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아프다.’ 주지하다시피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둘러싼 갈등과 쟁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역사 전쟁’과 ‘역사 재현’을 둘러싼 담론들의 치열한 각축이 일련의 정치적 발화 속에서, 언론 지면에서 그리고 주요 사회세력들의 개입 속에서 강한 파열음과 경고음을 발하며 전개되고 있다.
정부와 여권은 검정교과서들이 지닌 이념적인 편향성과 오류를 바로잡고, 이른바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 국정화를 추진한다는 이유를 밝혔지만, 오히려 반대여론과 저항, 연대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교육부가 제시한 집필 지침에 의해 작성된 검정교과서를 이제 와서 흔들고 공격하는 모순이나, 국정화를 위해 궁색한 색깔론을 또다시 동원하는 강변이 지닌 비합리적이고 몰역사적인 측면도 알 만한 이들은 충분히 체감하고 있다. 과도한 우편향, 선정된 팩트의 부실과 오류, 그리고 밀실 수정 등 숱한 문제점들이 지적된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나 미미한 쓰임새에 관한 기억도 선명하다.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부상한 국정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대다수의 역사학 전공자들, 지식인들, 교사들, 그리고 학생들을 포함한 청년층 등 다양한 주체들의 항의와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고, 공공영역에서 이 이슈에 관한 관심과 논의 그리고 온라인상의 풍자 또한 뜨겁다.
다급한 탓인지 시민들의 세금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여론전에 초점을 맞춘 정부 광고도 등장했으며, 심지어 교육부는 반상회에서 국정교과서를 홍보해달라는 협조 공문을 행정자치부에 보낸 바 있다.
역사학자 90%를 좌파로 몰아붙이는 낯 뜨거운 강변과 학계 현실과 거리가 먼 옹색하고 독선적인 프레임을 여권의 좌장 격 정치인이 거리낌없이 거론하며, 역사와 사관을 갑자기 강조하는 이들은 역사교육과 관련된 진정성과 성찰이 아주 결여된 ‘올바르지 못한’ 행보를 막무가내로 보이고 있다.
근래 교과서 문제를 단초로 한 일그러지고 불온한 말들의 풍경은 어찌 보면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안은 아베 총리와 일본의 우익이 추구하는 식민과 수탈의 역사가 윤색되고 축소된 동시에 의도성이 현저한 정치적인 기동이나 이러한 측면이 강조된 일본의 교과서 문제가 공세적으로 분출된 사건이 불러온 귀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다수의 지상파 보도나 특정 매체들이 강조하는 ‘정쟁’이나 ‘공방’ 혹은 ‘대립’ 등에 집중하는 다분히 기계적이고 의도된 프레임으로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을 푸는 것은 다면적인 현실의 맥락성과 사회적 ‘세력화’의 단면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누가 혹은 어떤 세력이 지금 여기에서 역사 재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숱한 무리수와 억지를 기반으로 퇴행시키려 하고 있으며, 왜 이런 긴급한 사회 현안과 동떨어져 있는 사안이 돌출하고, 비생산적이고 사회 통합을 거스르는 ‘갈등’을 생성해내고 있는지, 진중한 이해와 세밀한 진단이 크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얼마 전 공식 석상에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노력이 정치적 문제로 변질됐다. 국민 통합을 위한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피력한 바 있다. 또한 현행 교과서에서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떤 부분인가”라는 야당 원내대표의 질의에 대통령은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의 모호한 논조나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관점의 피력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현실인식이 수단화되고 집요하게 추구되는 목적성에 역사에 대한 다면적인 평가와 다양한 관점의 추구를, 그리고 역사교육과 역사쓰기의 심대한 역할을 복속시키는 무리수이자 편협한 발상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교육에 관한 숙고된 사유도, 균형과 자성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재 전개되는 ‘정치공세’는 장기간에 걸쳐 역사를 진단하고 탐구해 온 수많은 연구자들을 매도하며 몰아붙이는 정치권력이 득세하는 한국 사회의 거친 민낯을, 그리고 문제적인 과거로의 회귀 상황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준다.
수사적 의제 제기의 차원에 일정 부분 치우쳤다 해도 경제민주화가, 민생이, 비정규직 문제가, 청년실업이, 그리고 정치개혁이 중요하다고 설파하던 정치권의 그들 다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누가 이런 긴요한 현안을 비켜가며 여론을 분열시키고 대립과 갈등을 촉발하는 데 앞장서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독선과 부조리에 저항하며 움츠러들지 않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훗날의 역사가들 또한 정치권력의 오만한 행태와 ‘비정상성’을 준엄하게 그리고 낱낱이 조명할 것이다. 역사는 살아 있는 기록이며 다기한 목소리들이 결집된 감응의 텍스트이기에.
