한 지 9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왜 그렇게 서둘러 카메라 앞에 섰을까.
“처음에는 저도 앨범을 완벽하게 준비한 뒤에 나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난달에 아버지가 갑자기 패혈증으로 돌아가셨어요. 제가 모시고 살았는데, 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공허함에 덜컥 겁이 나는 거예요. 그대로 있다가는 우울증이 올 것만 같았어요. 아직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바쁘게라도 살면 아픔이 덜해질 것 같아 무작정 일을 시작하겠다고 했어요. 계속 들어오던 방송 제의도 한없이 거절할 수 없었고, 하다보면 익숙해지겠지 생각했어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활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에게 가족은 때때로 애증의 대상이었다. 20년 전 위암수술을 받은 아버지는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셨고, 방황하던 두 동생도 자리를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네 식구의 가장(家長), 무대 밖 그녀의 이름이었다.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일을 놓으셨던 아버지는 당신 나름의 고충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사람들을 만나 술 마시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셨던 분인데 집에만 계시다 보니 마음의 병이 더 깊어졌던 거죠. 결국 집에서 혼자 술을 드시곤 했는데 그런 부분들 때문에 자식인 저희들은 아버지를 참 싫어했어요. 당신 형제들도 60대 초반에 모두 죽었다며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말씀하시고…. 정말 매일 다퉜어요.”
양악수술을 한 뒤로 집에 머물며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허심탄회하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아버지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는데, 아버지는 작별 인사도 없이 눈을 감았다. 임종의 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잘못했던 기억들이 선명해지면서 그녀는 더욱 괴로웠다.
“아버지와 화해를 한 뒤로는 아버지를 위한 건강식도 만들고, 비 오는 날이면 함께 김치전에 동동주도 한 잔씩 마셨어요. 굉장히 무뚝뚝하신 편이었데, 술만 드시면 애교도 많아지시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셨죠. 한번은 같이 노래방엘 다녀왔는데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시기에 병원에 모시고 가려고 해도 끝까지 마다하시는 거예요. 원래 당뇨가 있으셔서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이었는데…. 결국 제가 없을 때 쓸쓸히 돌아가셨어요. 위암도 이겨낸 분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허망했어요. 마음의 준비 같은 건 할 틈도 없었죠.”
언제나 당당한 아버지이길 바랐다. 밤낮으로 열심히 일을 한 것도 바로 아버지의 노후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가 떠나고 나니 차라리 그 시간에 아버지와 함께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자식들에게 의지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어 아버지 명의의 빌딩을 사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었는데…. 휴대전화에 아버지가 생전에 춤추고 노래하시는 동영상이 저장돼 있어요. 예전에 혼자 그 영상을 볼 때마다 소리 내어 웃곤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그 영상을 차마 열어보지 못하겠더라고요. 당분간은 계속 그럴 것 같아요. 살아계셨을 땐 아버지를 보면서 왜 저렇게 술을 드시나, 왜 저렇게 사시나 했는데 그렇게라도 있어주셨던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룰라의 시련, 함께 짊어져야 할 숙제
다시 대중 앞에 서고 싶다는 간절함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컴백 과정은 마음먹은 것처럼 그렇게 순탄치 않았다. 신정환의 도박과 고영욱의 성추행 사건, 친구를 잃은 채리나 등 룰라 멤버들이 겪은 그간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고영욱씨 일은…. 양악수술을 앞둔 시기였는데 이참에 아예 방송을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안 좋은 사건들을 한꺼번에 겪다보니 정말 내 팔자가 센 건가, 라는 마음도 들었죠. 하지만 누가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거잖아요. 문득 이런 때 일수록 제가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겼어요. 나라도 잘해야지 그나마 남은 룰라 팬들이 슬퍼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힘을 냈어요.”
팀으로 활동하면서 좋은 일이 있을 때 받는 칭찬보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들이 더 크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멤버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인 것 같다”라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룹의 운명이라는 것이 그렇더라고요. 잘나갈 때는 혼자서 인기나 돈을 가져갈 수 있지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모두가 각자의 몫만큼을 나눠가져야 하는…. 아버지 장례식 때 상민씨와 리나씨가 왔는데 서로 할 말이 없었어요. 지금은 자중하면서 스스로의 몫을 감당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요.”
