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과 일본 등에서 활동하는 대중문화예술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한류에 정말 찬바람이 분다”고 토로한다. 아베 정권으로 인한 한·일관계 경색으로 일본에선 반한 감정이 고조돼 있고, 중국에선 한류 콘텐츠 자체보다는 연출가와 작가 등을 중국으로 수입해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는 체제로 전환하는 양상이다. 한류를 시들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그중 문화콘텐츠의 제2, 제3 활용을 두고 매끄럽지 못한, 또는 ‘구멍가게식의 관행’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
올해로 12회째인 ‘2015 아시아 송 페스티벌(아송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아송페는 지난 11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2만5000여명의 국내외 팬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날 엑소를 비롯한 방탄소년단, B1A4, 갓세븐, 레드벨벳 등 K팝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과 일본, 필리핀, 중국 등에서 온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참석했다. 이 행사는 아시아송페스티벌부산조직위(조직위원장 김도읍 국회의원)와 부산시,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문화부는 이 행사에 4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첫 무대는 방탄소년단이 화려하게 열었다. 마지막 무대는 엑소가 장식했다. 엑소는 ‘콜 미 베이비’와 ‘러브 미 라잇’ ‘으르렁’으로 국내외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대중문화 배급사의 관계자에 따르면 사실 이들의 소속사는 공연 전날 전격적인 출연 취소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날 공연이 일본에서 동시에 ‘라이브뷰잉(공연 생중계)’되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소속사가 모르는 사이, 일본 전역의 30여개 극장에서는 엑소와 레드벨벳의 공연 생중계를 즐기기 위해 온라인 예매로 이미 4200장의 표가 팔렸다.
2013아시아송페스티벌에 참여한 EXO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_김문석 기자
대부분 한국에 직접 오지 못한 일본팬들이 샀다. ‘아소페’ 생중계는 행사 몇 달 전부터 온라인 사이트와 잡지,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서 홍보됐다. 티켓은 장당 3600엔(약 3만4000원)으로 수익면에서 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류 팬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서비스한다는 차원에서 그 가치는 상당했을 것이다.
다행히 엑소와 출연을 취소하려던 일부 가수들은 아송페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일본에서 예정된 공연 생중계는 취소됐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일본에서의 생중계를 진행한 한국의 배급사 대표는 “4200장의 티켓을 모두 취소하고 이에 대해 2억원의 손해배상액이 청구된 상태”라며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30일 후지TV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하기로 계약돼 홍보 방송까지 나갔는데 방송마저도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배급사는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와 계약을 맺으며 일본 생중계는 물론 현지 TV방송까지 콘텐츠 사용에 대한 보증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협회는 계약내용이 이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쌍방 간에 계약상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는 문화부는 아송페 행사가 성공리에 끝났고 행사 자체만을 후원한 만큼 이후 콘텐츠의 ‘멀티유즈’에 대해서는 나몰라라하는 태도다.
한편 부산시는 ‘지속 가능한 신(新)한류’를 위해 아시아 문화를 아우르는 세계적인 축제 콘셉트로 ‘원-아시아(One-Asia) 페스티벌’을 내년 신설하기로 했다. 정부는 신규 축제에 국비 5억원을 배정했다. 축제를 계기로 중화권 관광객 유치와 관련 산업 박람회 등을 기획하며 한류 마케팅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실은 한참 동떨어져 있다. 콘서트 저작권 및 지적재산권, 초상권, 음악저작권에 관한 기본적인 계약도 명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 ‘한류의 위상’이 지속되고 드높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꿈 아닐까.
김희연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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