이기형 |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정부와 여권은 검정교과서들이 지닌 이념적인 편향성과 오류를 바로잡고, 이른바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 국정화를 추진한다는 이유를 밝혔지만, 오히려 반대여론과 저항, 연대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교육부가 제시한 집필 지침에 의해 작성된 검정교과서를 이제 와서 흔들고 공격하는 모순이나, 국정화를 위해 궁색한 색깔론을 또다시 동원하는 강변이 지닌 비합리적이고 몰역사적인 측면도 알 만한 이들은 충분히 체감하고 있다. 과도한 우편향, 선정된 팩트의 부실과 오류, 그리고 밀실 수정 등 숱한 문제점들이 지적된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나 미미한 쓰임새에 관한 기억도 선명하다.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부상한 국정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대다수의 역사학 전공자들, 지식인들, 교사들, 그리고 학생들을 포함한 청년층 등 다양한 주체들의 항의와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고, 공공영역에서 이 이슈에 관한 관심과 논의 그리고 온라인상의 풍자 또한 뜨겁다.
다급한 탓인지 시민들의 세금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여론전에 초점을 맞춘 정부 광고도 등장했으며, 심지어 교육부는 반상회에서 국정교과서를 홍보해달라는 협조 공문을 행정자치부에 보낸 바 있다.
역사학자 90%를 좌파로 몰아붙이는 낯 뜨거운 강변과 학계 현실과 거리가 먼 옹색하고 독선적인 프레임을 여권의 좌장 격 정치인이 거리낌없이 거론하며, 역사와 사관을 갑자기 강조하는 이들은 역사교육과 관련된 진정성과 성찰이 아주 결여된 ‘올바르지 못한’ 행보를 막무가내로 보이고 있다.
근래 교과서 문제를 단초로 한 일그러지고 불온한 말들의 풍경은 어찌 보면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안은 아베 총리와 일본의 우익이 추구하는 식민과 수탈의 역사가 윤색되고 축소된 동시에 의도성이 현저한 정치적인 기동이나 이러한 측면이 강조된 일본의 교과서 문제가 공세적으로 분출된 사건이 불러온 귀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다수의 지상파 보도나 특정 매체들이 강조하는 ‘정쟁’이나 ‘공방’ 혹은 ‘대립’ 등에 집중하는 다분히 기계적이고 의도된 프레임으로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을 푸는 것은 다면적인 현실의 맥락성과 사회적 ‘세력화’의 단면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누가 혹은 어떤 세력이 지금 여기에서 역사 재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숱한 무리수와 억지를 기반으로 퇴행시키려 하고 있으며, 왜 이런 긴급한 사회 현안과 동떨어져 있는 사안이 돌출하고, 비생산적이고 사회 통합을 거스르는 ‘갈등’을 생성해내고 있는지, 진중한 이해와 세밀한 진단이 크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 박 대통령이 올바른 국사 교과서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_김창길 기자
대통령은 얼마 전 공식 석상에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노력이 정치적 문제로 변질됐다. 국민 통합을 위한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피력한 바 있다. 또한 현행 교과서에서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떤 부분인가”라는 야당 원내대표의 질의에 대통령은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의 모호한 논조나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관점의 피력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현실인식이 수단화되고 집요하게 추구되는 목적성에 역사에 대한 다면적인 평가와 다양한 관점의 추구를, 그리고 역사교육과 역사쓰기의 심대한 역할을 복속시키는 무리수이자 편협한 발상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교육에 관한 숙고된 사유도, 균형과 자성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재 전개되는 ‘정치공세’는 장기간에 걸쳐 역사를 진단하고 탐구해 온 수많은 연구자들을 매도하며 몰아붙이는 정치권력이 득세하는 한국 사회의 거친 민낯을, 그리고 문제적인 과거로의 회귀 상황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준다.
수사적 의제 제기의 차원에 일정 부분 치우쳤다 해도 경제민주화가, 민생이, 비정규직 문제가, 청년실업이, 그리고 정치개혁이 중요하다고 설파하던 정치권의 그들 다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누가 이런 긴요한 현안을 비켜가며 여론을 분열시키고 대립과 갈등을 촉발하는 데 앞장서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독선과 부조리에 저항하며 움츠러들지 않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훗날의 역사가들 또한 정치권력의 오만한 행태와 ‘비정상성’을 준엄하게 그리고 낱낱이 조명할 것이다. 역사는 살아 있는 기록이며 다기한 목소리들이 결집된 감응의 텍스트이기에.
이기형 |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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