30대에는 외롭고 힘들었다. 세상은 왜 언제나 나를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하는 원망에 늘 도망치고 싶었다. 40대가 되고 나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열심히만 하면 그만큼의 대가가 따라온다는 진리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그녀는 새 음반을 준비 중이다.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섣부른 욕심은 일찌감치 접었다. 그리웠던 무대에 다시 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전에도 경쟁이 치열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솔직히 더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아이돌 그룹들이 메인인 가요 순위 프로그램도 제 또래의 사람들은 사실 참 힘들어요. 나이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냉랭한 시선도 있고…. 저는 더 이상 1등을 바라진 않아요. 그냥 순탄하게 살고 싶어요. 행복한 연예인 김지현으로 즐겁게 살고 싶어요. 연기도 다시 하고 싶은데, 아직은 연기력이 부족하니까 덜 떨어진 이모나 푼수기 있는 고모, 그런 코믹한 역을 맡아보고 싶어요. 좀 더 설득력 있게.”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솔직하다는 것을 달리 말하면 속마음을 애써 꾸밀 줄 모른다는 뜻이다. 두 살 연하의 사업가와 2년째 열애 중임을 당당히 밝힌 그녀는 사랑을 말할 때도 솔직했다.
“재미있었던 것이 2년 전, 이 친구를 처음 만났을 즈음 제 결혼 기사가 났어요. 그런데 기사 속의 남자와는 이미 오래전에 헤어졌거든요. 괜한 거짓말을 했다가 나중에 들통 나느니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자 해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있긴 하다’라고 이실직고했죠. 매니저들은 ‘누난 너무 솔직해서 탈이야’라며 걱정하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나요?(웃음) ‘섹시 아이콘’도 다 옛말이에요. 40, 50대 아저씨들한테나 로망인 이 시점에서 굳이 남자친구를 감춰서 무엇하겠어요. 멀쩡히 잘 만나고 있는데 나 편하자고 없다고 하기도 그랬고, ‘그 남자와도 헤어졌어요’라고 하면 대중도 ‘얜 만날 이별만 해?’라고 생각하실 것 같았어요(웃음).”
한없이 자상하고 배려심이 깊은 남자. 언제나 내 편이 돼주는 든든한 지원군. 처음 두 사람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남자친구는 행여 자신의 존재로 인해 김지현이 피해를 보는 건 아닐까, 한참을 걱정했다고 한다.
“가장 좋은 점은 항상 저를 배려해준다는 거예요. 일이 힘들면 그만두라고 말하면서도 제가 이 일을 얼마나 하고 싶은지 알기에 ‘하늘이 주신 재능이 아깝다’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죠. 또 꿈도 잊어버리고 아버지를 위해 돈을 벌고 있는 제 모습을 볼 때마다 남자친구는 ‘내가 모시면 돼’라고 말해줬는데,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저 역시 남자친구를 존중하고 존경하려고 해요.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반말을 하지도 않아요.”
함께 있을 때마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시 태어나도 만나고 싶은 사람. 한 살을 더하며 커지는 조바심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꿈꿔왔던 결혼을 위해 그녀는 좀 더 신중하고 싶다.
“저는 어릴 적부터 결혼이 무척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결혼한 사람들은 ‘한번 살아봐라’ 하더라고요. 결혼은 어떤 사람과 어떻게 사느냐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남자친구를 사랑하지만 결혼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하고 싶어요. 그리고 결혼에는 때가 있다고 믿어요. 전 아직 일을 할 때 인 것 같아요.”
철학자 괴테는 “절망을 떠올리는 그 순간에는 결코 행복을 보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김지현. 행복을 그리는 그녀가 더욱 힘차게 날개를 펼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해본다.
“달라진 얼굴 때문에 악성 댓글도 많이 달렸던데, 오히려 저는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아직 내가 사람들에게 잊혀진 존재는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요. 그러면서 더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싶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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