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2011년 최고의 드라마로 평가받은 <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퀄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세종의 한글 창제를 저지해 백성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려는 밀본 사대부들의 음모를 그렸다면, <육룡이 나르샤>는 권문세족이 백성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고 탄압하는 고려 말 망국 상황을 그린다. 이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더욱 비참해진 백성의 삶을 비추는 이 연작 사극은 공교롭게도 점점 퇴보하는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두 작품을 각각 관통하는 문제의식에도 잘 드러난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모든 문제의 근원은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할 길이 막힌 백성들의 현실에 있었다. 세종 이도(한석규)는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를 개혁하려 하지만 그들에게는 표현의 수단이 없었고, 언로를 독점한 대신들은 왕과 백성의 소통을 막아 기득권을 고수하려 든다. 왕이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시했던 대대적 여론조사가 관료들에 의해 조작, 왜곡되는 장면은 그러한 모순의 정점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에서 한글은 단지 문자를 넘어 대중이 주체적인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언론 매체이자 민주주의의 기본에 대한 상징이었다. <뿌리 깊은 나무>의 이 같은 은유는 언론 통제가 계속 강화되고 있었던 당시 분위기를 대변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최종회에서 밀본의 차기 수장이 된 심종수(한상진)가 ‘한글 창제 저지에는 실패했으나 이제 우리 역할은 글자를 천시하고 천대하는 것’이라고 연설하는 장면은 대중의 목소리가 갈수록 억압당하는 현실을 소름끼치게 반영했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_경향DB
<육룡이 나르샤>에 이르면 이러한 현실은 한층 악화된다. 백성들은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삶의 모든 가능성이 가로막힌 상태다. 단순한 생계의 문제가 아니다. “산다는 건 뭘 한다는 거잖아요. 근데 전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길을 잃었다고요. 그럼 그냥 이렇게 죽어요? 뭐라도 해야 사는 거잖아요”라는 분이(신세경)의 비통한 대사는 이것이 실존적 비극임을 나타낸다. 도처에 넘쳐나는 유민들과 시신들은 최소한의 생의 의미와 존엄마저 빼앗긴 그들의 실존에 대한 극단적 비유다. <육룡이 나르샤>를 지배하는 절망과 분노의 이야기는 SBS <대풍수>, KBS <정도전> 등 같은 시기를 다뤘던 근래 사극들이 고려 말의 비참한 상황을 그리면서도 ‘킹메이커’로서의 주인공을 내세워 ‘좋은 리더’에 대한 이상을 말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고려’라는 거악(巨惡)에 대항하여 고려를 끝장내기 위해 몸을 일으킨 여섯 인물의 이야기”라는 작품 소개에서도 드러나듯, <육룡이 나르샤>에는 답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응징의 욕망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연이어 등장한 선조 시대 사극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영화 <명량>, KBS <왕의 얼굴>, MBC <화정>, KBS <징비록> 등 역사상 가장 무능한 왕이라는 선조 시대와 임진왜란의 비극을 다룬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망국의 정서를 강하게 드러냈다. <육룡이 나르샤>는 선조 시대 사극들이 비춰낸 ‘난세 중의 난세’의 비극을 더 강렬한 망국의 절망과 분노로 그려낸다. 극 초반부터 어린 방원(남다름)이 권력의 하수인들을 살해함으로써 ‘악을 방벌’하는 의미로서의 정의를 실현하는 장면이나, 분이가 개간한 황무지의 곡물마저 수탈해간 관아 창고에 불을 지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썩은 나라’에 대한 분노와 전복의 욕망은 여말선초를 다룬 역대 사극 중 최고로 뜨겁고 치열하다.
올해 초 카이스트(KAIST) 미래전략대학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바라는 미래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무려 42%의 청년층이 ‘붕괴, 새로운 시작’이라는 답을 택했다는 설문 결과가 떠오른다. <육룡이 나르샤>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처럼 뿌리까지 갈아엎지 않고서는 도저히 대안이 안 보이는 이른바 ‘헬조선’ 시대의 정서다.
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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