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2>의 장면. 지난해 1월 공개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킹덤>이 배고픔에 내몰린 백성과 역병의 실체를 다뤘다면, 지난 13일 공개된 <킹덤2>는 역병의 근본적 원인인 피를 둘러싼 이들의 욕망과 사투를 그렸다. 넷플릭스 제공
역병이 퍼졌다. 병에 걸린 자는 이성을 잃고 사람의 피와 인육을 탐하게 된다. 전염성이 높고, 잠복기는 매우 짧으며, 결과는 치명적이다. 그렇게 조선의 왕자 이창(주지훈)에게 미션이 주어진다. 그는 지지자들을 모아 ‘어린 중전’과 부패한 외척을 물리치고, 역병으로부터 백성을 구해야 한다. 드라마 <킹덤>(2019~2020)의 줄거리다.
영화 <창궐>(2018)에 이어 <킹덤>까지 보고나니 궁금하다. 지극히 서구적인 괴물인 좀비는 어떻게 조선 땅에 떨어지게 되었을까.
좀비는 가장 현대적인 괴물로 평가받는다. 뱀파이어 등과 달리 20세기 인간의 창작물인 데다, 21세기에 들어 그에 대한 소구력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좀비는 세뇌당한 노예일 수도 있고(<화이트 좀비>), 소비자본주의에 포획된 소비자일 수도 있으며(<시체들의 새벽>), 생존주의로 내몰린 신자유주의적 주체일 수도 있다(<워킹데드>). 무엇이 되었건, 그것은 당대 대중에 대한 은유로서 그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라 할 만하다.
연상호의 <부산행>(2016) 역시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현실을 밑절미로 삼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마찬가지로 연상호가 연출한)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2016)에서 남성 포주들에게 착취당하다 좀비가 된 청년 여성(심은경)이 부산행 기차에 뛰어들어 KTX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물면서 시작된다. 결국 펀드매니저 석우(공유)가 주가조작으로 살려낸 바이오 벤처기업에서 유출된 바이러스가 재난의 원인임이 밝혀진다. 그 덕분에 연상호의 좀비 연작은 신자유주의적 불안정 노동에 기생하는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평가됐다.
2년 후, <창궐>(2018)이 개봉했다. “내가 이러려고 왕이 되었나”라고 중얼거리는 왕을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리려는 적폐가 좀비로 그려졌고, 그 좀비 떼를 물리친 왕자 이청(현빈)은 영화의 끝에 횃불(=촛불)을 든 백성들 앞에 우뚝 선다. 무능한 왕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자살하는 소원세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고 왕이 되기를 거부했지만 결국 선군이 되는 이청이 문재인 대통령을 상징한다는 건 너무 명백해 지루할 정도다. 여기서 배경이 되는 ‘조선’이란 그야말로 ‘헬조선’, 그러니까 2018년의 대한민국이었던 셈이다.
2019년 시작된 또 하나의 조선 좀비물 <킹덤> 시리즈는 현실정치와 신자유주의적 삶의 조건 둘 다에 대한 비평을 시도한다.
이 드라마에서 역병의 병근(病根)을 제공한 건 부패한 권력이지만, 전염은 각자도생으로 내몰린 백성들의 고육지책 때문에 시작된다. 굶주린 이들이 이 병으로 사망한 이웃의 인육을 나눠 먹으면서 병원체가 변형되고 전염성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킹덤>은 ‘선군 만들기’에 몰두하는 <창궐>보다 그 의미망이 좀 더 복잡한 작품이 되었다.
무엇보다 <킹덤>이 낡은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창궐>은 이청의 진보적인 남성연대가 김자준(장동건)의 보수적인 남성연대를 물리치면서 새로운 세계를 이끌 선군이 도래한다고 말한다. 반면 <킹덤>에서 낡은 세계를 끝장내는 건 “계집이라 무시당해 온” 중전(김혜준)이다.
여기서 중전을 움직이는 동력은 오직 분노뿐이라는 점이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그는 권력을 잡아 낡은 세계에 군림하고자 할 뿐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이 없다. 그가 ‘혁명을 조직’하기보다는 그저 다른 여자들을 죽여 아이를 빼앗고, 아버지 조학주(류승룡)가 만든 인간병기=좀비를 이용하려 하는 건, 아마도 이 탓이다. 결과는 자명하다. 구세대의 침몰과 함께 그 역시 가라앉는 것.
물론 드라마 내내 대체로 무능한 왕자에게도 별다른 비전은 없어 뵌다. 그러므로 여전히 신분제 사회인 (헬)조선이 시즌3로 이어진다. “정치 지도자들의 비전 없음.” 그것이야말로 <킹덤>이 그려내는 2020년 대한민국의 현실 아닌가 싶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시네마 블라블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여기]세이브 아워 시네마 (0) | 2020.07.06 |
---|---|
[제현주의 굿 비즈니스, 굿 머니]‘기생충’을 밀어준 바람 (0) | 2020.02.21 |
[정동칼럼]봉준호 붐의 역설들 (0) | 2020.02.19 |
[세상읽기]오스카가 넘은 선, 우리도 넘을 수 있을까 (0) | 2020.02.14 |
[김민아 칼럼]봉준호의 승리, 오스카의 승리 (0) | 2020.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