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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블라블라

[지금, 여기]세이브 아워 시네마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친다. 학기 초가 되면 새로 만난 학생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영화란 무엇인가?” 답은 다양하다. 세계를 볼 수 있는 창, 협업, 종합예술, 상품 등등. 누군가는 “영화는 물”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컵을 감독이라고 한다면, 어떤 컵에 담기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이 된다는 의미다. 각자의 답이 이처럼 달라지는 건, 영화는 물론이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날아간 스카프다.” 학생 N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토드 헤인즈의 (2002)의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주인공 케이시의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 2층집 지붕을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은 더글러스 서크의 (1955)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천국.. 더보기
[지금, 여기]‘킹덤’ 낡은 세계의 끝 상상하기 역병이 퍼졌다. 병에 걸린 자는 이성을 잃고 사람의 피와 인육을 탐하게 된다. 전염성이 높고, 잠복기는 매우 짧으며, 결과는 치명적이다. 그렇게 조선의 왕자 이창(주지훈)에게 미션이 주어진다. 그는 지지자들을 모아 ‘어린 중전’과 부패한 외척을 물리치고, 역병으로부터 백성을 구해야 한다. 드라마 (2019~2020)의 줄거리다. 영화 (2018)에 이어 까지 보고나니 궁금하다. 지극히 서구적인 괴물인 좀비는 어떻게 조선 땅에 떨어지게 되었을까. 좀비는 가장 현대적인 괴물로 평가받는다. 뱀파이어 등과 달리 20세기 인간의 창작물인 데다, 21세기에 들어 그에 대한 소구력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좀비는 세뇌당한 노예일 수도 있고(), 소비자본주의에 포획된 소비자일 수도 있으며(), 생존주의로 내몰린 신자유주의.. 더보기
[제현주의 굿 비즈니스, 굿 머니]‘기생충’을 밀어준 바람 영화 이 네번째 오스카상까지 거머쥐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회의가 한창일 때였다. 휴대폰 화면에 단톡방 메시지가 떴다. “작품상 받았대요”라는 말 뒤로 글자보다 많은 여덟 개의 느낌표가 붙어 있었다. 코로나19를 필두로 쏟아지는 무거운 소식들 때문에 발랄한 기분이기 어려운 시기에, 모처럼 모두에게 얼마간 들뜬 얼굴이 되게 하는 단비였다. 나 역시 각종 영상과 이런저런 뒷얘기와 해석들을 찾아보며 의 성취를 흠뻑 즐겼다. 그후 며칠간, 누구와 만나도 대화의 얼마간은 얘기로 채워졌다. 대단한 개인의 성취를 목격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근사한 일일뿐더러, 그 성취를 얼마간 ‘우리의’ 성취처럼 느낄 만한 구석이 있다면 함께 고양되는 흐뭇함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시상식의 무게중심이 급격히 봉준호 감독.. 더보기
[정동칼럼]봉준호 붐의 역설들 이번에 봉준호 감독이 남긴 여러 ‘어록’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LA비평가협회 감독상을 받은 뒤 말한 수상 소감이었다. 그것은 아카데미 4관왕과 봉준호붐이 가진 여러 역설 중 하나를 선명히 표현해줬다. 그는 자기 예술의 ‘원천’에 대해, 소년 시절 AFKN(미군방송)에서 “야하고, 폭력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몸속에 영화적 세포를 만”들었는데 영어를 몰라 멋대로 이야기를 상상했던 그게 “어른이 돼서 보니” 브라이언 드 팔마, 존 카펜터, 마틴 스코세이지 같은 대가들의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20~30대에겐 낯설 AFKN은 대한민국 안방극장의 황금 채널(2번)을 노골적으로 차지한, 냉전문화와 미국의 신식민지적 지배의 상징이었다. 미군방송을 보며 자란 ‘시네마키드’가 이룬 아카데미 4관왕은 현대 한국(문.. 더보기
[세상읽기]오스카가 넘은 선, 우리도 넘을 수 있을까 20여년 전 미국 유학생들은 비디오테이프 한 보따리로 향수를 달랬습니다. 구석에서 비디오 복사하는 한국 식료품 가게가 흔했습니다. 한 집에서 잔뜩 빌려다 놓으면 다음 집에서 보고 또 돌려보고 했죠. 돈도 들고 수고스럽기도 하니 한국방송을 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죠. 인터넷으로 실시간 뉴스를 봅니다. 한류팬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할리우드의 반대쪽 미 동부 시골이라 그런지 한국영화를 개봉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 개봉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극장에 가서 봤습니다. 직장 동료도 보러왔더군요. 그리고 지난 주말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감독상을 받은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작품상을 받으며 대미를 장식할 땐 함성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뿐이 아니었죠. 세계 곳곳에서 .. 더보기
[김민아 칼럼]봉준호의 승리, 오스카의 승리 10일(미국 현지시간 9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수상자로 의 봉준호 감독(이하 호칭 생략)·한진원 작가가 호명된 순간, 한 아시아계 여배우가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조여정도, 박소담도, 이정은도, 장혜진도 아니었다. 한국계 캐나다 배우 샌드라 오(49·한국명 오미주)였다. 1960년대 캐나다로 이민 간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샌드라 오는 미국 의학드라마 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다. 지난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로 TV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한국어로 소감을 전해 화제가 됐다. 샌드라 오는 아카데미 시상식 후에도 “기생충의 수상을 축하한다. 한국계여서 너무너무 자랑스럽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 더보기
[사설]아카데미 역사 새로 쓰며 한국영화 신기원 세운 ‘기생충’ 2020년 2월10일, 따뜻한 날이었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졌지만, 화창했다. 마스크를 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봄날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절기로는 여전히 겨울이었다. 놀랄 만한 봄 소식은 태평양을 건너 왔다. 이날 낮(현지시간 9일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한국영화 의 수상 소식을 잇따라 전했다. 처음은 각본상이었다. 곧이어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고 끝내 최고 권위인 작품상까지 수상했다. 아카데미(오스카)상 4관왕. 앞서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운 기록이다. 2020년 2월10일은 한국영화사를 새로 쓴 날이었다. 지난달 5일 봉준호 감독의 이 제77회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이어 13일에는 제92회 아카데미상의 작.. 더보기
[직설]뮤즈는 없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 자신이 관찰해온 초상화 모델의 사소한 습관을 나열하는 화가에게 모델은 말한다. 우리는 정확히 같은 자리에 있다고. 당신이 캔버스 앞에서 나를 그리고 있는 동안, 나 역시 의자에 앉아 당신을 보고 있었다고.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엘로이즈와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야 하는 화가 마리안느의 사랑을 담은 영화 은 예술가에게 귀속되었던 응시의 자격을 뮤즈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예술에서 주체와 대상이 맺어온 관계를 묻는다. 그런데 예술가와 뮤즈가 시선의 평등을 이루는 일은 정말 가능할까? 엘로이즈와 마리안느, 두 연인의 입장은 동등하지 않다. 죽은 연인 에우리디케를 저승에서 데려오는 길에 뒤돌아보면 안된다는 금기를 어기고 다시 연인을 잃은 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