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나는 요구합니다, 존중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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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생각꺼리

[문화비평]나는 요구합니다, 존중받기를

평생을 목수로 성실하게 살아온 노인은 병으로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의료휴직수당을 신청한다.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복지시스템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정부는 그를 위로하기는커녕 수치심만을 안겨준다. 관료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그에게 상황과 동떨어진 매뉴얼을 반복적으로 읊어대고, 인터넷 접수가 먼저라며 마우스를 쥐여준다. 한평생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던 그는 의사의 제안처럼 살기 위해 일을 쉰 것이지만 사회는 그를 휴직수당이나 신청하는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한다. 결국 화가 난 노인은 밖으로 뛰쳐나가 벽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 그리고 굶어 죽기 전에 자신의 요구를 들어 달라고 외친다.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 이야기다.

 

영화 속 주인공이 겪는 상황은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현실 속 이야기다.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존엄성은 철저하게 무시한다. 따라서 복지적 혜택도 시민의 당연한 권리가 아닌 ‘수치스러운 의례’를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실제로 현대사회에 등장한 단어 비정규직, 파견노동자, 취업준비생, 구직자 등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중요시하는 가치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안정적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우리 모두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지만 쉽지 않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의미의 ‘이태백’은 시대의 우울한 상황을 일컫는 말이지만, 이젠 옛날 말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취업은 경제적 활동이 가능한 모든 세대에게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모습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야만 생계유지가 가능한 잔인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보여준다. 너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119세의 노인에게 복지 지원을 중단했다는 이라크 정부의 사례를 전하는 외신뉴스도 우리를 기운 빠지게 한다. 더 이상 노동을 수행할 수 없는 구성원을 이 사회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장 지글러는 자본주의사회가 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의 저항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수치심이라고 설명한다.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방법은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고 소수가 자본을 독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세상은 이렇게 힘겹고 비정한 것인가. 자본의 논리에만 충실한 사회의 제도를 깨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의 권리를 외치는 저항과 연대라는 것을 영화는 설명한다. 결국 사람이 희망임을 이야기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옆집 청년의 도움으로 관료사회가 요구하는 서류를 인터넷으로 접수하는 데 성공한다. 어려움에 처한 가정을 위해 전기요금을 식탁 위에 놓고 간 노인의 따뜻한 마음에 화답하듯이, 아이들 역시 점점 안정을 찾아간다. 사회복지 시스템에 대한 저항의 방법으로 관공서 벽에 자신의 이름을 쓸 때도 주인공은 혼자가 아니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지지하는 박수를 보냈고, 결국 그는 자존감을 회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벽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듯이 우리는 지금 촛불을 들었다. 수치심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당당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고 내가 왜 존중받아야 하는가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회 참여방식도 다양해졌다. 혼자여도 참여할 수 있다. 광장에서 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연대의 저항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화문광장에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은 집의 베란다에, 근무하는 버스에, 그리고 가게에 구호를 붙인다.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무료로 커피를 나누거나 전단을 인쇄해 나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시민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사회를 바꾸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어느 누구도 불합리한 권력에 순종해서도 안되며,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하며,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사람은 처벌받아야 함을 촛불을 통해 요구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의 마지막 편지는 지금 우리의 목소리처럼 긴 울림을 남긴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주기를.”

 

이종임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