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SBS에서 방영한 TV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혜원 신윤복을 남장 여자로 설정한 팩션 사극이다. 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결합됐다 해서 ‘팩션’ 사극으로 불린다.
이 드라마는 작품성에 대한 평가도 좋았고 시청률도 높았지만, 역사 왜곡이라는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 한 노학자는 신윤복을 여자라 믿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며 “방송문화의 수준이 통탄스럽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한 미술관에서 열린 혜원과 단원의 작품 기획전에는 10만명 이상이 모여들었는데, 이 드라마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7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신윤복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역시 역사와 허구가 아무런 경계 없이 섞여 있다. ‘육룡’은 조선 건국에 영향을 미친 여섯 인물을 지칭하는데,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 등 3명은 실존 인물이지만 무휼, 이방지, 분이는 가상 인물이다. 역사 속에서 나온 인물과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인물들이 섞여 주요 배역진을 이루는 셈이다. 실사와 컴퓨터그래픽(CG)이 혼합하듯 가상과 실재 인물이 섞여 스토리가 진행되지만 문제 삼는 이들은 거의 없다. 시청자들은 이제 ‘역사’와 ‘드라마’를 구분할 줄 안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동거에 너그러워졌다고나 할까. 드라마 속 악역 배우가 실제로도 나쁜 사람일 것이라 믿는 시청자들은 없듯, 조선시대 배경의 드라마에 ‘빠빠빠’가 배경음악으로 나와도 화내지 않으며, 한복 치맛자락 아래로 운동화가 보이면 ‘옥에 티’로 여길지언정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_경향DB
사실 2000년대 이후의 역사 드라마들은 거의가 팩션이었다. 혹은 다양한 드라마 장르들이 융합되어 “시대적 배경만 과거인” 퓨전 사극이었다. 작년에 방영되어 외교와 IT업계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던 <별에서 온 그대>도 조선왕조실록의 한 구절을 모티브 삼아 만들어졌고, <육룡이 나르샤>의 후속편쯤에 해당될 <뿌리 깊은 나무>는 잘 알려진 역사적 서사를 흥미롭게 비틀어 꾸민 드라마였다. <해를 품은 달>의 시대적 배경은 존재하지 않았던 ‘성조’ 시대이고, <장옥정, 사랑에 살다> 속 디자이너 옥정은 우리가 알던 장희빈과 사뭇 거리가 있었다. 심지어 <삼총사>는 17세기 프랑스 배경의 소설, 소현세자라는 역사 속 실존 인물, 그리고 가상 캐릭터들이 혼재된 ‘중층적’ 퓨전 드라마였다. TV 드라마에서 ‘역사의 각색’이 허용된다는 인식은 이미 시청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어제 정부는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교과서’로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면서, ‘옳은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강조하는 ‘옳은 역사’라는 표현에는 두 가지 묵시적 전제가 있다. ‘지금 정권이 옳다고 믿는’의 의미와 ‘단 하나의 옳은’의 의미이다. 정권이 바뀌면 다시 다음 정권이 옳다고 믿는 내용으로 교과서가 바뀌어도 좋다는 뜻일까? 역사는 정녕 하나로만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것일까? 역사가 하나라고 믿는 이들이 과연 ‘역사의 각색’을 내버려둘까? <육룡이 나르샤>가 갑작스레 종영되는 것은 아닐까?
과장이나 농담이 아니다. ‘단 하나의 옳은’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발상을 할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TV 역사 드라마의 내용에도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앞장서서 ‘드라마를 통한 옳은 역사 교육’에 나설 수도 있다. 아주 단순한 질문을 해보자. 1981년 MBC가 방영한 <제1공화국>을 지금 방영할 수 있다고 보는가? 아마도 ‘국부 이승만’을 폄훼했다는 이유로 방통심의위의 경고를 받을 것이다. 1993년 만들어졌던 <제3공화국>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국정교과서와 TV 드라마는 무관한 주제가 아니다.
1972년 유신정권이 시작되면서, 정부는 TV 교양물 확대와 예능·오락 프로그램 축소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KBS는 ‘전 프로그램의 교양화’를 기치로 내걸었고, ‘우리 말 순화정책’을 폈다. 프로그램 제목이나 가수 이름에서 모든 영어 표현은 사라졌고, 901곡의 가요가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비판성이 소거된 교양성이 강조되면서 예능·오락 프로그램은 완전히 쇠락했다. 거의 반세기 전의 일이지만, 이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미 그럴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단 하나의 옳은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 논리는 시청자들을 ‘단 하나의 옳은 길’로 인도하겠다는 계몽적 발상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떠도는 유머 중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컬러 TV를 보던 사람에게 흑백 TV로 바꿔보라는 격”이라는 비유가 있다. 비유가 아니다. 진짜 우리는 70년대의 흑백 TV 시청을 강요받을지도 모른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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